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욕망…수지가 그린 '안나'와 '유미', 두 개의 얼굴[Oh!쎈 레터]
OSEN 김나연 기자
발행 2022.07.10 09: 00

 모든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지옥을 벗어나게 됐다. 라이터 불에 자신의 모든 과오와 후회를 태워 없앤 유미는 그토록 자신을 옭아매던 '안나'라는 족쇄를 벗고, 새로운 삶을 찾아 정처없이 걸어나간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ANNA)에서 안나의 이름을 빼앗고 가짜 인생을 살기 전 유미는 하고싶은 것도, 할수 있는 것도 많았다. 단 한가지 흠이 있다면 가진게 없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것.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자 하는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던 유미의 삶은 서서히 엇나가기 시작했다. 전교 1등 모범생이었던 유미는 수능을 코앞에 두고 고등학교 선생님과 교제를 한 사실이 발각돼 강제 전학을 당하고, 쫓기듯 고향을 떠나 새롭게 다니게 된 학교에서 받게 된 것은 급격히 떨어진 성적표와 대학 불합격 통보였다.
유미의 거짓 인생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됐다. 없는 살림에도 꼬박꼬박 생활비를 지원해주고 있는 아버지를 걱정시키기 싫어 대학을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했고, 등록금이라고 받은 돈으로는 재수 학원에 등록했다. 이 가운데 우연히 같은 대학 선배였던 지원(박예영 분)과 친해지면서 유미는 이현여대 신입생으로서 거짓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중 대학교지 편집부 총회에서 알게된 재호(허형규 분)와 사랑에 빠져 함께 미국 유학까지 약속하며 밝은 미래를 꿈꿨지만, 출국 직전 모든 거짓말이 들통나면서 유미는 다시 현실로 내동댕이쳐졌다.

여기에 아버지의 부고까지 전해들은 유미는 허황된 꿈을 쫓기보다 현실에 순응하는 것을 택하기로 했다. 생활비를 벌고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렇게 취직한 마레 갤러리에서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삶을 살던 현주(정은채 분)와 만나게 됐다. 열등감, 질투, 분노를 눌러담으며 말단 직원 생활을 하던 유미는 끝내 쌓여있던 감정들이 폭발하면서 현주의 신분증과 학위 서류, 현금 등을 훔쳐 달아난다.
어린시절 맹랑했던 유미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 없었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밝은 색채를 띠었던 유미의 눈은 현실에 부딪히며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마레 갤러리에서 일을 하는 동안, 유미는 영혼 없는 인형과도 같았다. '안나'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현주의 인생을 훔쳐 학원 강사를 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그토록 원했던 것을 손에 쥐는 듯 했을때도 유미의 얼굴은 단 한번도 진짜 행복을 담지 않았다. 그리고 유망한 벤처기업 대표 지훈(김준한 분)과 결혼하면서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려던 유미의 앞에 현주가 나타나면서 또다시 유미의 삶은 통채로 흔들렸다.
가슴 한 켠에 묻어뒀던 불안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지훈의 폭력성과 권력욕으로 인한 압박까지 유미를 짓눌렀다. 지훈은 유미의 정체로 자신을 협박하려 들던 현주를 죽이고, 이에 충격을 받은 유미에게는 "다시 이유미로 살 자신 있어?"라며 침묵할 것을 강요했다. 지옥 끝까지 내몰린 상황에서야 유미는 자신이 정말 원했던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그는 정치부 기자로 일하는 지원에게 지훈의 비리 자료를 건네주고, 과거의 자신과 닮은 조비서(박수연 분)에게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를 돌봐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지훈이 서울 시장에 당선되고, 그의 아들을 데리러 가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던 중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진다. 그러던 중 지훈이 아들을 데리러 가는 게 아닌, 정신병원에 자신을 가두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지훈은 갑작스레 나타난 사슴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핸들을 꺾었고, 이를 틈타 유미는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려 사고를 유발했다. 이후 홀로 차에서 빠져나온 유미는 언젠가 조비서에게 건네받았던 라이터로 자신의 가방과 스카프에 불을 붙인 후 차 안으로 집어 던졌다. 그렇게 '가짜 안나'는 전소한 자동차와 부상을 입고 차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지훈과 함께 모두 불타 사라졌다.
'안나' 속 '안나'와 '유미'는 분명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한 여자가 겪는 인생의 다층적인 상황을 더욱 입체적으로 시각화하기 위해 무려 150벌의 의상을 소화했다는 수지는, 의상에 따라 표정과 눈빛마저도 다채롭게 변화하며 전혀 다른 '안나'와 '유미'의 삶을 연기했다. 매사에 자신감 넘치고 당돌했던 10대의 유미부터 고단한 현실에 지친 20대의 유미, 그리고 모두의 이상인 완벽한 '안나'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그려낸 수지는 "마음 먹은 건 다 하는" 유미 그 자체였다.
드라마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자동차 사고 신에서 수지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안나' 1화의 시작부분에는 허망한 표정으로 불을 붙이고, 이를 차 안에 던진 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수지의 모습이 비춰진다. 그런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한방울은 이유미라는 인물의 삶에 궁금증을 갖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더불어 마지막화에서 타오르는 장작을 바라보며 사고 당시를 회상하는 수지의 표정은, 여전히 거짓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미의 복잡한 상황을 대변해주는 듯 하다.
유미는 모든 것을 불태운 후에야 참아왔던 슬픔을 터트리듯 눈물을 쏟아냈다. 안나로서 살며 지켜왔던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지훈의 아내 '안나'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유미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캐나다의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한다. "항상 그랬어요. 난 마음먹은 건 다 해요"라는 말 그대로, 유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안나라는 가면도, 그릇된 욕심도, 숨막히는 현실도 모두 타오르는 불꽃에 내던진 유미. 가족도, 거짓말로 일군 부와 지위까지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은 유미는 중국 여자아이 '리'로서 또 어떤 인생을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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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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