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3세 이하(U23)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황선홍 감독은 선수 시절 월드컵에서 골을 넣고 감독이 아닌 코치에게 달려갔다.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감독이다. 과거 자신처럼 선수들이 득점 후 코치에게 달려간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황선홍호는 지난 1일(한국시간) 우즈베키스탄에서 막을 올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을 소화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19일 결승전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첫 출발이 좋다. 지난 2일 한국은 말레이시아와 조별리그 C조 1차전을 치러 4-1 대승을 거뒀다. 이상민(23, 충남아산), 김태환(22, 수원삼성), 조영욱(23, FC서울)이 나란히 골맛을 봤다. 조영욱은 후반전에 투입돼 멀티 득점을 기록했다.
한국은 오는 5일 오후 10시에 열리는 베트남과 2차전에서 승리를 가져와 다음 라운드 진출 청신호를 노린다. 조 2위까지 8강행 티켓이 주어진다.
U23 아시안컵 대회는 잠시 뒤로하고, 딱 20년 전 이날 황선홍 감독은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자신의 ‘축구 인생’에 있어 다신 없을 황홀한 골맛을 봤기 때문.
잠시 시곗바늘을 2002년으로 돌려보자. 한국에서 한일월드컵이 열렸다. ‘붉은 악마’가 아니면 거리에 나올 수 없는 분위기 속에 한국은 6월 4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폴란드와 조별리그 첫 경기 킥오프를 했다.
선발 출격한 황선홍 감독은 틈만 나면 폴란드 골문을 노렸다.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린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머리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등번호 18번이 새겨진 붉은 유니폼보다 골을 넣고자 하는 황선홍 감독의 눈빛이 더욱 눈에 띄었다.
기어코 일을 냈다. 0-0이던 전반 25분 황선홍 감독은 선제골을 작렬했다. 좌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에 왼발을 정확히 갖다 대 논스톱 슈팅으로 폴란드의 골망을 갈랐다. 너무 기쁘면 소리를 낼 수 없단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경기장은 삽시간에 함성으로 가득 찼다. 아니, 전국이 떠들썩했다.

득점 후 황선홍 감독은 20년이 지나도록 회자되는 장면을 만들었다. 그는 공이 골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본 뒤 선수들에게 “나와, 나와!”라고 소리치고 한국 벤치로 질주했다. 당시 한국을 이끌던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그가 달려갈 것으로 보였지만, 예상은 시원하게 틀렸다. 박항서 코치(현 베트남 감독)에게 쏙 안겼다.
한국은 황선홍 감독의 골을 시작으로 후반 8분 고(故) 유상철의 추가골까지 터지면서 2-0으로 48년 만에 역사적인 월드컵 첫 승리를 일궈냈다. 4강 신화의 시작이었다.
문뜩 황선홍 감독의 생각이 궁금했다. 만약 이번 U23 아시안컵에 출전한 선수가 득점 후 자신이 아닌 코치에게 달려간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U23 아시안컵 취재차 우즈베키스탄에 와 있는 기자는 황선홍 감독에게 직접 물었다.
질문을 들으면서부터 웃고 있던 황선홍 감독은 “(선수가 코치한테 달려간다면) 제가 막아야죠 뭐(웃음). 막고 내가 가서 안아야지”라고 운을 뗐다.
이어 “안 그래도 (히딩크) 감독님과 영상으로 방금 잠깐 얼굴 뵙고 했는데, 뭐 미안하죠(웃음). 근데 그때 당시에는 우리 팀 벤치에 앉아있던 소외된 선수들과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었어요. 히딩크 감독님도 이해하실 겁니다”라고 전했다.
“제가 막아야죠”라고 말했던 황선홍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저처럼) 코치들, 벤치에 있는 선수들하고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다고 하면 얼마든지 (포옹을) 양보해줄 수 있는 용의가 있어요”라며 씁쓸함과 의미심장한 그 중간 어딘가의 목소리 톤으로 생각을 바꿔 말했다. /jinju21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