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형사2’ 세상 통념 엎은 손현주-고창석..“쪽팔려서!”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9.05 09: 05

[OSEN=김재동 객원기자]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 말미에 상택(서태화 분)이 준석(유오성 분)에게 물었다. “니 와 그랬노?” 준석이 답했다. “쪽팔리서.”
해석은 분분했지만 친구 동수(장동건 분)가 죽었는데, 그리고 죽인 쪽이 자기 식구들이 분명한데, 굳이 자기가 명령한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기가 구차했기 때문이란 설명이 설득력 있다.
4일 방송된 MBC 토일드라마 ‘모범형사2’에선 쪽팔린 걸 못참는 형사 강도창(손현주 분)과 검사 차문호(고창석 분)의 티키타카가 매력있는 관전포인트가 됐다.

차문호는 20년 평검사다. 부장 타이틀도 못단 채 그렇게 늙어왔다. 막판에 큰 건을 맡았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굴지의 기업 TJ가 연관된 살인사건이다. 견적 내보니 오너인 회장 천상우(최대훈 분)만 건들지 않으면 된다. 적당히 꼬리자르기만 해도 노후가 보장될만한 사이즈다.
아닌게 아니라 천상우측 변호인이 접촉해왔다. 걸어오는 딜이 장난 아니다. 사건 적당히 마사지하고 퇴직한 후 1년 쯤 해외여행이나 다녀오면 TJ 법무팀에 팀장 자리를 마련해 준단다. 그룹 임원급이다. 여기에 더해 강남 아파트에, 아들 유학비에, 애인까지 만들어 주겠단다.
어차피 천상우라면 기소도 힘든 판이다. 판사가 유죄 때릴 리도 만무해 보인다. 만년 평검사 주제에 조직에서 비전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렇게 가보기로 했다.
피해자 정희주의 유족인 정인범(박근형 분)에게 내막을 설명하면서 동의를 구했다. 감사를 표하며 철썩같이 믿어주는 그의 모습에 양심이 콕콕 찔리긴 했다. 그렇다고 정인범이 공권력을 무작정 믿지는 않고 물어온다. “강도창 형사님도 같은 생각이시죠?”
그렇다. 강도창이 있었다. 정희주 사건 담당형사가 강도창이었다. 자기 결혼식 날 턱시도 입은 채로 범인 잡았다가 파혼당한 형사. 당시도 그 극성에 질렸던 자다. 그 파트너인 오지혁(장승조 분)도 깐족거리는 게 만만찮다.
그 강도창과 오지혁을 불러 조율 해보려 했다. 천상우와 관련돼선 어차피 경찰도 정황증거만 있는 판이니 법무팀 과장 최용근(박원상 분)을 정희주 살인교사로 특정짓는 선에서 마무리하자고 설득해볼 참이다.
공교롭게도 먼저 자리잡은 장소가 강도창 동생 강은희(백은혜 분)의 치킨집이다. 기다리면서 우연히 알바생으로 보이는 은혜(이하은)와 은희의 얘기를 듣다보니 자신이 만났던 정인범과 자신의 얘기가 들린다. 얼렁뚱땅 끝내려 자신이 대충 말한 진실이 정인범에게 큰 위안이 됐단다. 치킨집 사람들은 그런 정인범을 각별히 챙기는 모양새고.
양심에 걸려 입맛이 쓴 차에 들어서는 강도창과 오지혁. 강도창은 제 집처럼 가게를 활보하고 오지혁을 통해 치킨집 사장이 도창의 동생이고 알바생처럼 보였던 은혜는 도창이 딸처럼 돌보는 사형수 이대철의 딸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양심이 찔리면 빈정이 상하는 모양이다. 말이 곱게 안나간다. “형사는 피해자 유족과 거리를 두는 게 원칙이야. 형사 월급 얼마나 된다고 피해자 가족까지 데리고 있는 거야. 판을 왜 이렇게 흔들어?”라 일갈하고 본다. “결혼 중간에 범인 잡는다고 파혼까지 당한 사람이 남의 딸은 왜 데려다 키워? 짭새질이나 잘 할 것이지.”라는 질타도 곁들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으로 한 방 먹은 강도창이 소주를 병째 들이키고 발끈하자 지혁이 양해를 구한다. “우리 형님이 나이 어린 사람이 싸가지 없이 구는 걸 극도로 싫어합니다.” 이 놈이 더 나쁘다.
“나도 이렇게 거지같이 사는 게 싫어!”라고 소리치는 도창에게 차문호는 “그럼 나 같이 살아. 눈 딱 감고 돌아서서 있는 사람들 편에 서! 강남에 집도 사고, 자식들 유학도 보내고, 애인도 만들고!”하고는 자리를 박찬다. 오지랖 열 두 폭 강도창. 이 지긋지긋한 인간이랑 함께 있기엔 양심이 너무 결린다.
복잡한 심경에 근처 공원에서 들여다보는 가족 사진. 아이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렇게 해맑은 웃음을 두고 불의와 야합이나 하려 했다니.. 어차피 돈 많은 아빠 노릇은 팔자에 없다. 하지만 자식들 앞에 쪽팔리는 아빠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천상우를 잡기로 했다. 먼저 여론 조성이 필요하다. 기자들 앞에서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데 있어 외압에 흔들리는 조직이 아니다”고 강변한다. 조직내 정치는 못해도 검찰 칼밥 먹은 세월이 몇 년인데 여론 이용 하나 못할까.
검찰총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깜냥껏 해보라고 응원한다. 총장의 입김인지 천상우에 대한 영장도 떨어졌다. ‘깐족이’ 오지혁의 잔머리로 천나나가 내놓지 않던 천상우 동영상을 압색을 통해(천나나가 준) 확보, 증거요건도 충족했다.
그 완벽한 검경 공조에 법원은 마침내 천상우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그룹 총수를 잡아들인 평검사. 뿌듯하고 개운은 한데 강도창과 오지혁을 보니 날아간 그룹 임원 자리와, 강남 아파트와, 미스코리아급이었을 게 분명한 어떤 여인이 아쉬워지고, 공부 못하는 아들의 장래도 걱정된다. 그러니 말이 곱게 나갈 리가.. 다시 티격태격하는 강도창과 차문호다.
쪽팔리는 게 죽도록 싫은 이들이 단 몇 사람 뿐이더라도 세상은 그렇게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인천 서부서 강력2팀이 모범형사인 이유고 차문호가 모범검사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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