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 튀는 재기발랄함이 사라지고 미끄러운 유연함이 남은 듯 보이지만 그 안엔 진중하게 갈무리된 책임감이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배우'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는 남자, 유아인이 '서울대작전'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2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서울대작전'은 1988년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상계동 슈프림팀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고 VIP 비자금 수사 작전에 투입되면서 벌어지는 카체이싱 액션 질주극을 그린 작품이다. 유아인은 극 중 주인공 동욱 역으로 열연했다. 이에 그는 5일 국내 취재진과 화상으로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자동차 액션을 다룬 영화지만 정작 유아인은 차에 깊은 관심은 없었다. 현재 환경을 생각해 전기차를 사용 중인 그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차들에 관심이 많이 생긴 것 같다. 올드카에 애정이 많고 차들에 관심이 많이 생겨야 하다 보니까 촬영하면서도 차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배우다 보니 차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뒷자리가 익숙했다면 이제 운전석도 익숙해졌다"라며 웃었다.
또한 능숙한 운전 실력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에 대해 유아인은 "전문적인 일을 작품에서 가진다고 해서 많이 놀림을 당했다. 레이싱 서킷에 가서 직접 운전해보면서 드리프트를 하는 배움의 시간도 있었고 제가 모든 걸 해낼 수는 없어서 전문 레이서 분들과 함께 움직여서 몸의 움직임을 익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라고 했다.

이규형, 옹성우, 고경표 등 극중 '빵꾸팸' 멤버들끼리 케미스트리가 극에 큰 매력으로 작용하는 바. 배우들 사이 케미스트리에 대해 그는 "배우들끼리 하나로 뭉쳐서 사적인 시간을 보내거나 서로 정서적인 교류를 하는 것들을 작품 외적이라고 볼 순 없지만 어느 때보다 배우들끼리 의기투합해서 서로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목적 없이 가까워지는 시간을 어느 작품보다 많이 보냈다. 그 자체를 원했고, 다른 동료 배우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증 같은 게 있었는데 그 시간들을 보내면서 많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촬영 중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제가 바보짓을 많이 했다. NG를 내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실제로 차가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자동차의 움직임을 배우의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는데 함께 탑승한 규형이 형이나 성우가 오른쪽으로 움직일 때 저만 왼쪽으로 간다거나 하는 어리숙한 바보짓을 많이 했던 게 민망했다"라며 웃었다.
이 밖에도 유아인은 촬영장이 불편할 정도로 긴장헀던 자신의 신인 시절을 떠올리며 자유로운 분위기의 '서울대작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나이를 뛰어넘고 어울리는 이규형, 연기 경험 없이 신선한 바람을 선사한 위너의 송민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사실 어느 때보다 걱정이 많았다"라고 밝힌 그는 "볼거리가 많은 콘텐츠라고 생각해서 '다행이다, 이 정도면 잘 즐기실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라면서도 "틀림없이 흠결이 있는 영화이긴 한데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편하게 즐기실 수 있을지 고민했던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유아인은 "많은 분들이 제가 해왔던 작품의 흐름을 큰 틀에서 이해해주신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양한 방식에서 풀어가는 연기적인 활동을 해왔고, 근래에 들어 규모가 작은 영화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다양한 실험들을 가져가면서 통쾌하고 시원한 오락 영화를 넘어서 카체이싱이 주를 이루고, 1988년이라는 배경 자체가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가 되는 작품을 통해서 관객 분들과 신나게 즐겨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게 작품을 선택한 가장 큰 배경이었다. 배우로서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현장에서의 새로운 신기술을 체험할 기회가 될 거라고 봤다. 버츄얼 스튜디오나 차량을 촬영하는 카메라 워킹 같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라고 작품 선택 배경을 밝혔다.
더불어 그는 작품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에 대해 "사실 그게 계속 바뀐다. 그래서 제가 다양한 작품들을 접하면서 다양한 캐릭터, 다양한 성향을 보여드릴 수 있던 것 같다. 현재에 제가 와 있는 상태에서 어떤 끌림, 이어왔던 흐름 안에서 어떻게 재미있게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전략 같은 것들이 그때그때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순간의 끌림이지 '좋은 감독하고만 할래', '어느 정도 규모의 영화만 할래'라는 기준을 세워두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런 유아인에게 동욱 캐릭터가 가장 매력적으로 와닿았던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유아인은 "1988년 격동의 시기라고 말씀 많이 하셨다"라며 "허세 같은 것들을 밉지 않게 가져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떻게 다른 인물들과 균형을 맞춰갈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라고 했다.
