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파란 난초, ‘돈’으로 채색된 사회의 영혼 상징?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9.06 09: 24

[OSEN=김재동 객원기자] 3일 첫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정서경 극본, 김희원 연출)에선 ‘파란 난초’가 죽음의 시그니처로 등장한다.
회사 비자금 700억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 경리팀장 진화영(추자현 분)의 자살 현장, 방송국 기자 오인경(남지현 분)에게 무언가를 제보하려던 김철성(차용학 분)의 교통사고 현장(김철성은 보배저축은행 사건 당시 박재상(엄기준 분)이 변호를 맡았던 김달수 행장의 조카다), 검찰 출두에 나섰다가 주차타워서 추락사한 오키드건설 이사 신현민(오정세 분)의 차안 등 드라마 속 사람이 죽는 모든 현장엔 난초 한 송이가 불길한 파란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또한 주요 등장인물 오인주(김고은 분)·진화영·박재상·최도일(위하준 분) 등의 사회적 배경이 되는 회사인 오키드(Orchid) 건설도 사명 자체에 ‘난초’를 쓰고있다.

2화가 진행되도록 이름만 등장한 ‘양형숙’은 어떤가. 진화영의 비자금 관리 전임자이자 진화영처럼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진 이 인물은 진화영을 거쳐 오인주에게 전달된 난초일지의 작성자이기도 하다.
작가는 왜 이렇게 난초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하는가? 난초에는 어떤 극적 상징성이 있나? 이와 관련, 진화영의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꽃들도 성격 있는 거 알아? 얘는 도둑공주인데 왕따야. 지금은 볼품 없지만 꽃이 피면 진짜 공주님이야.”
사내 왕따인 오인주를 위로할 의도도 보이고 본인 스스로의 희망도 담겨있음을 전해준다. 그리고 어쩌면 오키드건설의 본질, 혹은 이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통찰한 발언일 수 있다.
난의 품종 중 실제 ‘도둑공주’가 있는 지는 모르지만 ‘도둑’이란 단어는 고아한 이미지의 난초와 어울리지 않음은 알 수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난초의 열매에는 다른 식물의 씨앗과는 달리 그 어떠한 영양분도 들어있지 않고, 떡잎조차 존재하지 않은 채 그저 세포 덩어리 몇 개만 들어있는 극도로 단순한 형태라고 한다.
그래서 차라리 포자에 가까우며, 아무런 양분도 없기 때문에 그 스스로는 절대로 발아를 할 수 없고 흙이나 나무 껍질 등에서 생활하는 곰팡이들 가운데 특정 공생균 균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발아가 된다고 한다.
서식지가 조금만 파괴돼도 개체수가 급감하기 쉽고 꽃에서 꿀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다른 꽃을 흉내내거나, 고기 냄새를 풍겨 파리를 끌어모으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곤충의 성적 본능을 흉내내 공짜로 가루받이를 하는 쪽이 많다고 한다.
그렇게 공짜와 도박을 좋아하는 식물로 악명(?)이 높다 보니 사기를 많이 당한 곤충들이 난초를 피해 다닌다는 설명도 있다. 비단 도둑공주가 아니라도 난 자체가 그런 사기성을 무기로 번식해 나간다는 설명이다.
일단 진화영은 도둑공주를 꿈꿨다. ‘고졸·무수저’란 영양분 하나 없는 열매로 출발해 양형숙과 신현민이란 균사의 도움을 받아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진미경이라는 부유한 부캐를 흉내내며 명실상부한 공주로 활짝 만개할 순간을 기다렸다.
이미 사회의 유력기업으로 성장한 오키드건설은 개화에 성공한 도둑공주일 수 있다. 창업자인 원기선 역시 무수저로 출발, 베트남 전쟁과 군사정권이란 균사의 도움을 받아 보안사령관이란맛스러운 타이틀로 파리들을 끌어모아 오키드건설이란 꽃을 피웠을 것이다.
드라마 속 주요 악역이 분명한 박재상 역시 도둑공주임이 분명하다. 광부와 운전수의 아들이란 척박한 열매로 시작해 원상아(엄지원 분)란 균사의 도움을 받아 변호사가 되고 장학재단 이사장이자 정치인으로 개화하려는 인물이다.
그러고보면 세상은 무수한 도둑공주들의 사기행각으로 굴러가는 것일 수도 있다.
작가는 기획의도에서 “‘돈’으로 채색된 사회의 영혼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난초는 드라마의 탁월한 심볼이 될 만하다.
오인주·오인경·오인혜(박지후 분) 세자매도 난을 닮아있다. 주기는 커녕 뺏어만 가는 부모 탓에 영양분 하나 없는 열매로 세상에 던져졌다. 어찌어찌 뿌리를 내려보려 하지만 바람만 불어도 서식지는 휙 날아갈 판이다. 이 세 자매가 다른 꽃을 흉내내는 도둑공주가 될지, 스스로 꿀을 만들어 내 곤충들의 환영을 받는 진정한 꽃이 될지, 그 성장스토리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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