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 항상 중립을 굳건히 지키며 오로지 인질들의 안전만을 중요히 생각하는, 자신의 신념을 위협하는 조폐국장 조영민(박명훈 분)과 사사건건 대립하며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인물. 바로 조폐국 부국장 황현호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통일을 앞둔 한반도를 배경으로 천재적 전략가와 각기 다른 개성 및 능력을 지닌 강도들이 기상천외한 변수에 맞서며 벌이는 사상 초유의 인질 강도극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동명이 스페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 부국장 황현호는 조폐국의 북한 출신 직원 중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캐릭터로 차분하고 성실하며 원리원칙을 지키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황현호의 뒤에는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며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 배우 홍인이 있었다. 홍인은 외형부터 어색함 없는 사투리까지 황현호 그 자체로 분해 작품의 한 축을 이끌었다. 지난달 24일 ‘종이의 집’이 공개된 후 OSEN과 만난 홍인은 “생각했던 것 만큼 잘 나온 것 같다. 여러 대중 분들의 칭찬과 안 좋은 질타도 있지만, 그건 어느 작품이든 다 있는 거라서 모든게 다 재밌다. 댓글 보는 재미도 있고 작품 보는 재미도 있다”고 작품을 마친 소회를 밝혔다.
그는 “원래 항상 작품을 두번 본다. 한번은 저만 보여서 긴장한 상태로 보고, 두번째로 봤는데 다들 열심히 했으니까 결과가 어떻든 잘 나온 것 같다. 또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은 처음이라서 ‘나도 넷플릭스 사람이 된 건가? 첫발내딛나?’ 싶어서 기분 좋더라. 이 관계가 잘 이어졌으면 좋겠다. 결국 배우들은 작품이 많은 곳에서 살게 되니까. 집이 하나 늘었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그간 출연한 작품들이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된 적은 많았지만, 오리지널 작품으로는 처음 작업해본 홍인은 촬영 현장에 대해 “쾌적하고 좋은 환경이더라. 배우들이 연기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현장은 잘먹고 잘 쉴수만 있으면 된다. 그 외에는 당연히 해야할일을 하는 건데, 그 당연한 일을 잘할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준다. 제작사도 넷플릭스도 합의해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힘든 촬영날 다음엔 꼭 쉬게 해주고, 아무래도 코로나가 껴있다 보니 좀 더 조심하고 그런 부분들도 있었다. 저는 검사를 많이 하더라도 그만큼 안전한 게 좋아서 그런 부분이 좋더라”라고 만족감을 전했다.

조폐국에서 벌어지는 인질 강도극을 그린 만큼 ‘종이의 집’은 대부분의 이야기가 한반도 공동경제구역 JEA에 설치된 조폐국에서 펼쳐진다. 제작진의 고심 끝에 만들어진 조폐국은 한국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외형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홍인은 “세트장이라는 게 볼때마다 신기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안타깝더라. 수명이 정해져있는 건물이니까. 항상 ‘이게 무너지려면 얼마 안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저는 연기할 때 공간이나 사물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소품팀도 열심히 고생해서 배치하지 않나. 그래서 이 장치는 왜 이런걸로 했는지 많이 물어보고 써먹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세트장에 들어가자마자 세트장에 애정이 많이 쌓이는 편이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종이의 집’은 제가 인질이라 행동 범위가 한정돼 있다. 그래서 굳이 소품을 이용하는 것 보다는 거기에 잘 묻게 하는게 우선이었다. 이질감이 드는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조폐국 안에서 내가 잘 묻어있게 하려고 했다. 부국장은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다 보니 거기서 늘 생활하는 인물처럼 굴어야해서 많이 어울리려고 노력 했다”고 설명했다.
‘종이의 집’은 전 세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시즌5까지 제작된 인기 스페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그 때문인지 한국판 ‘종이의 집’ 리메이크에 대해 우려를 표하거나, 공개 후에도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뒤따랐다. 이에 홍인은 “기대값이라는게 있다 보니 거기서 좋은 얘기만 기대하는것 자체가 불가능한거다. 거기다 모든게 너무 빨리 변해가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당연히 좋은얘기보다 자극적이고 나쁜얘기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염두에 두고 있으면 겁만 더 늘지 할수있는게 없지 않나. 어차피 똑같이 해도, 다르게 해도 욕을 먹을텐데 그럼 우리만의 해석대로 우리가 만들어가자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특히 ‘종이의 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원작을 따라가는 반면, 홍인이 맡은 부국장 황현호 역은 원작에 없는 캐릭터라는 점이 특징적이었다. 홍인은 “사실 난이도를 따졌을 때 원작 캐릭터를 리메이크 하는 배우들이 더 힘들었을 거고, 많이 고민했을 거다. 저는 비교 대상이 없으니 늘 똑같이 하던대로 준비했다. 물론 사투리가 있으니 뭔가를 더 준비한 건 있었지만, 그 외에는 당연히 해야할것을 늘 했다. 적어도 비교의 두려움은 없으니까”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부국장이라는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체중을 감량하고, 외형부터 사투리 억양과 말투까지 세심하게 분석하고 체크한 만큼 ‘종이의 집’ 공개 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부국장 매력있다’는 평과 홍인의 연기력에 대한 칭찬이 쏟아지기도 했다. 홍인은 “대본을 봤을때 가장 매력있다고 느낀 캐릭터가 부국장이었다. 어디하나 치우치지 않고 자기 신념에 충실한 캐릭터라 생각했다. 시각적으로 봤을 때 좌우에서 빠르게 움직이는데 혼자 가만히 중심을 잡고있는 느낌이라 매력있었는데, 보시는분들도 좋다고 해서 사람 보는 눈은 같구나 싶더라. 너무 감사하다. 저는 부국장으로 사는 동안 진짜 재밌었고,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를 하게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매력있다고 해주시니 더 기분 좋다”고 뿌듯함을 전했다.
