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이정재는 '달고나 뽑기'로 하루 아침에 월드 스타가 됐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리니지’ 뽑기로 재벌 반열에 올랐다. 이 두 종류 ‘뽑기’의 본질적 차이점은? 이정재의 뽑기는 자신의 생사만을 걸었으니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반면, 김택진의 ‘뽑기’는 게이머들의 주머니만 노려서 탈탈 털고 있으니 여간 민폐가 아니다.
지난 1998년, 김택진의 엔씨소프트는 한국 게임사의 이정표가 될 작품을 선보인다. 만화 원작의 온라인 전략게임 ‘리니지’다. 참신한 소재에 기발한 아이디어, 뛰어난 기술을 더해 신선한 감동을 줬다. 한국 게임사는 리니지 전과 후로 나뉘어야 한다는 게 기자의 생각입니다.
초창기 리니지는 ‘뽑기’와는 다른 문제로 여론의 조명을 받고는 했다. 플레이어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PK가 횡행하면서 자칫 청소년 범죄 심리를 자극하지 않을까 등의 우려였다. 엔씨가 온갖 게임 아이템과 능력치를 마구잡이로 팔기 시작하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엔씨는 이같은 대중의 걱정을 다른 시각으로 풀었다. 견강부회이지만 삼단 논법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요. 서로 죽고 죽일수록 강한 자가 유리하다.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의 불붙은 경쟁심에 귀한 게임 아이템을 유료로 팔면 떼돈을 벌 수 있다. 물론 기자의 추측에 따른 가설일 뿐이니 참고만 하시길.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하필이면 한국형 MMORPG의 초석을 세운 엔씨소프트가 사행성을 조장하는 확률형 뽑기로 대성공을 거둔 게 독이 됐다. 이후 한국 게임사들의 비즈니스 모델(BM)은 게이머 뒤통수를 치고 등골을 빼는 도박성 뽑기와 무분별한 과금 정책으로 채워졌으니까.
엔씨의 최신작이자 김택진의 야심작이고 리니지 시리즈의 집대성(김택진 본인이 광고에서 직접 강조했다)인 ‘리니지W’는 외견상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 외 대만에서 도큰 인기를 얻는 중이고 엔씨 매출을 큰 폭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게이머들의 기대와 달리 김택진표 ‘뽑기’와 ‘과금’의 핵심 모델들은 리니지W에도 그대로 살아 춤춘다.
비근한 예로 23일 하루 동안 리니지W 홈페이지 공지사항을 통해 7개 상당의 신규 상품 및 이벤트 출시를 소개했다. 엔씨의 이벤트나 신규 상품 대부분은 공짜가 아니다. 게이머가 돈을 내고 아이템이나 능력치 개선 상품을 사고 그 안에서 다시 뽑기를 통해 결과물을 얻는 구조다. 여기서 뽑기의 확률은 그때그때 다르긴 하지만 게이머 혼을 빼놓기 충분할 정도로 낮은 경우가 허다하다.
망겜이라고 신규 게이머 유치를 위해 혜자(소비자에게 은혜로운 상품) BM을 내놓지 않는 건 엔씨의 지조이자 소신이다. 수 억원에서 수 천만원을 가볍게 쏟아부은 기존 고객들에게 누가 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들의 주머니를 계속 더 심하게 울궈먹는 쪽으로 끌고가는 게 엔씨소프트(대표 김택진)의 뚝심이다.
엔씨 주가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블레이드 앤 소울2’도 이날 신규 상품을 내놨다. 이 게임도 매주 한 번에서 두 번씩, 신규 상품이나 이벤트를 출시했고 그 때마다 적게는 수 만원에서 많게는 수 백만원의 과금을 유도했다. 물론 24시간 휴일없이 팔고 있는 소울, 수호령 소환서 등의 아이템 구매에는 상한액이 따로 없다. 오픈 반 년도 못된 게임에서 벌써 수 억원씩 돈을 썼다는 게이머들이 줄지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잦은 게임 내 오류와 버그 발생으로 게이머 원성은 커져가는 게 함정입니다.
엔씨의 ‘뽑기’는 뽑기란 속된 말로 철저히 ‘운빨’에 좌우된다. 어느 유료 이벤트에서든 수 백만원을 쓰고도 수 십만원 과금보다 훨씬 못한 결과를 얻고 좌절하는 게이머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엔씨 게임에서 강해지는 필수 조건은 ‘뽑기 운’이란 자유게시판 댓글을 보고 무릎을 탁 칠수 밖에 없었습니다. “맞다 맞아!”
한국 게임사에 이정표를 세운 리니지와 엔씨소프트, 그리고 김택진 대표의 삼위일체가 '오징어게임'처럼 세계를 무대로 성공 신화를 쓰기위해서는 게이머 상대의 '뽑기'부터 줄이는 게 급선무로 보인다./mcgwire@osen.co.kr
<사진> 엔씨소프트 제공 '블레이드 앤드 소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