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0년차' 설경구 연기 지향점…"나이 잘 먹은 배우"(종합)[현장의 재구성]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2.07.08 18: 50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말이 기사 타이틀로 쓰이면서 제 이름 앞에 수식어가 됐다.(웃음) 제가 인기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배우 최초의 지천명 아이돌로서 기분이 좋다.”
배우 설경구(56)가 8일 오후 경기도 부천 고려호텔에서 열린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설경구는 설경구다’ 배우 특별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은 ‘지천명 아이돌’에 대해 이같은 생각을 전했다.
일명 ‘불한당원’으로 불리는 설경구의 팬들은 그의 열성적인 팬덤을 자처하며, 행사 때마다 나타나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고 있다. 생일에 선물을 보내기도.

이에 그는 “지금부터가 중요한 거 같다. 저는 배우로서 나이를 잘 먹어가고 싶다”라며 “몸매 관리, 얼굴 관리를 하면서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나이를 잘 먹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힘주어 말했다.
‘설경구는 설경구다’라는 타이틀로 열린 설경구 배우 특별전에는 주인공 설경구, BIFAN 조직위원장 겸 영화감독 정지영이 참석했다. 이날 BIFAN 프로그래머 모은영의 사회로 간담회가 진행됐다.
앞서 BIFAN에서는 전도연, 정우성, 김혜수를 집중 조명한 바 있는데,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잠정 중단되면서, 2019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열리게 된 것이다. 그동안 그는 실존 인물, 영화적으로 만든 가상의 캐릭터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관객들에게 감탄을 안기곤 했기에, 올해 BIFAN의 배우 특별전 주인공으로 선정될 만한 대상자였다.
1993년 연극 ‘심바새매’로 무대활동을 시작한 설경구는 이창동 감독의 명작 ‘박하사탕’으로 2000년부터 주목할 배우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설경구는 "그 영화 개봉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제 이름은 모르시지만 지나가면 '어? 박하사탕이다'라고 부르셨다.(웃음) 그래서 제가 당시엔 박하사탕으로 불렸고, '공공의 적'이 흥행면에서 성공하면서 비로소 저를 알아봐 주시더라"고 회상했다.
이에 정 감독은 ‘박하사탕’ 촬영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하며 포문을 열었다. “이창동 감독이 일산에서 촬영을 하고 있다고 해서 놀러갔었는데 당시 신인이었던 설경구를 처음 만났다. 그때는 내가 지금보다 대감독이었다. 하하. 설경구에게 먼저 인사를 했는데 제대로 받아주지도 않고 아프다면서 먼저 가더라. 그래서 이 감독에게 저 배우가 왜 그런지 물어보니 ‘캐릭터에 푹 빠져있다’고 하더라. (캐릭터와 하나가 됐다는 생각에)존경심이 생겼고, (영화 ‘역도산’으로 살을 찌운 뒤 감량을 위해) 일산에서 서울까지 걸어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그때는 ‘이 배우는 좀 독한 배우다’라는 생각을 했었다”는 일화를 들려주며 설경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당초 신철 집행위원장이 이날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설경구에 대해 더 많이 안다"는 정지영 감독이 자처했다고 한다.
이날 설경구는 그간의 활동에 대해 되짚어달라고 하자 “소회까지는 모르겠지만 한 작품 한 작품 해오면서 저한테는 30년이 크게 와닿았다"며 "저는 그간의 제 작품들을 찾아보진 않는 스타일이다. 보기가 부끄러워서 그렇다.(웃음) 근데 오늘 여기에 와서 '더 액터-설경구는 설경구다'라는 책자를 보는데 아련했다. ‘이런 작품도 있었구나’ 싶더라. 제가 영화는 장선우 감독님의 ‘꽃잎’(1996)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좀 아련하다”고 말하며 씩 웃었다.
연극무대에서 스크린으로 넘어오며 다양한 장르, 다양한 캐릭터를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표현해 온 설경구에게 ‘연기 비법, 연기 요령이 있느냐’고 묻자, “그런 것은 없다. 배우가 느끼는 대로 하는 거다. 연기 비법은 앞으로도 없을 거 같다”고 단언했다.
한편 앞서 언급한대로 변성현 감독의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을 하면서 설경구에게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에 그는 “사실 그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제가 50세였다. 당시 인터뷰를 할 때 어느 기자분이 ‘지천명이 되셨는데 아이돌 같은 인기를 얻으셔서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그날 기사 타이틀로 ‘지천명 아이돌’이 나오면서 그런 수식어가 생겼다”면서 “(배우에게 인기란) 나쁠 이유는 없는 거 같다. 힘이 된다. 즐거운 일이어서 좋다. 무엇보다 제가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이어서 인기가 있다는 건 좋은 거 같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아이돌처럼)그렇게까지 인기가 높진 않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도.
그러나 정지영 감독은 "저는 설경구가 대한민국 연기의 변화를 가져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전에는 안성기 배우가 있었다. 그는 아역부터 시작해서 연기를 배우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설경구는 연기를 공부해서 나온 최초의 스타다. 설경구처럼 연극배우 출신들이 그 이후에 (대중매체로) 상당히 많이 나왔다”고 귀띔했다.
설경구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1) ‘공공의 적’(2002) ‘오아시스’(2002) ‘광복절 특사’(2002) ‘실미도’(2003) ‘공공의 적2’(2005) ‘해운대’(2009) ‘감시자들’(2013)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 ‘자산어보’(2021)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2022)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지금까지 충무로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앞으로 ‘유령’ ‘소년들’ ‘더 문’ ‘길복순’ 등의 신작 공개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설경구는 "저는 이번 특별전 이후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이 더 깊어졌다. 저의 숙제는 물론 연기겠지만 여전히 풀어나가고 있다. (겉모습 관리보다) 나이를 잘 먹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햇수로 데뷔 30년차가 됐지만 제가 한국영화계에서 큰 역할을 한 거 같지는 않다.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걸어오다 보니 30년이 된 거다. 제 숙제는 연기지만, 앞으로 잘 풀어나가겠다”고 다짐하며 자리를 마무리 했다.
짤막한 배우 특별전을 통해 그의 필모그래피를 모두 되짚어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대면으로 배우를 만나 그간의 여정을 잠시 되돌아보는 시간은 의미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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