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승균이 신작 ‘나를 죽여줘’에서 선천적 지체장애를 가진 장애인으로 분했다. 영화를 보면 그가 실제 장애인 배우로 보일 만큼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든 연기를 펼쳐 놀라움을 안긴다. 전작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2022) 속 전교 2등 모범생 오준영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으니 말이다. 영화 ‘오아시스’(감독 이창동·2002)에서 장애인 역할을 맡았던 배우 문소리와 비견될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 전역 후 그가 써 내려갈 필모가 기대된다.
안승균이 출연한 새 영화 ‘나를 죽여줘’(감독 최익환, 제작 영화사이다・환상의 빛, 배급 트리플픽쳐스)는 선천적 지체장애를 가진 아들 현재(안승균 분)와 유명 작가였지만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 민석(장현성 분)이 서로에게 특별한 보호자가 되어주는 휴먼 힐링 드라마.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연극 ‘킬 미 나우’(작가 브래드 프레이저)를 원작으로 삼았다.
한국영화로 재탄생한 ‘나를 죽여줘’는 시드니 월드필름페스티벌 최우수 서사장편영화상, 뮌헨 필름어워즈 최우수 장편영화상, 부다페스트 독립영화제 최우수 장편영화상, 암스테르담 독립영화제 최우수 서사장편영화상, 오슬로 국제영화제 최우수 외국영화상, 더반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및 각본상 등 7관왕을 기록하며 작품성을 입증받았다.

장애인의 성(性)과 안락사 등 현재 우리사회에서 조명받지 못하는 문제를 망라한 ‘나를 죽여줘’를 통해 안승균은 더반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스크린에 발현된 현재로서의 그의 말투와 표정, 움직임은 가슴이 먹먹해질 호연이다.
현재는 아버지 민석과 고모 하영(김국희 분)의 보살핌 아래 성인으로 성장했다. 현재의 엉뚱한 말과 행동 때문에 민석이 때로 곤란해질 때도 있지만, 민석은 아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보살핀다. 그러다가 민석은 청소년이 된 현재의 성욕을 알게 돼 부모의 역할을 고민한다.
현재는 보통의 아이들처럼 어른이 된 후 집에서 독립해 자유롭게 살고 싶어한다. 장애인 활동지원사 기철(양희준 분)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면서 두 사람은 함께 독립을 모색하고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든다. 기철은 태아 알코올 증후군 탓에 성격 장애 및 사회화 장애를 겪고 있다. 기철이 현재의 가족과 동거하면서 장애인 센터는 벗어났지만, 이내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나를 죽여줘’는 장애인 캐릭터를 도구적으로 이용한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나면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장애인들에게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애석하다. 장애인의 성, 안락사 문제를 담으며 시작부터 끝까지 눈물샘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묵직하게 현실 문제를 풀어내 여운을 남긴다.
줄거리 소개만 보자면 상당히 심각한 드라마 같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따뜻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일부러 만들어낸 재미가 아닌, 장애인들의 일상을 스크린에 옮기면서 나온 것이기에 몇몇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나를 죽여줘’는 장애인의 신체적 불편함에 따른 일상, 그리고 죽음을 앞둔 가족의 작별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포착했다. 무엇보다 장현성, 안승균, 양희준, 이일화, 김국희의 절제된 연기까지 더해져 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유의미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가 요즘 관객들이 좋아하고 흥행할 장르적 요소를 갖춘 대작은 아니지만, 올 가을 극장에서 봐야할 웰메이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특히 안승균의 호연을 놓치지 않길 강력 추천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그간의 관점을 바꾸려는 시도를 한 ‘나를 죽여줘’는 2022년 10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작품이다.
러닝타임 119분. 15세 이상 관람가. 10월 19일 극장 개봉.
/purplish@osen.co.kr

[사진] 영화 포스터, 스틸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