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복수를 하려거든 무덤을 두 개 파두어라. 복수할 상대와 나를 위해. 내 옆에 당신 자리 있으니 기대해” 한이한(소지섭 분)이 구진기(이경영 분)를 향해 뱉은 일갈이다.
25일 방송된 MBC 금토드라마 ‘닥터로이어’에서 마침내 한이한과 구진기가 만났다. 한이한은 아너스핸드 법률대리인으로 투자계약에 참여했다. 이 자리서 반석R&D 센터 소유권을 노리고 있는 제이든 리(신성록 분)는 위약금을 1억달러에서 10억달러로 올리길 요구했다. 주가가 떨어지면 반석 측에 대단히 위험한 독소조항이 될 수 있지만 세계 최초 치매치료제 개발 발표를 눈앞에 두고 있는 구진기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계약을 마친 후 구진기는 계약 전 자신의 목을 그었던 한이한에게 회유의 손길을 건넨다. “이쯤에서 화해하지. 흉부외과에 자네 같은 인재가 필요해. 흉부외과장으로 시작해 10년 뒤 병원장 자리를 약속하겠다”며 “다시는 이렇게 먼저 손 내미는 일이 없을 것”이란 단서도 붙였다. 이에 한이한은 “이런 역겨운 제안을 다시 받을 필요가 없어 다행”이라고 대꾸한다.
구진기는 그런 한이한을 비웃으며 “지금의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나? 나한테 복수하겠다고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환자의 목숨을 가지고 원수인 나와 거래를 하고 있지 않나. 식상하지만 이럴 때 어울리는 말이 있지. 괴물을 잡으려다 괴물이 된다.” 그런 구진기를 향해 한이한은 구진기를 응징하기 위해서라면 자신도 기꺼이 무덤 속에 들어갈 각오가 돼 있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경영은 스스로를 ‘괴물’로 지칭했다. 더 이상 감출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는, 스스로 내린 양심의 파산선고다.
공자의 말을 인용한 한이한에게선 파국을 예견하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내달리게 만드는 어떤 슬픔의 힘이 전해진다.

옛 연인 금석영(임수향 분)과의 관계도 그렇다. 오해는 모두 풀렸지만 가까워질 수가 없다. 아니 다시 가까워지려는 마음을 끊임없이 단속해야 한다. 자신은 구진기와 함께 묻힐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현정(김호정 분)이 찾아와 한이한에게 맡기려던 아들 심장 수술을 번복했을 때 금석영은 “그래서 또 다른 환자 심장을 뺏을 생각이냐”는 한이한의 말을 듣고 조현정이 동생 죽음과 관련된 인물임을 알아차렸다. “우리 석주같은 피해자를 또 다시 만든다면 당신 아들을 지옥에서 살게 할 거야. 내 모든 걸 바쳐서 진실을 밝혀 살인자 부모를 둔 죄인으로 평생을 살게 할 것”이라며 분노도 했다.
한이한의 어깨에 기대 “죽이고 싶었다”며 눈물을 떨구는 금석영을 이한은 안아주지 못하고 그저 어깨만 토닥일 뿐이었다. 그 위로의 손길마저 주저주저하는 한이한의 모습은 애처로웠다.
독일의 저술가 스베냐 플라스펠러는 ‘조금 불편한 용서’에서 “용서한다는 것은 나에게 일어난 고통스러운 일이 더 이상 나의 존재를 무너뜨릴 정도로 상처를 내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이한이 구진기를 용서해야 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면허있는 살인자 구진기를 응징하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금석주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심장이식 수술을 하며 인간이 아닌 돼지의 심장으로 생각한다는 구진기다. 조현정을 협박하며 언제든 그 아들을 식탁 위에 올릴 수도 있다는 망발을 서슴치 않는 구진기다. 그런 인간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응징받아 마땅하다. 사적 복수의 차원을 넘어 공익의 이름으로 처단되어야 마땅하다.

구진기는 더 먹고 더 쌓으려는 타락한 권력의 상징이다. 소소한 이권과 무자비한 협박으로 사람들을 길들인다.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를 내세워 정의를 왜곡하고 부패를 당연시하게 만든다.
다행히 한이한의 복수는 차갑다. 부둥켜안고 같이 불길에 휩싸이는 무모함이 없다. 제이든 리를 이용한 성동격서로 조정현의 아들을 빼돌리고 수술집도에 나선다. 수술에 성공하면 이미 사형수로 복역중인 남혁철(임철형)은 법정에서 구진기의 박기태 살인교사를 증언할 것이다.
“복수는 차갑게 먹어야 맛있는 음식과 같다”고 한다. 한이한이 비록 복수의 여정을 떠나기 전 두 개의 무덤을 파놓았더라도 여정을 마친 후엔 하나의 무덤만 채워지길, 그 무덤 속에서 구진기가 홀로 머리를 쥐어뜯고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길, 그리고 그 무덤 밖에서 한이한과 금석영의 미뤄진 사랑이 결실을 맺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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