1986년 생인 유아인은 극 중 배경이 된 1980년대에 대해 "사실 제가 다섯살 정도가 최초의 기억"이라며 머쓱해 한 뒤 "작품의 배경인 1988년은 유튜브 정도로 접해 기억보다는 해석이 있다"라고 했다. 이어 "원래 제가 의상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는 배우로 알려져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제가 1988년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다 보니까 전문적인 결과를 가진 의상팀을 많이 적극적으로 믿으면서 촬영했다. 의외로 제 의견을 많이 피력하지 않고 했다. 다른 게 있었다면 어느 때보다 긴 장발로 '올백'을 한 헤어의 변신을 가져가면 어떨까 하는 정도만 생각했다"라며 "머리로 효과적인 사용을 노려봤던 게 재미라면 재미고 새로운 시도였다. 분장이랄 것은 없었다. 메이크업은 계속 하지 않고 참여했다. 그런데 헤어는 계속 제품기가 많도록 했다. 어느 순간보다 떡칠해서 카메라 앞에 서도록 했다"라며 웃었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시대를 거슬러 청년 연기를 보여줄 정도로 꾸준히 '청춘'의 얼굴로 여겨지는 유아인. 정작 그는 본인이 생각하는 '청춘'에 대해 "사실 누구라도 청춘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예쁘게 쓰긴 하는데 청춘의 에너지, 순수함을 간직하기 위해 그 것들이 처참히 버려지는 꼴을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청춘의 중심이라기 보다 청춘의 마음을 끌고 가려는 내가 지금에 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청춘에서 빗겨간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다만 그는 "그래도 '아이콘'이라는 말은 다른 분들께 선물해드려야 할 것 같다"라며 웃었다.

무엇보다 그는 "예전에는 부담 자체를 별로 안 느꼈다. 언제부턴가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건 그냥 불편한 부담이 아니고 '책임'이라는 것으로 소화하게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냥 무조건 적인 도전, 실험을 즐기고 그거 자체를 중요한 가치로 두고 내 성장을 통해 저를 바라봐주시는 분들과 함께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긴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지금은 틀림없이 그 기대들에 대한 책임을 내 나름의 재미로 여러분들에게 다시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기대를 무조건 배신하는 게 재미있지도 않고, 그 배신도 기분 좋은 배신이 있을 것이고 불편한 배신이 있을 것이고 하나의 작품을 두고 누군가는 기분좋은 배신, 찝찝한 배신이라고 하면서 그 시도가 성공했다, 실패했다 여러 가지 말들이 오고가겠지만 나를 향한 기대 속에서 배우의 징그러운 힘을 중심으로 작품이 굴러가고 소개되는 현장에서 내가 어떻게 책임있게 여러분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 노력엔 너무 많은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을 가져가고 있다"라고 했다.
유아인은 "최근엔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너무 느끼해졌다, 너무 안전하게만 가는 거 아니냐'라고 하시더라. 인터뷰에서도 돌발적인 발언도 좀 하라고. 지금도 솔직하게 하고 있는데 통통 튀는 매력이 사라지고 너무 미끄덩해진 게 아니냐는 말을 아주 친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전해주더라. 공감했다. 책임을 가져가기 위해서인 것 같다. 공감해주실 것 같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책임감'의 연결선에서 말씀드리자면 '뭐든 할 수 있어'라는 생각보다 어떤 면에서 여러 분들이 가져주시는 기대, 저 혼자 거둔 성취가 아니라 제가 해온 일들이 만든 성취로 인해서 나를 좀 더 귀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가져가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소중하니까'가 아니라 '배우 유아인'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저 혼자 만들지 않고 많은 관객 분들과 함께 만드는 '유아인'이라는 캐릭터의 존재를 조금 더 귀하게 보살피면서 좋은 순간을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다"라고 힘주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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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