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감독 어깨 두드리는 23세 명랑 외국인..."우리 복덩이"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2.03.04 04: 35

이런 외국인 선수 참 보기 드물다. 여자배구 신생팀 페퍼저축은행의 ‘복덩이’ 엘리자벳 이네 바르가(23)의 투혼이 70세 노감독의 마음을 울렸다. 
페퍼저축은행은 3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KGC인삼공사와의 6라운드 첫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1-3으로 역전패했다. 주축 선수들이 줄부상을 당해 12명 엔트리 채우기도 벅찼던 상황에서 1세트를 듀스 접전 끝에 따내는 데 만족했다. 
1세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엘리자벳의 허슬 플레이였다. 25-24 페퍼저축은행 세트 포인트에서 인삼공사 옐레나의 공격이 하혜진을 맞고 사이드라인 광고판 끝쪽으로 크게 튀어올랐다. 더는 수비하기 어려운 거리였지만 엘리자벳은 끝까지 따라가 몸을 날려 손을 뻗었다. 

페퍼저축은행 엘리자벳 /OSEN DB

엘리자벳이 걷어올린 공은 관중석으로 향했다. 25-25 다시 듀스가 됐지만 엘리자벳의 투혼으로 흐름이 페퍼저축은행으로 넘어왔다. 박경현의 오픈 득점과 상대 범실로 연속 득점한 페퍼저축은행이 1세트를 가져갔다. 2~3세트를 내줘 역전패했지만 엘리자벳은 양 팀 최다 28점으로 분전했다. 
이날 패배로 3연패를 당한 페퍼저축은행은 3승28패로 승점 11점에 묶여7위 최하위가 확정됐다. 시즌이 거의 끝난 상황이지만 엘리자벳은 마치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는 것처럼 몸을 사리지 않았다. 몸이 재산인 외국인 선수에게 쉽게 볼 수 없는 허슬 플레이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백전노장’ 김형실(70) 페퍼저축은행 감독도 엘리자벳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감독은 “시즌 후반이지만 엘리자벳은 더 명랑하게 파이팅하면서 솔선수범하고 있다.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시즌이 끝나가는 상황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페퍼저축은행 김형실 감독이 엘리자벳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2022.01.18 /OSEN DB
헝가리 출신 장신(192cm) 라이트 엘리자벳은 페퍼저축은행의 창단 1호 영입 선수. 올 시즌 여자부 외국인 트라이아웃에서 전체 1순위로 페퍼저축은행 지명을 받은 그는 전력이 약한 신생팀의 외국인 선수로 부담이 크지만 불평불만 없이 누구보다 밝게 팀을 이끈다. 시즌 중반부터 체력이 떨어지며 경기력이 흔들렸고, 웜업존을 지키는 날도 늘었지만 경기를 뛰는 순간은 ‘대충대충’이 없다. 
김 감독도 “시즌 중반부터 몸이 썩 좋지 않은데도 열심히 해주는 것을 바람직하게 보고 있다. 나한테도 와서 어깨를 두드리며 파이팅을 해준다. 밥먹을 때도 옆에 와서 ‘맛있게 드세요’라고 한다”며 웃은 뒤 “오늘도 끝나고 (코트에) 누워있길래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괜찮다고 하더라. 우리 팀에는 복이다. 외국인 선수가 팀에 이질감 없이 기죽지 않고 열심히 해주니 고맙고 기특하다”고 칭찬했다. 
페퍼저축은행 엘리자벳이 팀 득점에 기뻐하고 있다. 2021.12.29 /OSEN DB
‘명랑 외국인’ 엘리자벳을 중심으로 페퍼저축은행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 김 감독은 “부상 선수들이 많은데도 우리 선수들 모두 분투해주고 있다. 계속 지더라도 기가 안 죽는다. 이한비는 죽먹고 경기를 뛰는데도 괜찮다고 한다. 우리 선수들은 경기에 빠지려고 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더 이상 부상 없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고 다짐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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