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를 앓고 있는 딸의 치료를 위해 한국에서의 삶을 과감히 버리고 하와이 이주를 택한 아빠 재혁(이병헌 분). 드디어 떠나기로 한 당일,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한 부녀는 의뭉스러운 남자 진석(임시완 분)을 피하지만 하와이행 기내에서 또 다시 마주쳐 이상야릇한 불쾌함을 느낀다.(※이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재혁의 의심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알고 보니 진석은 자신의 분풀이를 위해 마구잡이식 테러를 계획했던 인물이었던 것. 처음부터 그가 하와이행 비행기에 탄 수백 명의 승객들을 대상으로 삼진 않았지만 즉석에서 돌발적으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공항에 도착한 진석은 다짜고짜 “사람들이 제일 많이 타는 노선이 무엇이냐”고 물으며, 등장할 때부터 이상한 기운을 내뿜었다. 이륙 후 시작된 그의 생화학 테러의 대상자들은 하나둘씩 이상 증세를 보이며 사망한다.
이 소식을 지상에서 접한 형사 인호(송강호 분)와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 분)는 승객들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승객들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조하기 위해 비행기를 착륙시켜야 하는 부기장 현수(김남길 분)는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재혁과 의기투합한다. 두 사람 사이에 숨겨져있던 사연이 점차 드러나면서 ‘비상선언’은 거대한 재난 앞에 놓인 인간 군상을 조명한다.
‘비상선언’(감독 한재림, 제공배급 쇼박스, 제작 MAGNUM 9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씨네주)은 사상 초유의 항공테러로 무조건적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와 재난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코로나 이전에 기획하고 만들었지만, 팬데믹 사태의 상황과 맞아떨어져 높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다.

이 영화는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등 연기력과 대중적 인기를 갖춘 배우들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배우들의 빈틈없는 연기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냈다.
지난해 열린 제74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 라인업에 이름을 올려 해외 관객들에게 먼저 선보였던 바. 영화제 이후 그해 개봉 시점을 고려했으나 코로나 사태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아 결국 올 여름 국내 개봉을 결정했다.
관객들의 기대는 개봉 전 예매율 1위를 시작으로 개봉 첫날 모은 관객수로 드러났다. 4일 영진위 통합전산망 집계를 보면 전날(3일) ‘비상선언’은 33만 6753명이 관람해 일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오늘 오전 10시 30분을 기준으로 ‘비상선언’의 예매율은 33.2%를 나타내 1위를 기록 중이다.

‘비상선언’의 미덕은 추락하는 비행기의 객실을 사실적으로 구현해냈다는 점이다. 이에 대형 비행기 세트를 회전할 롤링 짐벌을 사용해 실제 비행기 사이즈의 세트를 360도로 돌렸다. 승객을 연기한 배우들과 함께 촬영 감독도 비행기 세트에 온몸을 고정하고, 핸드헬드로 영상을 담아냈다고 한다. 이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마치 그 비행기에 동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긴장감이 극대화한다.
또한 예상 못한 재난에 직면한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따라 포지션을 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이 한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기시감을 안긴다. 밀폐된 비행기를 한국 사회로 은유한 것이다. 물론 외국인들이 봐도 각자 자국의 상황에 비유해볼 수 있을 터다. 영화는 승객들과 지상에 있는 국민들이 함께 위기 대처법을 고민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인류를 지키고자 나아가는 긍정적인 변화를 점차 선명하게 드러낸다.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 발생 이전에 한재림 감독이 기획을 했었다는 것에서 감독으로서 그만의 통찰력과 미덕이 돋보인다.
다만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클라이맥스 부분이 강렬하고, 임팩트 있게 압축되지 않아 러닝타임을 무려 140분으로 늘린 참사를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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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스틸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