이어 “저는 가족이나 스태프들이 가장 저를 많이 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창피한 사람이 되고싶지 않다. 우리 가족이 식당에서 밥먹는데 옆에서 내 욕을 한다거나, 오디션에 갔는데 ‘연기 못하던데?’라는 애기를 들으면 회사도 얼마나 일하기 싫겠나. 이사람들이 창피하게 만들고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며 “(칭찬) 댓글 보면 ‘오늘도 0.1계단이 쌓였구나’라는 느낌이 들어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홍인은 부국장 캐릭터를 연기하는 과정에 있어서 ‘도전’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부국장 캐릭터 자체가 도전이라는 게 아니라, 연기 하면서 그때그때 배우는 것들이나 깨닫는 게 있지 않나. 그 중에 하나를 제가 이번에 개인적으로 도전해봤다”고 특별한 의미를 전했다.
이어 “억지로 바꾸는게 아니라 깨닫는게 있을때마다 연기 스타일을 매번 바꿔보는거다. 제가 진짜 좋아하는 배우가 라이언 고슬링인데, 대부분 외적인 표현이 강한 반면 라이언 고슬링은 내적인 표현이 강하게 느껴지더라. 뭔가를 하지 않아도 다 이해되고 공감된다. ‘어떻게하면 저렇게 연기할수있을까’ 오래 고민하다가 제가 지금 할수있는 능력 안에서 해석한 걸 바탕으로 부국장 연기를 할 때 노력했다. 외적으로 강한것보다 눈이나 내재된 감정으로 더 표현하고 그걸로 공감을 사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보통은 레퍼런스를 더 많이 찾는데 이번엔 찾은걸 지우는 과정을 많이 거쳤다. 나를 좀 더 심플하고 깨끗하게 만든 상태로 연기하려고 했다”며 “제가 생각하는 부국장의 가장 중요한것 중 하나가 배역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느낌이었다. 물론 촬영하는 날마다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총 12부작으로 제작된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지난달 24일, 6부까지 담은 파트1만 먼저 공개한 상황. 홍인은 추후 공개될 파트2의 시청 포인트를 묻자 “리메이크 작품이다 보니 포인트는 다 알고 계시겠지만, 재밌는 요소가 많다. 후반으로 갈수록 기승전결이 뚜렷해 지는데 기승전결에 맞춰서 재밌는 요소가 파트1보다는 많을 것”이라며 “끝까지 중립 지키는건 불가능한 일이니, 부국장도 결국엔 어느 한쪽에 설 것”이라고 예고해 기대를 더했다.
‘종이의 집’ 촬영을 마친 홍인은 현재 차기작을 논의 중이다. 그는 “캐릭터 중심으로 몇개정도 열어두고 고민 중이다. 회사와 상의를 하면서 여기서 배우는게 있고, 흥미가 생기는 그런 작품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종이의 집’을 통해 늘어난 관심에 대해서는 “너무 감사한 일인데 별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작품이 잘된거지 내가 잘된건 아니지 않나. 회사랑 얘기할때도 ‘그걸로 기대하거나 기다리지 말고 늘 하던대로 다음 작품을 찾자. 너무 헛배부르지 말자’고 한다.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진다”고 강조했다.
어느덧 연기 활동을 시작한지 약 20년이 된 홍인은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며 “사실 연기를 하고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 원래 음악을 더 좋아해서 음악을 하고 싶었다. 제가 꿈이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영국에서 락밴드를 하는거고 하나는 시를 쓰면서 세계여행 하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처음엔 대학교를 가려고 연기한거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음악가가 많을 때가 아니라 ‘연기 해야겠다’ 하면서 들어갔는데 우연히 붙은거다. 그때는 재미를 못느꼈다. 추운날 반팔 입어야 하고 더운날 패딩 입어야 하고 너무 힘들었다. 영화 ‘달콤한 인생’을 보고 진지하게 배우를 하고싶다고 느꼈지만 느낀거랑 직접 하는건 다르지 않나. 방법도 모르겠고, 많이 포기하려고 했다”며 “배우라는 직업의 무게를 느낀게 30대 초반쯤인데 그때부터는 그만두고 싶다고 가족들이랑 상의를 많이 했다. 그때마다 형이 말렸다. ‘나는 하고싶은거 못해도 너는 하고싶은거 하고 살라’더라”라고 회상했다.
