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침체기, 될 것도 안 되기 쉬운 험준한 상황에 남다른 책임감으로 작품에 임한다. 첫 누아르 영화 '뜨거운 피'로 돌아온 배우 정우의 이야기다.
'뜨거운 피'는 1993년 더 나쁜 놈만이 살아남는 곳 부산 변두리 포구 구암의 실세 희수(정우 분)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밑바닥 건달들의 치열한 생존 싸움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 희수로 열연한 정우는 개봉을 하루 앞둔 22일 국내 취재진과 온라인 화상으로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기. 정작 정우는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영화 시장이 촬영부터 개봉까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임을 강조했다. "쉽게 투자받을 수 있는 감독님들도 안 된다"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려운 감이 없지 않지만 한국 영화를 응원해주는 분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라며 침체기 속 개봉을 맞은 심경을 담담하게 밝혔다. 특히 그는 김갑수, 지승현, 최무성, 윤제문 등 함께 호흡한 연기자들과 스태프들을 언급하며 "상대 배우 분들께 에너지를 받아서 연기했다. 덕분에 현장에서 날아다녔던 것 같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실제 정우의 고향인 부산에서 작품이 촬영된 점도 그에게 에너지를 준 요소였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분들 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있는 것 같다"는 그는 "그 정서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현장이 재미있었다. 그 시너지를 느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좋았다"고 촬영을 회상했다. 단, 작중 시기적 배경이 겨울이라 한여름에 겹겹이 옷을 껴입으며 추위를 표현해야 하는 건 고역이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출연 과정도 운명적이었다. 정우는 "머리로, 이성으로 선택했다기 보다 본능적으로 이 시나리오에 이끌렸다"라며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선택한 작품"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제가 누아르라는 장르를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내가 하면 이 장르가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다. 특히나 매력을 느낀게 한 인물의 서사를 그리는 작품이다 보니까 그 부분도 작품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크게 와닿았다.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캐릭터가 아저씨, 홀아비 느낌이 강했다. 40대 아저씨 느낌이 강해서 그런 부분들을 조금 걷어내면 어떨까 생각했다. 청춘 느낌이 들어가고 나만의 캐릭터를 그려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무겁고 진지하기만 한 누아르가 아니라 주변 환경, 배신과 음모로 점점 괴물로 변해가는 인물을 그리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에 제가 보여드린 연기를 탈피하려고 하기 보다는 보시는 관객 분들이 이질감 없게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게끔 톤을 잡았다"라고 연기 디테일을 설명했다.
이어 "누아르 장르 자체가 자칫 잘못하면 영화상으로 전체적인 영화의 톤에서 대사들이 떠보일 수 있으니까 그 부분을 가벼워 보이지 않게 하려고 했다"라며 "중반 이후 감정들이 쌓여서 괴물로 변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 감정이 전달될 수 있게 톤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수없이 현장에서 대사를 내뱉었다"라고 강조했다.

연기를 하면서 정우가 가장 중요한 게 생각한 부분은 "내가 희수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정우는 "내가 희수를 이해해야 캐릭터를 올곧이 이해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이 작품을 하면서는 한 인물의 서사를 그리는 작품이다 보니까 정말 자연스러우면서 어깨에 힘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면 희수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했다"라고 했다.
다만 그는 "중간중간 제작진 분들은 술과 담배에 쩔어있는 희수를 원하셨다. 그러면서도 푸석푸석해보이고 싶지 않았다"라며 "저는 희수가 어떤 이유에서든 섹시하고 매력적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매력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무겁게만 가지 않고 조금은 유머가 섞여 있으면 감정의 진폭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다. 거기에서 또 의상이라던지, 면도도 거의 안했다"라고 덧붙였다.
