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내가 눈을 뜨니까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거야! 세상에서 가장 엿같은 엄청난 개새끼로!”
29일 시작된 MBC 금토드라마 ‘빅마우스’(극본 김하람, 연출 오충환) 1회가 박창호(이종석 분)의 독백으로 마무리된 것은 참 영리했다. 또 이종석의 목소리가 생경하거나 처연하지 않고 경쾌하게 이를 갈아붙이는 톤이어서 더욱 그렇다.
드라마의 시작은 구질구질했다. 비오는 날 폐공장으로 들어서는 레미콘 차량, 비에 젖어 파인 구덩이로 쏟아지는 금괴, 그 위로 부어지는 시멘트, 또 그 위로 덮이는 마약·살인·폭력사건들에 관한 공중파 앵커의 리포트까지 비장미 넘치는 느와르풍이 물씬했다.
하지만 “내 꿈이 뭐냐고? 폼나게 성공해서 사랑하는 내 가족들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거야. 사회정의?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야!”라는 박창호의 독백으로 분위기를 일순 반전시킨다.
제작진은 이 드라마를 “승률 10%의 생계형 변호사가 우연히 맡게 된 살인 사건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희대의 천재 사기꾼 '빅마우스(Big Mouse)'가 되어 살아남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음모로 얼룩진 특권층의 민낯을 파헤쳐 가는 이야기”로 소개하고 있다.
그렇게 드라마는 결국 범죄와 폭력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는 3류 변호사 박창호를 조명하면서 느와르풍으로 흐르겠지만 전개과정은 박창호의, 그리고 또 다른 주연 고미호(임윤아 분)의 캐릭터를 따라 경쾌하고 발랄하게 풀려나갈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박창호는 승률은 낮고 말만 번지르르해 변호사업계의 빅마우스라 불린다. 이 떠버리는 변호사 주제에 사기까지 당한 사기 피해자로서 본인 피해 사건의 변호인까지 떠맡는다.
하지만 억척 간호사 마누라 고미호를 향해 “나만큼 이 사건 잘 아는 변호사는 세상에 없다”는 둥 창피한 현실을 큰소리로 얼버무리고 나선 결심공판에서 무참히 패하고 소송을 대리했던 다른 피해자들로부터 물리적 폭행까지 당한다. 박창호는 딴에 사채까지 빌려 판사에게 기름칠을 하는 잔머리를 굴렸지만 결심 직전 판사가 제척되면서 재판도 지고 사채빚만 떠안게 됐다.
그렇게 사면초가에 몰린 박창호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구천 시장 최도하(김주헌 분)가 사건을 의뢰한다. 일명 구천대학병원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서재용(박훈 분) 피살사건의 피의자 정채봉(김정현 분)·한재호(이유준 분)·이두근(오륭 분)의 변호를 맡아달라는 요청.
피의자들은 세칭 잘나가는 NR포럼 구성원들로 정채봉은 사학재단 칠봉학원 이사, 한재호는 구천대학병원 외과과장, 이두근은 NR포럼 고문변호사다. 박창호 본인조차 이런 잘난 이들이 왜 자기같은 젬병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 궁금증은 최도하가 풀어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능하고 말 잘 듣는 변호사’라고. 그들은 자신들이 작성한 시나리오를 법정에서 연기해줄 얼굴마담이 필요할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창호를 선택한 최도하는 다른 요구를 덧붙인다. 자신은 그들을 변호하기보다는 진실을 밝혀내길 원한다며 사고차량서 사라진 블랙박스를 찾아올 것을 주문한다. 개인 돈으로 몇천만원쯤의 착수금을 안기면서.
박창호는 이와 관련 친구인 이혼전문 변호사 김순태(오의식분)의 자문을 구해 피의자들을 도청하고 이들이 블랙박스를 한재호의 아내에게 맡겼음을 알게 된다.
최도하와 박창호가 한재호의 아내 장교수를 찾았을 때 이미 그녀는 선객에게 상해를 입은 채였고 박창호는 ‘살인증거 은닉죄는 최소 3년’이라고 그녀를 위협해 블랙박스를 건네받는다.
장교수는 공범의 존재가 우정일보 사장 공지훈(양경원 분)임도 알려주며 “이 사건 맡은 거 그쪽한테 큰 불행일지 모른다”고 경고도 해준다.
펼쳐본 블랙박스에는 당시 현장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고 피의자들은 “논문을 없애라”며 서재용을 목조르고 구타하다 결국 죽이고 만다. 그 직후엔 공지훈임직한 누군가와 통화하며 사건을 보고하고 사체처리를 위해 그를 만나러 가다 교통사고를 일으켜 현장체포됐던 것이다.

블랙박스를 손에 쥔 박창호는 심적 갈등에 휩싸인다. 얹혀 사는 장인 집엔 사채빚을 못갚아 붙은 압류딱지가 덕지덕지다. 당장 돈이 급하다. 공지훈에게 가져가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거부하면 검찰에 넘겨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과 같은 명예를 얻으면 될 일이다. 그야말로 꽃놀이패.
공지훈은 기대가 무색하게 박창호를 박대했고 박창호는 결혼기념일 가족과의 저녁 외식 중 담당검사의 전화를 받고 블랙박스를 넘겨주러 나선다. 나가는 길, 웨이트리스가 건네준 커피를 마시며 운전하던 중 불시에 혼미상태에 빠지고 결국 박창호의 차는 충돌사고를 일으키며 도로 위를 구른다.
그렇게 사고가 났고, 박창호는 살았으며 전혀 다른 사람, 즉 본인 표현 ‘엿같은 개새끼’가 됐다.
1회를 통해 드라마는 캐릭터들을 여실히 드러냈고 짜임새 있는 구성을 통해 갈등구조와 개연성을 확보했다. 주인공 이름 박창호와 고미호는 각각 ‘벽창호’와 ‘구미호’에서 변주를 준 듯 보이며 어리버리 생활무능력자 박창호가 벽창호 인생을 접고 희대의 사기꾼 빅마우스로 거듭날 것임과 반대로 억척양처 고미호는 지아비를 구하기 위해 구미호와 같은 술수도 마다않는 캐릭터로 진화할 것을 예고한 듯 하다. 첫 단추 잘 꿴 ‘빅마우스’의 앞으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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