‘서른, 아홉’ 운명의 공교로움이 덧칠한 전미도의 시한부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2.25 09: 16

[OSEN=김재동 객원기자]  참 공교롭기도 하다. ‘선택’이란 부제를 달고 지난 24일 방영된 JTBC 수목드라마 '서른, 아홉’ 4회를 보며 든 생각이다.
김진석(이무생 분)은 마침내 아내 강선주(송민지 분)와의 이혼을 결심했다.
강선주의 임신 때문에 원치는 않았지만 피할 수 없었던 결혼이었다. 설상가상 자신의 아이가 아니란 사실도 알았지만 제 손으로 기저귀 갈고, 분유 타 먹이고, 품에 안아 어르고 달래온 부성애 때문에 미뤄온 이혼이었다.

그런데 정 없고 허울뿐인 아내란 여자가 단 하나의 사랑 정찬영(전미도 분)을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비록 차미조(손예진 분)는 불륜남녀라 놀리지만 결혼 이후 그 형식이 규정한 남편의 의무를 저버린 적이 없다. 그로선 그야말로 대단한 자제력을 발휘해 온 것이다. “이혼하면 안돼? 아이는 내가 잘 키울게”란 찬영의 채근에도 그저 “미안하다”란 말로 넘겨왔다. 이유는 단지 아이가 너무 어려서였다.
그런 희생을 감수해왔는데 감히 거짓된 주제에, 제 배 아파 낳은 제 아들에게조차 경멸의 시선이나 보내는 주제에 보기만 해도 아까운 찬영에게 행패라니.
강선주에게 이혼을 통보한 진석은 찬영을 찾아 그 사실을 전한다. 먼저 기막힌 건 찬영이다. “왜 이제와서...진작에 하지.” 다음에 기막힌 건 진석이다. 찬영이 췌장암 4기, 살 확률 0.8%라니.
그의 선택은 너무 늦었다. 아니 어쩌면 그 늦어진 선택 때문에 찬영이 그 몹쓸 병에 걸렸을지 모른다. 미조가 그의 멱살을 쥐고 으르렁댔듯 찬영의 시한부에 책임있는 단 한 사람은 바로 자신일 것이다. 연인의 슬픈 운명에,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회한에 진석은 오열할 뿐이다.
장주희(김지현 분)에게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무수한 라디오 사연 공모, 무수한 백화점 응모에 다 떨어져왔던 장주희가 로또 4등에 당첨됐다. 당첨금이 무려 750만원. 미조, 찬영과 해외여행을 즐기기에도 충분한 액수다.
그 설레는 마음 안고 친구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주희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찬영이 시한부라니, 살 날이 6개월밖에 안남았다니..
제게 닥친 행운이 친구의 불행을 몰고 온 것은 아닌지, 그 행운을 되물린다면 그 행운이 친구를 찾아가지는 않을지.. 주희는 생애 첫 당첨 로또를 파쇄기에 넣는다.
한편 ‘가족 같은 친구’라는 말로도 부족한 친구 찬영의 시한부 선고에 갈피를 못잡던 미조는 김선우(연우진 분)의 격려와 응원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
팜스프링스에서 골프 치며 보낼 계획이던 안식년을 찬영 돌보기에 쓰기로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권했던 항암치료를 찬영이 거절했으니 찬영을 ‘역사상 제일 신나는 시한부’로 만들어 줄 생각이다.
제 1보는 대학시절 주희 생일날 자신의 후줄근한 옷차림 때문에 입구컷 당한 나이트클럽 즐기기다. 기세좋게 명품 일습 세벌을 쇼핑해 친구들과 나눠 입고 찾아간 나이트클럽을 옷이 무색한, 그리고 클럽 플로어가 무색한 막춤으로 초토화시키고 나왔다. 그리고 보았다.
김선우가 룸살롱 앞에서 웬 여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여자는 선우의 입양동생 김소원(안소희 분)이다. 선우는 친구의 목격담에 따라 룸살롱을 찾았다가 술자리의 소원을 끌고나오던 중이었다. 결국 선우는 기도들 손에 떼밀려지고 소원은 그들을 따라 다시 룸으로 들어갔다.
선우의 위로를 받았던 미조는 이제 자신이 선우를 위로할 차례임을 깨닫는다.
선우는 찬영 일로 슬퍼하는 미조를 보며 궁금해 했었다고 했다. “우리 나이에 무슨 일이면 저렇게 슬플까?” 확실히 서른 아홉쯤 되면 세상사 새삼스러울 일이 많지는 않은 나이긴 하다. 하지만 그 나이라 해서, 또 새삼스럽지 않다 해서 기쁨이 덜해지고 슬픔이 감해지는 것은 아니다.
강물은 항시 잔잔하지만 그 바닥은 더러 움푹 패이고 더러 둔덕이 솟아있기도 하다. 잔잔한 수면만 보는 이는 남이다. 그 물밑 사정까지 헤아려야 가족이고 친구고 연인이다. 그래야 운명의 공교로움조차 함께 할 수 있다.
/zaitung@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