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힘찬 PD 사망사건, 다시 없으려면..."제작 환경 목소리 들어야" [Oh!쎈 레터]
OSEN 연휘선 기자
발행 2022.11.09 10: 07

'소방서 옆 경찰서' 고(故) 이힘찬 PD 사망 사건의 진상 보고서가 공개됐다. 관건은 결국 바쁘게 돌아가는 콘텐츠 제작의 환경에서 불편한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취약한 구조에 있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 대회의실에서 이힘찬 프로듀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유족 대표로 고인의 동생 이희 씨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김영민 센터장, 언론노조 SBS본부 정형택 본부장, 민주노총 법률원 신선아 변호사, 돌꽃노동법률사무소 김유경 노무사, 사측 대표로는 스튜디오S 한정환 대표이사와 김동호 경영국장 등이 자리했다.
이힘찬 PD는 SBS 입사 후 드라마본부에 속했으나 분사 과정을 따라 스튜디오S로 적을 옮겼다. 이후 사망 전까지 '소방서 옆 경찰서' 제작 총괄로 근무했다. 그러나 지난 1월 30일, 불과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유족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대책위를 꾸려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힘썼고 노사공동조사에 착수했다.

그로부터 7개월 만에 열린 간담회에서는 노사 공동 진상조사 보고서가 발표됐다. 보고서에는 부족한 예산에 작품을 무사히 완수해야 한다는 압박감, 촉박한 편성 일정에 대한 불안, 촬영 속 돌발변수 대응 등 한 개인이 감내하기 힘든 극단적 상황이 이번 사건을 촉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대책위는 분사 후 회사 차원의 고충 처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점을 개탄했다. 이와 관련 전국언론노동조합 관계자는 9일 OSEN과의 통화에서 "드라마 산업에 내재한 구조적 문제들이 '소방소 옆 경찰서'에 응축됐다. SBS 드라마본부가 스튜디오S로 분사하면서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됐다. 그리고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조직적인 책임, 체계적인 운영보다 사업 부문의 효율성만 중요시하면서 노동환경이 악화되고 경쟁적인 상황에 내몰리면 이런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 당장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취약한 환경이 발생하는 게 가속화되면서 언제고 벌어질 수 있는 일"라고 강조했다. 
또한 관계자는 이번 보고서의 핵심과 관련해 "HR파트의 역량 강화가 관건이다. 분사 이전 SBS 드라마 본부였을 때는 노조 외에도 인사 팀이나 사내 구성원들을 통해 불편사항의 청취나 접수가 가능했을 텐데 스튜디오S 분사 직후 콘텐츠 제작 역량에 집중하게 되면서 그런 부분이 취약하게 됐다. 진상조사 보고서 과정에서 제작 현장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방대하게 담으려 했는데 이런 일이 처음이었다고 하더라. 다른 제작 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굳이 노조가 아니더라도 제작 현장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부분이 강화돼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비보 속에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 진상 조사와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유족 측이 스튜디오S의 진정성과 제작 현장 개선에 대한 믿음을 회복했다는 것이었다.
관계자는 "사망사건 관련해 추후 조사 과정에서 스튜디오S 측의 협조가 잘 됐다. 조사 과정도 원만했다. 물론 사건 직후인 초기에 사측에서 유족 측에 신속하게 사과하고 조사에 협조하는 뜻을 밝혔다면 좋았겠지만, 추후 조사와 합의 과정에서는 진정성도 보였고 원만히 이뤄졌다"라고 밝혔다. 
결국 하루 24시간, 밤낮 없이 돌아가는 편성표와 제작 환경의 시계 위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보는 모든 콘텐츠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만든다. 그 목소리에 제작 시스템은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을가. 지금 누군가 보고 있을 눈 앞의 스크린, 카메라 뒤에도 '사람'이 있다.
/ monamie@osen.co.kr
[사진] 스튜디오S, 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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