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 베이고 피 흘린 가슴들의 새로운 시작 기대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3.18 12: 37

[OSEN=김재동 객원기자]  “믿을 뻔했어. 오빠는 찬영이 남자친구고 찬영이는 건강하고, 엄마는 사위를 만난 것처럼 설레고... 나도 거기 섞여서 주희랑 같이...”
16일 방영된 JTBC 수목드라마 ‘서른, 아홉’의 회차별 부제는 ‘불편한 진실’였다. 차미조(손예진)는 김진석(이무생 분)에게 그의 아내 강선주(송민지 분)가 찾아왔을 때 통사정 끝에 그녀를 돌려보낸 사연을 풀어내며 이렇게 말했었다.
그랬었다. 그 순간 모두는 얼마나 행복했었나. 사윗감 보듯 흐뭇하고 대견하게 진석을 바라보는 찬영모(이지현 분)의 시선하나로 모두가 따뜻해질 수 있었던 시간. 그 순간이 진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시한부’란 말을 급조해 통곡을 웃음으로 가장했었다. 전적으로 인생에 농락당한 친구를 위한, 그리고 그런 친구를 지켜보는 스스로를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꽃송이인양 보듬어본들 날서린 진실은 여지없이 살을 베어 핏물같은 눈물을 강요할 뿐이었다.
17일 방영분 ‘끝이라 생각될 때’에선 모두의 불편한 진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강선주의 통보에 딸 찬영의 불륜사실을 알게된 찬영 부모(서현철·이지현 분)는 찬영과 미조·주희(김지현 분)까지 불러내려 사실을 추궁하고 미조를 향한 부모의 원망을 돌리기 위해 찬영은 자신이 췌장암 4기의 시한부임을 밝혔다.
자식 일인데 베이고 피 흘리지 않을 부모 가슴이 어디 있을까. 찬영은 새벽 강변에서 세상의 마지막을 만난 듯 쏟아내는 엄마의 소리 죽인 비명과 탄식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김선우(연우진 분)는 아버지 김정택(조원희 분)과의 의절을 결정한다. 처음엔 동생 김소원(안소희 분)의 파양이 어머니 작고 후 심경 변화를 일으킨 소원의 요청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소원에게 상속될 재산에 대한 욕심으로 아버지가 강요한 것임을 알게 됐다. 그의 아버지는 국회의원 될 욕심에 소원을 입양한 후 쓸모가 다한 소원을 아무런 가책없이 파양해 버린 것이다. 상처받을 소원에 대한 배려도, 소원을 친동생처럼 사랑해온 선우에 대한 배려도 없는 무도한 처사였다.
또한 선우가 사랑하는 미조 역시 보육원 출신임을 안 후엔 미조 역시 천대했다. 선우는 더 이상 그 천박함을 참아내며 부자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어 관계의 종언을 고한다.
한편 장주희가 마음에 둔 중국집 차이나타운 사장 박현준(이태환 분)도 호텔 셰프 복귀를 요구하는 여자친구 조혜진(오세영)과 이별한다. 혜진이 원하는 겉치레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스스로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고 그럴 경우 자신도, 혜진도 행복할 수 없으리라는 점을 통찰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미조. 주희모 박정자(남기애 분)는 너무 곱게 자라는 미조를 보며 미조 친모에 관한 얘기를 무덤까지 끌어안고 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딸 같은 찬영의 죽기 전 버킷리스트중 하나가 미조 친모 찾아주기임을 알게 되고 미조 역시 미련을 못버린 것을 확인하고는 미조에게 친모의 편지를 전해준다. 발신지가 교도소로 되어있는 편지를.
미조와 친구들은 사기전과 7범이고 현재도 사기죄로 복역중인 친모를 만나기 위해 교도소로 면회를 간다. 그리고 혼자서 면회를 마치고 나온 미조는 친구들 품에 안겨 대성통곡한다.
믿었을 것이다. 자신을 세상에 내어놓은 엄마는 자신을 무척 사랑했을 것이라고. 다만 험난한 세파가 자신을 떼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을 것이라고. 그 부득이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멀리서나마 스스로를 자책하며 자신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그 엄마를 찾는다면 꼭 안아주며 나 이렇게 잘 컸다고, 더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너무 고와 친모얘기를 숨겼다”는 박정자의 발언은 그 믿음에 회의를 불러왔다. 그 회의는 차미조를 끊임없이 갉아먹어가며 자격지심을 부채질했고 급기야 가족과의 식사자리를 회피하는 김선우를 향해 "내가 부끄러워요? 내가 고아여서? 내가 입양아여서? 왜 막상 인사하려고 하니까 겁나? 내 친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겁나?"라며 울분을 터뜨리도록 만들었다.
더 이상 감정의 소모를 감당하기 싫어 확인차 나선 면회자리다. 면회실에서 둘 사이의 대화내용은 전파를 타지 못했다. 하지만 미조의 양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영치금을 요구하던 후안무치한 친모다. 둘 사이의 대화가 얼마나 통속적으로 흘렀을 지는 명약관화하다. 그래서 미조의 통곡은 친모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 마음속 멍울을 풀어내는 의식으로 읽힌다.
‘끝이라 생각될 때’라는 8회 부제는 이후 새로운 시작에 대한 암시를 품고 있다. 각각 친부와 친모를 떨궈낸 선우와 미조, 혜진과 결별한 박현준과 장주희, 딸의 시한부를 받아들인 찬영부모와 찬영, 그리고 찬영으로부터 “연인이 아닌 친구로 헤어지고 싶다”는 얘기를 들은 진석 등이 새롭게 써갈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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