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목소리, 선한 눈매로 신경질적이고 과민한 '어른 금쪽이'를 소화했다. '닥터로이어'에서 열연을 보여준 배우 이동하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닥터로이어'는 조작된 수술로 모든 걸 빼앗기고 변호사가 된 천재 외과의사와 의료범죄 전담부 검사의 메디컬 서스펜스 법정 드라마다. 지난 23일 16회로 종영한 가운데 이동하는 반석병원 후계자인 구현성 역을 맡아 열연했다. 28일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서 OSEN과 만난 이동하는 구현성과 정반대의 인물로 호기심과 매력을 동시에 자아냈다.
극 중 구현성은 주인공 한이한(소지섭 분)을 숙명의 라이벌처럼 생각하는 인물이다. 결혼까지 부친 구진기(이경영 분)가 소개해주는 임유나(이주빈 분)와 하려고 할 정도로, 아버지가 깔아준 로열로드를 밟고 걸어왔지만 속으로는 반드시 실력으로 유령 의사 한이한을 이기고 싶어한다. 이에 구현성은 구진기의 악행에 동참하면서도 한이한을 실력으로 이기려 하고, 임유나에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애정을 퍼부으면서도 그 곁을 배회하는 제이든(신성록 분)까지 견제하며 집착한다.
이동하는 이 같은 배역을 소화한 점에 대해 "워낙 감정 진폭이 크고 표출하는 것도 많고 다양한 상황, 극단적인 상황들이 많아서 감정을 쌓아놓고 슛 들어가기 전에 감정을 컨트롤하고 표출하는 게 어렵긴 했는데 그래도 재미있었다"라며 웃었다.
특히 그는 "구현성이 이리저리 치인다. 한이한한테 치이고, 제이든한테 치이고, 아버지한테 치이고 전방위적으로 공격을 받는다. 그러다 제가 욱해서 마음이 터져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병원에서 한이한을 오랜만에 마주치고 제이든이 찾아와서 둘에게 둘러싸여서 굉장히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최요섭(이승우 분)한테 화풀이하는 못된 장면이다. 네 사람의 긴장감과 밀도감이 재미있었다"라고 말했다.

자기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구현성의 면모로 인해 시청자 일각에서는 '어른 금쪽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던 터. 이동하는 "실제로 '금쪽 같은 내새끼'를 많이 참고했다"라며 놀랐다. 그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금쪽 같은 내새끼'라며 가정 환경 때문에 아이들이 많이 그렇게 되는데 구현성도 가정환경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서사를 공부해서 만들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정신연령이 아이로 멈춘 어른 같다고 생각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구현성이 부친 구진기와 마주하는 씬들에 대해 "감정이 많이 올라왔다"라며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는데 늘 비교당하면서 살아왔던 거다. 중요한 순간에 손이 떨려서 수술도 못하고 공황도 오고, 조울증이나 양극성 장애도 있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그래서 '아버지 때문에 이렇게 됐다'라는 원망감도 크고, 그게 짠하고 불쌍한 면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구현성이 정략결혼하는 임유나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퍼붓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구현성은 연애도 못해본 존재라고 생각했다. 연애도 아버지가 정해주는 사람과 하는, 온실 속 화초나 동화 속 왕자님처럼. 그런데 유나는 같은 정략결혼을 하면서도 너무 당당하고 멋있게 살아왔다. 그래서 더 아름다워 보이고 전력으로 마음을 표출하는 것처럼 보이려 했다"라고 했다.
나아가 이동하는 "그렇게 지가 생각해서 만든 인물들에 대해 같이 공감해주시는 반응들을 가끔씩 봤는데 '진짜 찌질하고 못났다', '불쌍하고 짠하다'라는 반응을 볼 때 보람이 컸다. 연구하고 논의하면서 만든 인물이 온전하게 받아들여지는 게 배우로서 큰 기쁨이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렇다면 실제 이동하는 어떤 사람일까. 극 중 내내 세웠던 앞머리를 차분하게 내린 이동하는 늘상 신경질적이고 톡 쏘는 목소리의 구현성과 달리 부드러운 인상과 분위기, 무엇보다 묵직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배우였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내향적이다. MBTI 'I'다"라며 웃은 뒤 "낯도 가리고 예의 중시하고 조심스럽고 친한 사람들하고 있을 때는 편하게 얘기도 한다. 1대 1일 때 조금 편해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보다는 소수의 사람들과 잘 지내고 나쁜 걸 싫어한다"라며 구현성과 정반대의 성격에 멋쩍어 했다.
부친이 돌아가신 뒤 모친과 함께 반려묘를 키우고 있다는 그는 "'그저 고양이가 세상을 구한다'는 생각이다"라며 일명 '냥집사'의 면모를 드러내며 웃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에게는 "표정을 왜 저렇게 했냐"라는 식의 냉철한 평가를 듣고 있다고. 이동하는 "평생 그렇게 듣고 자라서 신경 안 쓴다. 직설적인 분이라 좋은 얘기 잘 안 해주신다"라고 웃으며 "그 영향을 받아서 자기 객관화가 잘 돼 있다"라고 했다.
실제로 이동하는 "비관적이진 말돼 자기 비판은 정확히 하려고 한다. 연기를 봐도 제 눈에는 안 좋은 게 너무 잘 보인다. 연기 당시 상황을 아니까 못 참는 것 같다. '다음에 저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라며 "이번에도 구현정의 인간적인 찌질한 모습들이 잘 전달된 건 감사한데 '더 다양한 건 없었을까?' 상상을 해봤다. '이게 최선이었을까?'하는 생각들"이라고 밝혔다.

그런 이동하가 또 보여주고 싶은 모습들은 무엇일까. 이동하는 "어떤 역할이든 다 하고 싶다"라고 웃으며 "배우라면 배역마다 달라지는 자신을 꿈꿀 것 같고 저도 그런 제가 좋다.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어떤 것이든 하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폭발하는 열정이 신인의 것과 닮아있지만 정작 이동하는 2008년 뮤지컬 '그리스'의 앙상블로 데뷔한 연기 경력 14년의 베테랑 배우다. 그는 무대와 TV, 영화를 넘나들며 차근차근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이동하는 이러한 자신의 원동력에 대해 "제가 원래 배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군대 다녀온 뒤 아는 형이 '그리스' 오디션을 보라고 해서 봤다. 당연히 떨어졌는데 4개월 트레이닝을 해서 앙상블이 됐고, 그 다음 해에 로저를 맡았다. 그때 관객들과 호흡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하게 됐다. 그 뒤에 뮤지컬에서 큰 역할을 했다가 부족해서 욕을 엄청 먹은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가 '나쁜 자석'이라는 작품에서 대하 하나하나에 전사를 쌓고 토씨 하나 연구하는 걸 배웠다.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그때부터 배우를 꿈꿨다.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라며 눈을 빛냈다.

무엇보다 이동하는 "이게 너무 재미있어서. 제가 원래 차분한데 완전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게 새로운 삶을 사는 느낌이라 저라는 사람에게 너무 신나는 일이다"라며 "그래서 '이동하'라는 사람보다 '배역'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싶다. 그게 제 목표이자 꿈이고, 제 방향성"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제가 배우를 하겠다고 마음 먹고 공연을 하고 TV에 나오는 게 여전히 신기하다. 좋은 사람들 덕분에 이렇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참 제 주변에 은인인 사람들에게, 나를 봐주시는 팬 분들에게, 써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너무 고맙다.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더 좋은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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