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음 국제 중학교 학생 김건우가 같은 반 친구들에게 학폭을 당하고 고통을 호소하다 투신한다. 건우는 의식불명 상태로 호숫가에서 발견되는데 그가 임시담임 송정욱(천우희 분)에게 남겼던 편지에는 가해 학생 4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변호사 강호창(설경구 분)의 아들 강한결(성유빈 분), 병원 이사장(오달수 분)의 아들 도윤재, 전직 경찰청장(김홍파 분)의 손자 박규범, 한음중 영어교사(고창석 분)의 아들 정이든. 이들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피의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작당회의를 하고 로펌 변호사를 만나 소송을 준비한다. 온 세상의 눈과 귀가 국제 중학생 투신사건에 쏠린 가운데 건우의 임시담임 송정욱은 교사직을 내걸고 양심 선언을 한다. 결국 그녀 덕분에 건우 엄마(문소리 분)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제공 폭스인터내셔널 프로덕션 코리아, 배급 마인드마크, 제작 더타워픽쳐스 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코리아, 공동제작 주식회사 리버픽쳐스)는 스스로 몸을 던진 한 학생의 편지에 남겨진 4명의 이름, 가해자로 지목된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려는 부모들의 추악한 민낯을 담았다.
지난 2012년 열린 제5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에서 상연됐던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및 동명의 일본소설을 각색해 한국영화로 리메이크했다. 꾸준히 발생하는 국내 학폭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 더 이상의 피해자들이 양산되지 않길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느껴진다.

김지훈 감독은 20일 온라인을 통해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하타사와 세이고 작가님이 제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시고 마음이 움직였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작가님의 말에 감사했고 ‘원작에 누가 되지 않겠다’는 말씀을 전해드렸다. 세이고 작가님은 원작은 신경쓰지 말고 저만의 상상력을 더해 피해 학생들의 아픔을 잘 전달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 말이 제게 하나의 힘이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감독은 “제작을 결정했을 당시 이 영화를 누가 볼 것인가 하는 견해가 있어서 투자받기가 힘들었다. (학폭은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풀어내왔기 때문에) 이 영화의 보편적 정서와 서사가 익숙하지 않았던 거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보며 감정이입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에 우리가 익숙해져 있어서다. 저는 원작이 주는 메시지가 가해자를 통해 피해자를 어루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야기에 매료됐다”고 이 영화를 각색하고 연출해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감독은 그동안 ‘화려한 휴가’(2007), ‘타워’(2012), ‘싱크홀’(2021) 등의 영화를 선보이며 감동과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처음 (일본) 연극을 봤을 때 느낀 정서는 분노였다. (피해)아이의 영혼이 무너지는 순간이 제게도 전해지면서 마음 속에 분노가 일었다. 그 마음은 이 영화가 탄생한 원동력이 됐다. 또한 원작을 봤을 때 학폭을 가해자의 시선에서 바라봤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영화를 만들고 나면 그 감정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분노가 남아있다. 항상 제가 권선징악을 꿈꿨기 때문이다. 그래도 연출자로서는 (학폭 가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게) 곤혹스럽고 고통의 순간이었다”고 연출 계기를 전했다.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로서 예전에는 ‘우리 아이가 피해자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이 영화를 만들면서부터 ‘아이가 가해자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가 생겼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지옥 같은 상황이었다.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이 힘들어 할수록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거 같더라. 한쪽에선 벗어나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쾌감을 느낀다. 저는 연출자로서 그걸 극대화시켜야 하는 게 힘들었다. 근데 자료조사를 해보면 실제에서는 더 심각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어 “저는 원작을 살리면서도 한국적인 정서를 반영해 이야기의 얼개를 풀어갔다. 서사로서 참신했던 것은 앞서 얘기했듯 가해자의 시선으로 (학폭을) 풀어냈다는 거다. 가해자의 시선에 공감하고 싶지 않았고 그들의 시선을 캐치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해자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게 제가 이 영화를 풀어가는 키워드였다. 그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는데 그게 곧 피해자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서 이해해보려고 했다”고 연출 방향을 설명했다.
그러나 개봉이 미뤄지면서 5년 동안 묵혀두게 됐다. 이에 감독은 “5년 전 촬영을 마쳤고 영화의 개봉이 6번 정도 미뤄졌다. 여러 가지 부침이 많았는데 감독으로서 관객을 못 만난다는 게 마치 생명력이 소실되는 거 같더라. 근데 제 마음 속에 계속 갖고 있었던 것은 ‘건우의 아픔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건우의 마음이 무너지고 아파하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 쉽지 않지만 조금이나마 같이 느끼고 아파하고, 그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싶게끔 하고 싶었다. 마침내 그 결실을 이루게 됐는데 제 노력이 이뤄진 거 같아 감회가 새롭다”고 개봉 소감을 남겼다.
개봉이 미뤄진 사이 지난해 연예계에 학폭 이슈가 불거지며 영화의 시의성은 한층 높아졌다. “흥행에 대한 것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 영화를 계속 붙잡고 있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감독은 전작 ‘타워’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배우 설경구와 재회했다.

이날 김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며 “설경구에게 설명을 했던 게 ‘대구 수성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사건이다. 배우가 그 장면을 보고 감정이입이 되어 연기를 표현할 감정이 나왔다. 제가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말씀을 드리진 않았는데 보자마자 그런 감정이 나왔다. 근원적인 감정은 콘트롤 되지 않는다. 그게 제가 보기엔 ‘OK’였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조롱도 가해”라는 김 감독은 “은폐, 외면, 무마는 2차 가해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피해자를 더 아프게 하는 거다. 가해자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 것도 가해지만 그 이면에 ‘내 아이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무모한 마음도 가해다. 잘못된 진실을 맹신하는 게 가해다. 비뚤어진 사랑을 하고 있는 부모들의 감정이 더 큰 가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연출자로서 자신의 아이를 탈출시키려는 부모의 감정에 가장 중점을 두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 감독은 전작들을 언급하며 “제가 재난영화를 좋아한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도 영혼의 재난영화라고 생각한다. 자연재해는 시간이 걸려도 복구가 되지만, 마음의 재난은 복구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혼이 다친 것은 복구되지 않는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가 한 편의 영화지만 우리가 그 아이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앞으로 최소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작은 단초가 돼 학교폭력을 없애자는 사회 전반적 공감대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4월 27일 개봉.
/ purplish@osen.co.kr
[사진] 영화 포스터, 스틸사진, (주)마인드 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