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박동훈 감독 "최민식, 문화재로 지정해야"(종합)[인터뷰]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2.03.09 13: 22

순수한 학문 추구를 이유로 북한을 벗어나 남한으로 넘어온 수학 천재 이학성(최민식 분). 그는 상위 1%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는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취업해 근근이 살아가는데, 어느 날 학생 한지우(김동휘 분)로부터 수학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입시를 위한 수학을 공부하던 지우는 학성으로 인해 학문과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따뜻한 에너지로 가득 찬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배급 쇼박스, 제작 조이래빗)를 보고 나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꼭 한번 안아주고 싶어질 것이다.
연출을 맡은 박동훈 감독은 최근 OSEN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제작사 대표님과 원래 알던 사이였는데 시나리오를 받고 관심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동화적이고 따뜻한 미장센을 구축했다. 삭막한 느낌의 교실부터 학성과 지우의 아지트까지. 극에 생기를 더한 공간과 미술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했다.
“아트 콘셉트 회의를 할 때 중시했던 게 바로크 시대(17세기) 그림이다. 특히 카라바조의 그림, 명암대비가 강한 그림이었다. 공간마다 색채감을 달리했는데 교실은 일부러 입체감을 결여했다. 가장 중요한 아지트는 예뻐야했기 때문에 미술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세트 이외 학교 건물은 전주 상산고, 분당에 있는 국제고, 서울시립대 등에서 촬영했다.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신에 대해 “과학관, 학성의 집, 경비실, 기숙사, 교실은 세트다. 세트 촬영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높았다”고 밝혔다. 학교는 다양한 경사로와 계단, 다리 등 독특하게 쌓아올린 수직 공간이 많은데 영상에 예쁘게 담겼다.
학성과 지우의 아지트인 과학관 B103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배워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교실 밖에서 펼쳐질 두 사람의 숨겨진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높인다. 이학성 역의 최민식이 대배우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열연을 펼쳤다.
박 감독은 “최민식 선배는 제가 너무 사랑하고 애정하는 배우다. 1990년대부터 오랜 팬이었다. 제가 너무 존경한다.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비원 복장을 한 그가 고등학생들 앞에서 수학을 가르치거나 허당기 있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을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할 때부터 같이 작업할 수 있다는 것에 흥분했다”고 캐스팅 과정을 전했다.
이어 그는 “최민식 선배가 출연을 놓고 숙고의 시간을 가지셨다. 시나리오를 조금 길게 잡고 계셨다. 나름 고민이 필요하셨나보다. 첫 미팅에서 ‘텍스트보다 즐거운 에너지가 돋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저도 그 부분에 동의했다. 그날 짧게 영화 얘기를 하고 바로 술자리가 벌어졌다”고 회상했다. 이 영화는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크랭크인 했다.
최민식과 캐릭터, 작품에 관해 맞춰나간 부분은 무엇이었냐고 묻자, “학성에 대해 저는 ‘낮에 길을 걷고 있다가 누군가 아무 이유없이 욕을 해도 그들에게 더 하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이미 자포자기했고 자신의 상황을 즐기는 인물’이라고 선배에게 말씀드렸다”며 “근데 제 디렉팅보다 같이 작업을 해가면서 지향하는 부분이 많이 일치됐다. 최민식 선배는 그런 점에 있어서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촬영하면서 보니까, 선배의 표정 변화가 장면마다 미세했는데 저는 그것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분만이 만들 수 있는 따뜻함, 극한 감정이 전달돼 찍으면서 놀란 적이 많았다”고 돌아봤다.
최민식과 작업하기 전엔 왠지 무서울 것 같았다는 박동훈 감독은 “저도 만나기 전엔 긴장했었다. 근데 그 생각은 4시간 정도 지나니 없어졌다. 농담을 잘하고 장난도 많이 친다. 현장에서도 후배들, 스태프와 잘지내셨다. 전혀 무서운 사람은 아닌데 이치에 벗어나는 선택을 하면 그 점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말씀을 하신다”고 전했다.
학성과 브로맨스를 형성하는 지우 역할은 무려 2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신예 김동휘가 맡았다. 감독은 오디션을 거쳐 김동휘를 캐스팅한 것에 대해 “(오디션 분위기상) 위축돼 있었지만 그 안에 당당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주변에서 ‘위험한 모험이 아니냐’는 얘기를 하더라. 근데 저는 도전해보고 싶었다. 낯선 배우가 최민식이라는 배우 앞에서 연기한다면 어떤 텐션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그 부분이 완성됐다”고 신인으로서 보여준 김동휘의 기지를 칭찬했다.
‘오디션에서 강점으로 보였던 부분은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김동휘 배우의 외모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지우의 이미지를 찾아야 했다. 그는 (가정 환경과 성적으로 인해) 위축돼 있으면서도 당당한 아이다. 근데 김동휘가 그 이미지에 부합하더라. 오디션장에선 위축되는 게 당연한데 나름대로 당당했다. 지정 대본이 있었는데, 그걸 자신만의 논리를 갖고 수정해왔더라. 답변도 또박또박 잘했다. 실제로 그 친구가 수정한대로 촬영했다”고 답했다. 김동휘가 신인다운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품고 있기에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이어 지우의 친구 보람 역의 조윤서에 대해서도 “보람은 학성과 지우보다 분량이 적다. 보람의 서사를 영화에서 자세히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캐릭터가 잘 표현돼야 했는데 조윤서가 보람의 당차고 명랑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미팅날 조윤서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정말이지 딱 보람 같았다. 캐스팅 후 함께 리딩을 하면서 밸런스를 맞추어나갔다”고 전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전반적으로 따뜻한 인간애가 풍긴다. 우연히 알게된 학생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애쓰는 어른 학성의 선택이 낙관을 더한다. 학성과 지우는 각자의 상황에 몸과 마음이 지쳤음에도, 삶을 향한 절망과 포기보다 희망을 지향한다. 무엇보다 학성이 지우에게 건넨 ‘정답보다 중요한 건 답을 찾는 과정’이라는 문구는 수학을 넘어 인생의 가치와 맞닿아 있어 따뜻한 울림을 안긴다.
물론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성공적인 결과가 중요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너무 빨리 결과를 원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어서 진중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자”라고 감독이 전하는 인생의 의미와 깊이에 빠지게 된다.
박 감독은 “저희 영화를 보신 관객들이 흐뭇한 마음을 안고 가셨으면 좋겠다. 불쾌하고 답답함이 지속되는 요즘인데 환한 미소를 지었으면 한다. 특히 ‘파이 송’을 접하고 흐뭇해지셨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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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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