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다. 하지만 고작 40분 차이를 두고 극과 극인 사람으로 등장한다. 배우 최원영(46) 이야기다.
tvN 토일드라마 ‘슈룹’이 9시 10분, MBC 금토드라마 ‘금수저’가 9시 50분 방영되니 토요일 하루만큼은 40분 간격으로 최원영을 두 번 보게 된다.
‘슈룹’의 최원영은 ‘이호’란 캐릭터를 맡았다. 임금 이호는 지·덕·체를 모두 갖추고 애민하는 성군이다. 후궁이었던 조귀인의 소생으로 태인세자 사후 택현을 통해 보위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흐른 피의 역사를 알지만 그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해 애써 외면했다. 보위에 오른 후 자신들이 만든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려는 공신들을 시나브로 제압하며 왕권을 강화해 왔다.
‘금수저’에서 최원영은 한국 굴지의 도신그룹 회장 ‘황현도’로 분한다. 자본주의 사회 끝판왕답게 못할 것이 없는 인물이다. 사람의 가치를 돈 아래 두는 철저한 배금주의자로 금수저를 이용해 황현도의 신분을 훔쳤다. 태생은 황현도의 친구이자 참모 ‘권요한’이었다.
이호는 돌림병의 근원지인 서촌 움막촌을 폐쇄하자는 신료들의 아우성에 “질병으로 인한 죽음은 막지 못해도 내 백성을 굶어 죽게 놔둘 수는 없다”며 오히려 구휼청을 설치하는 강단을 보인다.
황현도는 급전 1억을 빌리러온 아들 친구에게 “너나 니 부모님을 담보로 빌릴 수 있는 건 가난 뿐이란다. 그 가난에 돈 1억을 투자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 말하며 내친다.
이호는 세자빈과 원손의 구명을 청해오는 아들 성남대군(문상민 분)에게 “왕이라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고 질책한다.
황현도는 처남 서준태(장률 분)에게 자수를 종용하며 “내가 못할 것이 뭐 있어? 증거를 지울 수도, 다시 만들 수도 있는 거지”라고 조롱한다.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목소리, 같은 톤으로 전혀 다른 내용을 말하는데 위화감이 전혀 없다. 대사 끊어치기 등 상황에 맞는 딕션과 찰나의 표정 변화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가령 최원영의 트레이드 마크인 살짝 짓는 미소는 이호나 황현도나 똑같다. 눈꼬리는 호선을 그리면서 아래로 쳐진다. 동시에 왼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며 왼쪽에만 입주름이 살짝 잡힌다.
그 미소를 이호가 지을 때는 여지없이 푸근하지만 황현도가 지으면 섬뜩한 비소(誹笑)로 변한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 차이는 눈빛에 있는 것 같다. 눈빛은 눈의 표정인데 최원영은 그 눈빛을 참으로 능란하게 다루는 배우로 보인다.
행동에도 표정을 담는다. 성남대군의 목에 섬전처럼 칼을 들이대는 이호에게선 추상같이 단호한 꾸중의 의미가 전해지고 서준태의 목을 움켜쥐는 황현도에게선 ‘널 진짜 죽일 수 있어’란 살기가 느껴진다. 보는 이로 하여금 캐릭터의 성격과 현재의 감정까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몸짓으로 전해준다.
최원영의 가장 큰 매력은 중후한 남저음 목소리다. 그의 목소리는 등장하는 씬마다 달뜨지 않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씬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도 얹힌다. 선과 악의 정점에서 발하는 캐릭터의 카리스마는 그 목소리에 기대는 바가 크다.
‘슈룹’에서 드라마 초반 여인들 전쟁의 방관자로 보였던 이호가 중반에 접어들며 점점 캐스팅보트를 쥔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금수저’도 종방을 2회 남겨두며 최종보스 황현도의 비중을 키워가고 있다.
이호는 임금과 아비, 임금과 지아비, 아들과 남편 사이에서 고뇌가 참으로 깊어질 전망이다. 황현도도 천박한 ‘수저계급론’의 화신으로서 작의인 ‘희망과 연대의 탈출구’를 열기 위해 비참하게 무너질 일만 남은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이다. 최원영이라서. 그래서 기대된다. 이호가, 황현도가 최원영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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