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백이진, 나 널 가져야겠어!”
6일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나희도(김태리 분)가 밝힌 살 떨리는 선언이다.
나희도의 직진 성향이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충분히 위험한 질주가 예상된다.
이 모든 일은 고유림(김지연 분) 집안에 닥친 불행에서 비롯된다. 고유림의 엄마(허지나 분)는 계주이기도 한 시장 떡집 기계 들여놓는 데 보증을 섰고 떡집은 야반도주를 했다. 곗돈도 떼이고 보증까지 감당해야 될 난감한 처지가 됐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금쪽같은 내 새끼 펜싱장갑 하나 못사줘가며 모아온 돈인데 엄마는 이미 세 번이나 꿰맸던 다 헤진 장갑을 다시 기우며 속울음을 터뜨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유림의 심정도 처연하긴 매한가지다.
유림은 3개월 징계를 당한 후 협회 관계자를 만나 올림픽 금메달 연금을 가불할 수 있는 지 물어보았다. 돌아온 답은 “연금가불이 말이 되냐? 좀 번듯한 집구석이면 오죽 좋아”란 악담.
고유림에게 가족은 전부다. 엄마는 맨날 없는 집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지만, 엄마 아빠랑 함께 있으면서 행복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하고 많은 운동 중에 돈 많이 드는 운동 해서 고생만 시켜드린 부모님이다. 구멍난 펜싱 장갑이며 재킷이며 그 바늘도 잘 안 들어가는 걸 엄마는 매일 꿰매줬었다. 그 고생 하며 딸내미 수발 들어준 사랑하고 존경하는 부모님인데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인간에게 ‘집구석’ 소리나 듣게 하다니..
유림은 슬플 때마다 찾았던 다이빙대서 물에 뛰어들고는 대성통곡을 한다. 그 모습을 나희도가 목격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 채 채팅친구 인절미를 찾는다.

라이터 37이 말했다. “그 애가 울었어. 그 애는 어떤 지옥을 품고 있는 걸까. 그 애가 미웠는데 마음이 이상해” 인절미가 답했다 “그런 니 마음을 그 애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럼 덜 외로울텐데” 인절미의 답에서 무언갈 느꼈을까? 라이터 37이 묻는다. “너도 뭐 힘든 일 있어? 어째 그래 보여” 그리고 라이터37에 위로받은 인절미는 만날 것을 제안한다.
장소는 대학로, 표식은 노란 장미 한송이. 성별미상, 신원 불상의 채팅상대를 만나겠다는 고유림이 걱정돼 백이진이 따라나서고 기다리던 고유림 눈에 노란 장미 한송이가 들어온다. 그 장미의 주인공은 나희도. ‘맙소사, 라이터 37이 나희도라니..’ 고유림은 노란 장미를 백이진에게 건네고 부리나케 도망친다.
마침내 희도의 눈에 백이진과 그 손에 들린 노란 장미가 들어오고 나희도는 감격하고 만다. 햇수로 3년. 그 무수한 밤 위로를 선사했던 인절미가 백이진이라니.. 운명이 점지하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 감동이 부추긴 한마디가 “백이진, 나 널 가져야겠어!”다.
사실 백이진은 이즈음 여러모로 나희도를 혼란케했다. 모든 것은 오래된 녹음테이프에서 들려온 “나도 사랑해, 다은아!”란 백이진의 목소리로 부터 시작됐다.
“나는 고작 2주 사귀면서 알콩이 달콩이나 했는데 ‘나도 사랑해 다은아?’ 열나 짱나!” 어쩐지 분한 감정이 들었다. 고유림의 증언에 따르면 예의 그 다은이보다 오래 사귄 민영이란 여자도 있었단다. 이사 당일엔 동네 아줌마들 틈에 파묻혀있기도 했다. 그 녀석은 바람둥이였다.

그런데 자신의 실수로 유리창이 깨졌을 때 번쩍 안아 옮겼던 순간은 왜 부끄러운 걸까? 무심히 제 손목을 잡아오던 손길은 또 왜 낯선 의미가 있는 듯 느껴지는 걸까?
모르겠다. 늘상 모으던 빵봉지속 스티커를 백이진에게 건네받을 땐 왜 부끄러웠는지, ‘채무관계’가 무슨 관계인지 되묻는 제 입은 왜 쥐어박고 싶었는지. 과속오토바이를 피해 이진 품에 안겼을 때 왜 한쪽 다리는 제멋대로 접혀 올라갔는지. 그래서 얼굴에 묻은 초코 아이스크림을 백이진이 닦아줄 땐 왜 얼음 땡이 되어 버렸는지. 그리고 헤어지며 빙글빙글 웃는 백이진에게 이유를 물었을 때 들은 “너 보니까 좋아서”란 말은 왜 심장에 부하를 주었는지.
공연히 콩닥대는 가슴을 쓸으며 현관거울을 봤을 때 알았다. 맹구처럼 코 옆에 점찍힌 초코자국. 녀석은 그저 놀리는게 재밌어서 빙글거렸던 것이다.
“너 사람 갖고 노는 게 재밌어? 나 바보 만들고 노는 거 좋으냐고? 넌 똑똑하고 신문도 열심히 보고 어른처럼 일하고 찐한 사랑도 하고 하는데, 그래 나 스티커 모아. 그치만 너한테 어린애, 무식한 애, 웃긴 애 되는거 싫어!”
제어되지 않고 터져나오는 분노는 백이진과 멀어지는 기분, 이진은 저만치 앞서 있는데 저만 뒤처지는 기분, 그로 인한 서운함과 서러움이 범벅된 혼란스런 감정이었다. 그리고 희도는 그 감정의 정체를 백이진에 대한 질투라 규정했다.
그랬는데.. 인절미가 백이진이라고? 모든 것이 명쾌해진다. 희도는 이진을 질투한 게 아니었다. 이진에게 자격이 안될 것 같아 화가 났던 거다. 하지만 수많은 밤을 위로했던 우리의 대화들. 그거면 자격은 충분하다. 그래서 당당히 외쳤다. “백이진, 나 널 가져야겠어!”
문제는 열 아홉 나희도가 여전히 제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리라는 점. 41살 나이에도 열 다섯 딸에게 “엄마는 엄마 일 아니면 이해 못하잖아”란 평이나 듣는 이 좌충우돌이 노란 장미 한 송이로 비롯된 이 거대한 오해의 소용돌이를 어찌 헤쳐갈 지. 또 자신의 판정 어필로 나희도가 전 국민 욕받이가 될 줄은 몰랐던, 그래서 후회하는 고유림이 3년 채팅 친구가 나희도임을 알게 됐으니 어떤 출구전략을 펼칠지.. ‘스물 다섯, 스물 하나’ 한 회 한 회가 참 다이내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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