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인데 이제 좀 여유가 생겼다. 힘을 뺀다는 말의 느낌을 이제야 알겠다.”
배우 김태리(33)는 예전에 만났을 때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어떤 껍데기를 벗어 던졌다고 표현해야 할까. 요즘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필터링 없이 그냥 드러낸다는 게, 얼굴이 알려진 사람으로서 부담이 되는 일이겠으나,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두는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함이 느껴졌다.
김태리는 19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OSEN과 인터뷰 자리를 갖고 내일(20일) 극장 개봉하는 영화 ‘외계+인’(감독 최동훈, 배급 CJ ENM, 제작 케이퍼필름)에 대해 전했다. ‘외계+인’ 1부는 고려 말 소문 속의 신검을 차지하려는 도사들과 2022년 인간의 몸속에 수감된 외계인 죄수를 쫓는 이들 사이에 시간의 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SF 액션 영화. 이 작품은 지난 2020년 3월 크랭크인 해 작년 4월 촬영을 마쳤다. ‘외계+인’에서 김태리는 고려시대에 총을 다룰 줄 아는 여자 이안을 연기했다.


“저는 작품을 선택할 때 ‘이게 굿(good)이냐? 배드(bad)냐?’ 만 놓고 고려한다. 어느 하나에 구애받지 않고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한다. 저는 똑같은 걸 싫어한다. 그래서 같은 질문을 받아도 항상 다른 답변을 하려고 했다. 비슷한 질문에 어떻게 해서든 변주를 두려고 했다. 원래 같은 걸 싫어해서 지금껏 다른 작품, 다른 캐릭터를 해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외계+인이 자신에게 굿(good)이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느냐’는 물음에 “소년과 소녀의 만남이라는 게 좋았다. 그 소년의 얼굴이 류준열이라는 것이 소름 돋고 행복했다”고 답했다.
김태리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를 통해 얼굴과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영화 ‘1987’(감독 장준환·2017),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2018)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2018),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 등에 출연하며 햇수로 7년째 대중의 사랑받고 있다. 그동안 크게 실패한 작품 없이 시청자들,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아온 셈이다.


이에 그녀는 “저는 시나리오를 직관적으로 읽는 편이다. 이 캐릭터가 왜 이 말을 했는지 갈등의 서막, 전개, 클라이맥스가 아주 잘 보인다. 저는 기본적으로 그게 잘 보이는 거 같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캐릭터가 앞으로 이런 식으로 말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작을 한다”고 작품 분석 과정을 털어놨다.
이어 “저는 그 다음에 시나리오에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의 전사를 생각해본다. 최대한 시나리오 안에서 찾지만 안 나온 것은 제가 꾸려 나간다. 그러면 ‘이걸 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풀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관계를 따진다”는 김태리는 “가령 제가 맡은 인물이 할머니나 친구, 가족 등 어떤 캐릭터를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거나 말할지 정리를 해본다. 그러면 이 사람을 어떻게 연기할지 느낌이 온다”고 밝혔다.


가장 분석하기 쉬었던 작품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저는 (나)희도가 가장 잘 풀렸다. 분석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잘 읽혔다. 희도가 무슨 행동을 할지 제 안에서 자동으로 나왔고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그러다 망해서 ‘아~ 분석을 해야되는 구나’ 싶었다”고 웃으며 답했다. 그만큼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2521’)에서 맡은 나희도에게 애정이 담긴 듯 보였다.
“‘2521’ 이후 달라졌다”는 김태리는 “제가 ‘외계+인’을 촬영할 때까지만 해도 갈피를 못 잡았었다. 어떤 연기를 하든지 갈피를 못 잡았던 거다. 이미 뱉어버린 대로 했다. 근데 (류)준열 오빠 같은 경우는 ‘리틀 포레스트’를 할 때부터 저와 달랐다. 그때 오빠가 ‘돈’, ‘독전’, ‘리틀 포레스트’까지 동시에 3개의 작품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제가 보기엔 불안과 걱정이 하나도 없더라.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나?’ 싶었다. 저와 친해질 수 있었던 게 제가 ‘이건 분명 감추고 있는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를 파기 시작했다. 근데 진짜로 그렇더라”고 가까이서 지켜본 류준열(37)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앞서 류준열은 김태리와 두 작품을 하면서 절친한 사이가 됐다면서 “인간적으로 의지했다”고 털어놨던 바.


김태리는 ‘외계+인’에서 연기한 이안은 배포가 큰 인물이라 단박에 연기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안은 작지 않다. 마음과 정신이 큰 인물이다. 처음에 제가 너무 1차원적으로만 해석했던 거 같다. 정의롭고 선하게만 읽혀서 너무 짜증이 났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인간적이고 약한 면, 시나리오에 없지만 가장 약할 때, 약해질 때를 찾으려고 노력했다”고 캐릭터를 분석해 연기로 표현한 지점을 설명했다.
최동훈(52) 감독의 도움이 컸다는 그녀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감독님이 ‘진실된 표정을 짓는다’고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 행복했다. 저는 감독님과 작품을 만드는 것에 어려운 게 하나도 없었다. 다른 배우들은 어려웠다고 하는데 저는 시나리오도 빨리 읽었다. 내가 바라던 최상의 작업 환경이구나 싶었다. 저는 감독님들과의 대화가 중요하다. 나의 구멍, 그의 구멍을 대화를 통해 메우는 거다. 그러면서 성이 높게 쌓이는데 이번에 그런 작업방식이었다”고 ‘외계+인’의 촬영기를 돌아봤다.
이어 그녀는 “감독님에게 저를 캐스팅한 이유를 정확하게 물어보지 못 했지만, ‘너의 얼굴이 참 좋아’라는 말을 들었다. ‘배우는 표정이 중요한데 너는 참 좋은 표정을 가졌어’라는 말을 감독님으로부터 들어서 너무 기뻤다”고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외계+인’은 올 여름 텐트폴 영화로 편성돼 관객들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저는 극장을 좋아했다. 근데 코로나 기간에 극장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너무 슬펐다. 나만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다. ‘범죄도시2’가 극장가늘 살리긴 했지만 ‘외계+인’이 그 흥행을 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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