이어 “결국 재미를 찾았다. 재미를 찾는 순간 삶이 변했다. 겁이 많아졌다. 몸도 다치면 안되고 밖에서 해야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생각이 들고, 좀 더 나를 통제하게 됐다. 어릴때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고 완벽히 외향적이었다. 날아다니는 성격에 친구도 많았다. 지금은 친구도 세네명 밖에서 술먹는 경우도 거의없다. 그게 가장 크게 변한거다. 근데 그게 하고싶은 일을 하는것과 소수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을 공감할수 있게된 제가 받아들여야할 부분이지 않나. 배우는 드러날수 밖에 없으니까”라고 달라진 점을 털어놨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기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도 많았다. 홍인은 “스트레스 받아서 난청이 온 적도 있었고, 정말 많이 그만두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한텐 배부른소리일 수 있는데, ’넌 혼자 잘하잖아’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스트레스였다. ‘난 항상 잘 해야하는 사람인가?’라는 강박관념이 저를 힘들게 했고 그말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똑같이 힘든데, 나는 안도와준다. 도와달라고 하면 ‘넌 잘하잖아’라는 말을 항상 듣고 살았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듣지 않을 때에도 강박이 계속 쌓이는 거다. 사실 가족 중 누구 한 명이 ‘연기 그만 해’라고 말했으면 진짜 그만뒀을수도 있다. 근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당시는 싫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거 아니면 다른 건 할게 없다고 생각하는건가?’, ‘날 무시하나?’ 이런 반항적인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막상 다른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뭘 해야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결국 제자리로 다시 돌아간다”고 남모를 고충을 전했다.

그는 “요즘도 이런 고민을 한다. ‘종이의 집’ 오픈 후에도 최근 가족들과 회의하면서 얘기한게 ‘저 연기 그만할게요’였다. 나이때문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이가 있으니까 친구들을 보면서 안정적인 삶을 원하게 되는 것 같다. 별 생각을 다했다. 닭강정집을 할까 핫도그 가게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아버지가 며칠 전, ‘너는 하고싶은걸 해라. 아빠도 형도 하고싶은걸 못하지 않았나. 미래에 두려움 있는건 아는데 다른걸 한다고 해서 안정적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어떤걸 하든 하고싶은걸 해라’고 얘기해 주셨다. 예전엔 연기를 하기싫었는데, 지금은 하고싶으니까 이제 연기를 그만둘 명분이 없는 거다. 그래서 또 ‘연기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며 “아마 배우들이 다 그럴거다. 너무 힘드니까 다른 일을 찾게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기하고. 누가봐도 아는 배우들 중에서도 아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분들 계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역할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그간 홍인은 작품에서 조연이나 단역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던 바. 그는 “아쉬움은 있다. 작품을 보거나 현장에서도 ‘잘할수 있는데’라고 느낄때가 있다. 하지만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덜한데, 몇년전까지는 쉽게 교만해지는 타입이었다. 그렇다고 으스대는것까진 아니지만 스스로 교만한 마음이 생길때 많다. 그때마다 ‘난 때가 아니구나’, ‘멀었구나’라고 느꼈다. 그럼에도 ‘빨리 하고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요즘에도 빨리 잘되고 싶다. 부모님 연세가 하루하루 들어가다 보니 빨리 뭔가 해주고 싶더라. 그래도 기독교적인 얘기긴 하지만, 그분이 계획하신 게 있으니 순차대로 가지 않을까 싶다. 그냥 나는 내가 할수있는거, 주어진 것들만 재밌게 하면 된다”며 “‘종이의 집’ 공개 후 요즘 살짝 교만해 졌는데, 이제는 금방 잡는다. ‘너 이거 아니야!’라고 반려견한테 하듯이 한다”고 말했다.
홍인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냥 연기 잘하는 배우로 계속 잘 활동하고 싶다. 공감 잘 하는 배우, 공감 잘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렇게 하다 보면 ‘쟤 연기 잘하지’라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재밌는 역할도 올거고, 그럼 가족들이 행복해할 거다. 모든게 나뭇가지처럼 파생될테니 지금 연기 하던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재밌게 하다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한부분까지 이미 이뤄지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제 목표는 제가 하는 일로 가족들이 잘 사는 거다. 지금까지는 물질적인 소유욕이 없었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거 해드리고 싶다. 형도 퇴사시키고 싶고 엄마한테는 더 좋은 집과, 좋은 가방을 사드리고 싶고, 아빠한테는 좋은 차도 사드리고 싶다”며 “열심히 해야죠”라고 각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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