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앙증맞은 고사리 손, 빵빵한 조그만 배, 폭신폭신 통통한 볼기, 나른해진 새끼 고양이를 닮은 졸린 눈, 대추씨 같은 입. 세상의 아기들은 그렇게 사랑스런 모습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그들은 자라서 세종대왕이 되거나 연산군이 되기도 하고 슈바이처가 되거나 히틀러가 되기도 한다.
관건은 교육. 한 세대가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데 교육은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tvN 토일드라마 ‘슈룹’은 현대의 대치동을 방불케하는 치열한 왕실 교육의 현장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 속 왕실 교육에는 대치동에서도 볼 수 없는 처절함이 더 있다. 바로 ‘죽고 사는 문제’, 그야말로 죽기살기다.
5형제를 낳은 중전 임화령(김혜수 분)은 말썽쟁이 대군들 때문에 하루가 바쁘다. 그러다보니 궐안에서 제일 빠른 걸음을 자랑하고 그 뒤를 따르는 중궁전 나인들의 종달음은 궐인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비위 맞추기를 진작 포기한 시어머니 대비(김해숙 분)와의 트러블도 대군들 덕에 부쩍 늘었다.
대비는 원래부터 한미한 집안 출신인 화령 대신 영의정 황원형(김이성 분)의 여식인 황귀인을 중전으로 간택하길 원했었다. 하지만 시아버지인 선대왕이 외척의 득세를 우려해 화령을 간택하면서부터 미운 털이 박혀버렸다.
화령으로선 ‘미우시면 미워하셔야죠’란 배짱이다. 내 맏아들(배인혁 분)이 왕세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그 왕세자가 원손까지 본 마당에 대비가 흔든다고 흔들릴 중전자리가 아니다. 대비께선 조용히 원손 재롱이나 보면서 대비전이나 뎁히시면 될 텐데 대군들 훈육까지 시시콜콜 간섭하고 나서니 나라고 고와라 할까 보냐 싶은 오기도 있다.
그리고 대비말대로 대군들이 학문을 높여 자질을 드러내본들, 종친이라 조정에 출사할 일도 없고 세인들의 입방아에나 오르내릴 뿐, 좋을 일이 무언가?
그나마 잘가르쳐 형제간 우애 좋고 사람 귀한 줄 아는 인성들은 챙겼으니 그거면 족하지. 나이 차는 대로 혼례를 치뤄 궐밖으로 내보내면 저 좋은 일들 하면서 왕의 아우들답게 바르게만 살아가면 될 일이다.

헌데 그런 짱짱한 자신감에 문제가 생겼다. 화령의 반석같은 의지처 세자가 쓰러졌다. 혈허궐이란다. 같은 병증을 화령의 시아주버니인 태인세자가 앓다 죽었단다. 그 바람에 귀인 소생의 서자 이호(최원영 분)가 보위에 오를 수 있었다니 결국은 유전병이다.
화령은 암암리에 태인세자 당시의 내의원 인물들과 병상일지 등을 수배하지만 의원들은 종적이 묘연하고 병상일지도 화재로 소실됐다는 답만 얻는다.
게다가 대비전의 낌새도 심상치 않다. 태인세자 치료경험이 있는 유일한 인물 어의는 대비전과 본인의 요청으로 함경도로 떠났고, 왕자군에선 선발한 적 없던 시강원 배동도 왕자군에서 뽑도록 대비전의 부추김이 있었다고 한다. 화령은 무의식중에 알 수 없는 먹구름이 몰려옴을 느낀다.
믿을 곳은 신상궁(박준면 분)뿐. 한때 현 대비의 귀인시절 모셨던 경력이 있는 신상궁은 태인세자가 졸한 직후 다른 대군들을 제치고 서자인 이호가 보위에 오르는 과정이 물흐르듯 너무나 빠르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며 당시의 구체적인 정황은 당사자인 현 대비와 역적으로 몰려 멸문지화를 당한 태인세자의 친모 폐비 윤씨(서이숙 분)만이 제대로 알 것이라고 밝힌다.
그 길로 폐비 윤씨의 거처를 찾은 임화령은 중전의 체모도 벗어던지고 빗속 흙바닥에 무릎을 꿇으며까지 조언을 구한다.
윤씨는 당시 태인세자는 혈허궐로부터 완치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급작스런 죽음을 맞았다고 의심을 드러냈다. 또한 다른 대군들은 세자를 위협할 인물로 견제받지 않도록 제왕학을 교육하지 않고 유유자적 살도록 방임했었다고 밝힌다. 그랬던 것이 결국 세자의 궐위가 발생하자 가장 총명한 자가 왕위를 물려받도록 하는 택현의 빌미를 제공했고 상대적으로 학문적 성취가 높았던 이호가 보위를 넘겨받았다는 것이다.
폐비가 되어 출궁된 윤씨는 남은 대군들마저 흉수에 잃고 하나 남은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삶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령에게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대군들의 교육은 이제 평판 문제가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가 되었다. 세자도 물론 지켜야겠지만 예기치 못한 세자의 유고 상황에도 대비가 필요하다.
2남 성남대군(문상민 분) 종학 깔째(꼴찌)다. 머리보단 몸 쓰기를 좋아한다. 3남 무안대군은 호색한다. 익살맞고 해맑지만 가볍다. 4남 계성대군(유선호 분)은 게중 학업에 관심이 있으나 성 정체성에 문제가 있다. 막내 일영대군(박하준 분)은 학문엔 뜻이 없고 발명에만 관심이 많다.
그리고 화령은 이 오합지졸들을 이끌고 죽기살기 싸움이 될 지 모를 시강원 배동 쟁탈전을 치러야 한다.
강적도 있다. 영의정과 대비의 막강 후원을 받는 황귀인. 이호의 첫아들이자 세자의 배다른 형 의성군(강찬희)에게 세자의 자리를 돌려주고 자신이 빼앗긴 중전의 자리도 되찾아오겠다는 야심에 찬 황귀인과 의성군의 공세가 만만찮을 전망이다.
제목 ‘슈룹’은 우산의 옛말이다. 그래선지 드라마 1,2화가 진행되도록 비오는 장면이 많다. 비를 가려주는 슈룹은 부모의 사랑을 은유한다. 내 자식의 비바람을 막아줄 슈룹을 자처하고 나선 임화령이 나래가 자라 둥지를 떠나기까지 세자와 대군들의 슈룹 역할을 제대로 할 지 기대된다.
기억에 체통 집어던진 중전은 ‘철인왕후’ 신혜선에 이어 김혜수가 두 번째다. 김혜수는 2회만에 왈가닥 본색과 속 여린 모정의 처연함, 대비의 노회함에 한 치 물러섬 없이 맞서는 굳건함까지를 피팅모델처럼 자연스레 소화해내며 ‘과연 김혜수!“란 감탄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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