1981년생으로 40대에 접어든 정우는 나이답지 않게 보이는 동안 외모조차 이번 작품에서는 감추려 했다. 그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들은 말이 어떻게 보면 어려보이고 어떻게 보면 나이가 좀 들어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배우로서 이점이 되는 모습인 것 같다. 그 캐릭터로 살려고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얼굴이 나오는 것 같다"라며 "희수로 생활할 때는 조금은 나이가 들어보이고 거칠어 보이고 희수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편안하게 잠이 오진 않는 것 같다"라고 했다.

무엇보다 정우는 "감독님, 제작진 분들은 맨날 숙소에서 골방에서 대본만 보지 말고 바람도 쐬고 술은 잘 하지 못하지만 맥주도 한 잔 기울이고 바닷가에서 산책 좀 하면서 편안하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러기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라며 작품에 임한 부담감과 주연으로서의 부담감을 털어놨다.
그는 "사실 저희 영화가 예산이 그렇게 적은 예산의 영화는 아니었다. 중간에 영화를 진행하면서 투자 부분에서 난항이 있었다. 이제 와서 편하게 말씀을 드리는 거지만. 그 진행 과정들을 제가 다 알지 못했다면 저도 편안하게 고향 부산에 내려가서 바닷가도 보고 회도 한 점씩 먹으면서 편안하게 촬영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기엔 제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고 어렵게 투자가 돼서 진행되는 걸 알았는데 감사하기도 하지만 제가 가지고 가야 하는 부담감이 분명히 있었다"라고 했다.
정우는 "잘 해내고자 하는 열망이 끓어올라있는 상태였다. 투자자 분들, 제작자 분들께 주연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잘하고 못하고는 둘째치더라도 작품을 대하는 자세나 과정에 있어서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게 그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봤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희수라는 캐릭터를 볼수록 예민하고 날것의 느낌을 주고 있었다. 제가 이 작품이 첫 자품이 아니다 보니 연기를 하다 보니 연기를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익숙함을 갖고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하면 날 것 같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에 집중했던 것 같다. 그에 대해 집중을 하려고 했다"라며 "그러다 보니 편하게 하루하루 생활할 수 없었다"라고 했다.
"작품 성격에 따라 바뀐다"는 그는 "그 이후에 촬영한 '이 구역의 미친 X', '멘탈코치 제갈길'은 즐겁게 유쾌하게 즐기면서 촬영하고 있다. 작품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대하는 자세들이. 그런데 희수라는 캐릭터와 '뜨거운 피'라는 영화는 제가 현장에서 유쾌하게 장난치면서 임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손에 피를 묻히고 칼을 들고 있고 항구 주변에서 촬영했는데 거기는 주변이 다 쇳덩이였다. 그런 공간에서 어떻게 희희낙락하면서 농담하면서 촬영할 수가 없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심지어 "끓어오르는 욕망, 괴물로 변하는 과정을 제 눈에서 감정 표현을 하는 데 있어서 눈이 중요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희수의 눈은 맑은 눈이 없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더 불안했다. 맑은 눈으로 연기를 하면 연결이 튈 텐데하는 걱정이 있었다"라며 "볼은 항상 홀쭉했다. 편안하게 전날 라면 한 그릇 먹지를 못했다. 입맛도 없었지만 좋아하는 음식 편안하게 한번 먹지 못했지만 다음 날 홀쭉한 제 얼굴을 모니터로 보면 안심이 됐다. 거친 제 얼굴, 충혈된 제 눈을 보면 안심 아닌 안심을 했다. 컨디션이 좋은 얼굴을 보면 속상했다.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밝히기도.
라면 한 그릇 쉽게 먹지 못한 고된 촬영의 결과물 공개를 앞두고 있는 상황. 정우의 노력은 어떻게 보상받을까. 시장 자체가 침체기임에도 불구하고 정우에게 남는 것은 있었다. "결과가 어떻든 좋든, 안 좋든 노력을 하고 안 좋은 거랑 노력을 안 하고 안 좋은 거랑은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 그의 노력과 진심이 관객들을 극장으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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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키다리스튜디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