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변두리 포구 구암에 사는 희수(정우 분)는 동네에서 유일하게 큰 관광호텔을 운영하는 손영감(김갑수 분)을 정신적 지주로 모시며 근근이 살아간다. 어릴 때부터 30년 넘게 구암에서 살아온 그는 이젠 양아치·건달의 삶이 아닌, 어엿하게 사업장을 운영하며 안정된 일상을 꿈꾸지만 실세 손영감의 손바닥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이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희수는 평소 절친하게 지내던 주류도매업자(김해곤 분)로부터 떼돈을 벌 수 있는 성인오락기 사업을 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친아버지 같던 손영감에게서 결국 독립한 희수는 성인오락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고 점점 명성을 쌓아간다. 이에 남 회장파 에이스이자 희수의 30년 친구 철진(지승현 분)은 은밀히 접근해 사업의 일정 지분을 요구하며 손영감과 희수를 이간질한다.
한편 양아치 건달들의 습성과 본성을 꿰뚫고 있는 손영감은 구암에서 피비린내 나는 혈전이 일어날 것을 예감한다.

‘뜨거운 피’(감독 천명관, 제작 고래픽처스, 제공 키다리스튜디오,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키다리스튜디오)는 1993년 더 나쁜 놈만이 살아남는 구암에서 희수와 밑바닥 건달들의 치열한 생존 싸움을 그린 누아르를 표방한다.
90년대 초 작은 포구마을을 배경으로 ‘폼생폼사’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시급했던 동네 양아치 희수, 손영감, 철진, 용강(최무성 분), 아미(이홍내 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낭만과 멋짐에 취한 건달들의 삶보다 친가족처럼 지내 온 사람들의 의리, 사랑하는 가족과 여자를 위한 한 남자의 순정, 그리고 비정한 양아치 건달들의 배신과 갈등 등 기존 누아르의 관습을 이식했다. 무엇보다 타인의 말을 비판적으로 듣지 못하고 쉽게 넘어가고 배신하는 그들의 가벼움,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거침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을 부각시켰다.
건달 조직이 적대자 주변 사람들에게 가하는 신변의 위협, 배신, 사기 등의 소재로 ‘뜨거운 피’ 역시 기존 한국형 누아르의 공식을 따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멋짐’보다는 ‘생존’에 집중해 한층 더 뜨겁고 강렬하게 느껴진다.

정우, 김갑수, 최무성, 지승현, 이홍내 등 배우들이 차진 연기력을 발휘해 이번 영화에 ‘연기구멍’은 없다. 다만 이제 우리나라에는 양아치나 건달, 조폭들의 존재가 이미 희미해졌고 대중 예술문화에서조차 그들의 낭만성이 퇴색됐기 때문에 호연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에 공감할 만한 지점은 넓지 않을 터다.
김언수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천명관 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천 감독의 상업 장편영화 감독 데뷔작이다.
극장 개봉은 이달 23일.
/ purplish@osen.co.kr
[사진] 영화 포스터, 스틸사진, 스튜디오 디에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