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보통의 삶에는 좌석이 정해지지 않는다. 무대 제 1열을 차지하기 위해선 보다 부지런하고 보다 악착스럽고 극성맞을 필요가 있다.
아래층이 1열, 혹은 전망 좋은 좌석을 차지하고자 아귀다툼을 벌일 때 비어있는 윗층의 좌석들도 있다.
1층의 아수라장에선 누구도 비어있는 2층 좌석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곳은 주인 있는 자리, 그들로선 닿을 수 없는 좌석이기 때문이다.
그 지정석의 주인공들은 막이 오른 이후라도 느긋이 등장해 부채를 부쳐가며 우아하게 오페라용 망원경을 눈에 댄다.
JTBC 토일드라마 ‘디엠파이어-법의 제국’은 지정석을 차지하고 살아가는 인생들과 하필 그들에게만 주어진 그 자리에 한 발 걸치거나 오물이라도 끼얹고 싶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돈이 있으면 권력이 따라온다. 권력이 있으면 돈도 따라온다. 하지만 돈으로든, 권력으로든, 명예를 얻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법조귀족인 로펌 함앤리에겐 명예마저 깃들어 있다.
함앤리의 수장 함민헌(신구 분)은 중앙지검 특수부장인 손녀 한혜률(김선아 분)이 대한민국 대표기업이자 사돈관계인 주성그룹의 불법승계 수사에 나서자 “혜률이가 하겠다면 하게 둬!”라고 지지한다.
돈·권력·명예의 정점에 선 자의 자신감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자신 집안의 명예가 올라가고 그 명예가 다시 권력과 돈으로 돌아오리라는 계산도 서 있기 때문이다.

그의 계산대로 대중들은 폴리페서로 이름 높은 손녀사위 나근우(안재욱 분)와 함께 자신의 손녀 한혜률을 대권후보로 띄워올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드는 사위 한건도(송영창 분)는 그것도 모르고 사돈댁 주성과 짬짜미가 돼 혜률의 발목만 잡으려드니 한심하다. 큰 그림을 못그리고 그저 눈 앞의 돈만 밝히는 천박함이 딱 사위 놈의 그릇이다. 외동딸 함광전(이미숙 분)이 아들로 태어났어야 되는 건데..
주인공 한혜률은 지정석을 받고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대법관출신 대한민국 일등 로펌 대표에, 아버지는 그 파트너 변호사, 엄마는 법대 교수였다. 비록 한씨 성을 쓰지만 법조제국 함씨일가의 적장자로 계승권이 주어졌다.
제국을 이어받기 위해 혜률은 노력했고 노력에 걸맞게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타이틀을 따냈다. 혜률이라고 왜 인생의 쓴 맛이 없었을까. 언제나 세상은 자신의 노력을 색안경을 끼고 본다. “뭘 해도 나는, 집안 뒷배 믿고 까부는 년인 거지?”란 자조가 입에 붙은 이유다.
거기에 본의랑 상관없는 결혼으로 민국대 로스쿨생인 한강백(권지우 분)을 얻었지만 전남편인 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장 고원경(김형묵 분)과는 이혼했고 집안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자신만의 선택으로 지금의 남편 나근우와 재혼했다.
집안의 시선이 어떻든 나근우는 20대 소년 등과 판사에 함앤리 변호사이자 민국대 로스쿨 겸임교수로 탄탄하게 외조해주고 있다. 또한 폴리페서로서 ‘5천만의 아이돌’이란 인지도를 갖추고 대선후보지지율 1위에 올라있다.

그런 혜률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남편의 힘든 처지를 알기에 눈감아주었던 내연녀 홍난희(주세빈 분)가 혜률을 도발해 온다. 나근우가 정리하려하자 홍난희는 아들 한강백에게 접근해 스멀스멀 집안을 기웃거린다.
나근우는 오롯한 그녀의 선택이었고 한강백은 그녀의 소중한 외아들이자 제국을 이어받을 후계자다. 홍난희로 인해 그녀에게 소중한 인생의 가치 둘이 거품처럼 스러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도대체 얘는 왜 내게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능력있는 법조제국의 계승자로서 거칠 것 없었던 한혜률의 인생에 풍파를 일으키는 암초가 드러난 것이다.
자리를 차지한 1층의 관객들은 배우에 입맞춰 노래를 할 수도, 박수치고 환호할 수도 있다. 2층의 지정석에선 부채로 입가린채 소곤대는 가식의 언어들과 고상하게 꾸며대는 위선의 웃음소리 정도만이 새어나온다. 돈·권력·명예는 반대급부로 삶의 진정성을 앗아갔다. MBS 보도국 윤국장(박철호 분)은 말했다. “저렇게 완벽하고 고귀해 보이는 게 독이죠. 그럴수록 사람들은 사소한 흠집마저 용납못하니까.”
진실없는 제한구역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디엠파이어’, 평지풍파를 몰고온 홍난희의 전면 등장으로 아연 긴장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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