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사는 넓디 넓은 세상이지만 누군가에겐 의외로 좁을 수도 있다. 꼭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결국 만나지게 된다.
tvN 토일드라마 ‘슈룹’에서 경합을 통해 세자에 오른 성남대군(문상민 분)과 윤청하(오예주 분)도 그렇게 부부의 연을 맺었다.
약재상에서 윤청하(오예주 분)가 성남대군(문상민 분)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그저 가슴 뛰게 ‘잘 생긴 놈’이었다. 청하는 그 이유만으로 아끼던 은장도를 그의 약값 대신 내주었었다.
하지만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그 ‘잘 생긴 놈’은 약값 갚기로 한 날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청하는 그 놈 잘생긴 용모파기를 그려서 직접 찾아나섰다. 약값으로 건넨 은장도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가슴 뛰게 만든 그 얼굴 다시 한번 보고싶어서.
찾아 나선 길에 못지않게 잘 생긴 놈(정지훈 분)을 만나도 보았지만 콩깍지 씌인 눈엔 오징어에 불과했다. 운좋게 그 놈 동생이라는 무안대군(윤상현 분)을 만나 그 놈이 만월도에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천방지축답게 단숨에 가출을 결행, 한달음에 만월도로 달려갔다.
만월도에서 만난 놈은 여전히 청하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달리 천방지축이 아님을 보여주듯 청하는 제 가슴이 이끄는대로 냅다 그의 품에 안겼었다.

만월도의 그는 나랏님이 명하신 어사답게 애민하는 선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고 청하의 가슴에도 ‘잘 생긴 놈’이 아닌 ‘연모하는 선비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청하는 조개껍데기 한 쪽을 건넸다. 나랏일 바쁜 선비님을 떠나보내는 정표로.
“사방에 널린 조개껍데기지만 그것과 맞는 건 제가 갖겠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운명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조개껍데기를 건네며 전한 청하의 그 말은 성남대군의 가슴에도 깊게 새겨졌다.
마침내 세자가 되고 세자빈 간택이 진행됨을 알았지만 무관심했던 건 그의 가슴엔 이미 청하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세자의 허울에 걸맞는 아무개 여인을 만나 그 여인의 효용을 왕권을 위해 끌어내는 것만이 그가 할 일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청하 역시 그랬다. 만월도에서 만났듯이 운명이 이끌어줄 때까지 선비님만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성내 매파들 사이에 ‘윤수광(장현성 분) 판서댁 첫째 딸은 믿고 거른다’는 평이 자자한 덕에 귀찮은 일도 없다.
그날도 명문가 여식들이 궁에 들이밀 사주단자에 골몰하건말건 청하는 일상처럼 시전이나 순시 중이었다. 그러다 못볼 꼴을 봤다. 옷고름 잘린 아낙이 장사치의 구박을 받고 있었다. 삼십냥은 훌쩍 넘어 보이는 금비녀를 장사치는 열냥으로 후려치고 있었다. 장사치는 아낙이 이혼당한 여자임을 빌미로 패악을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의 천방지축 윤청아로선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상황. 청하는 아낙의 양해하에 금비녀를 바닥에 짓이긴 후 스무 냥에 살 사람, 서른 냥에 살 사람을 소리쳐 찾았다. 흙이 묻었다고, 바닥에 짓이겨졌다고 금이 금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듯.
그때 서른 냥에 사겠다는 여인이 등장했다. 임화령(김혜수 분)이었다.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자 장사치는 아낙 손에 서른 닷냥을 쥐어주고는 금비녀를 낚아채 사라졌다.
그리고 화령과 마주한 청하. 사주단자를 넣을 생각은 없는지 묻는 화령에게 이미 정을 준 분이 계시다며 자랑 삼아 성남대군의 용모파기를 보여준다. 화령이 한눈에 세자임을 알아보는 동안 청하는 섬에서 어사 신분으로 애민하는 모습을 보인 ‘선비님’이야기를 재잘댄다.
화령은 자신은 궁의 사람이며 그림 속 주인공이 세자저하니 사주단자를 넣어보라고 종용한다. 화령으로선 청하가 비록 정적 대비편에 선 윤수광의 여식이지만 그 성품 바름과 공감능력과 강단이 맘에 들어 며느리감으로 낙점했다.
“이 분이 바로 세자저하!”란 화령의 음성은 곧 청하에게 자신을 선비님께 이끄는 운명의 목소리로 접수됐다.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간 청하는 주변상황도 고려치 않고 눈앞의 아버지 윤수광에게 세자빈이 돼야겠다고 떼를 쓴다.

한편 윤수광에게 “세자가 누가 되든 세자빈은 대감의 여식이 될 것”이라 약속한 대비(김해숙 분)는 윤수광의 집을 찾아 둘째, 셋째 딸을 면접보고 있었다. 둘 다 너무 음전해 탐탁치 않아 하던 중이다. ‘세자빈이 하자가 있어야 세자를 끌어내리기 좋은데 이렇게 흠잡을 데 없어서야..’싶어 입맛 쓰던 차에 웬 천방지축이 난입했다.
‘오호라!’싶어 따로 면접보니 “여자로서 제일 높은 자리에 서고 싶다”한다. 욕심만 많은 천방지축! 대비가 고르고 고르던 세자빈 재목 아닌가. 청하로선 ‘세자와의 인연을 윗사람들이 알면 곤란해진다’는 화령의 충고에 따른 것일 뿐이지만 대비 귀에 썩 달가운 말이 되고 말았다.
폐비 윤씨의 일가로 대비 앞에 납작 엎드려 가문을 보존한 윤수광으로선 첫째 딸 청하를 세자빈으로 낙점한 대비의 의중이 빤히 보인다. 그리고 쓸모가 다하면 여지없이 버려질 딸아이의 운명에 전전긍긍하던 윤수광 앞에 중전 화령이 나타난다.
화령은 연민할 줄 알고 공감능력 탁월한 점이 맘에 들었지만 딱 하나 아비가 대비의 사람이란 점이 걸렸다며 “대비께선 이용을 하려 하시겠지만 저는 그 아이들을 지켜낼 겁니다. 그러니 세자에게 힘을 실어주세요”라고 청한다.
그렇게 세자빈으로 낙점된 청하. 가슴 설레는 초례를 치르고 맞이한 첫날 밤. 복잡한 심정으로 청하를 바라보던 세자는 불현듯 일어나 당황한 청하를 남겨두고는 서슴없이 방을 나가버린다.

먼저 간 형님 세자의 몫까지 부담감을 짊어진 세자다. 가슴에 묻어둔 단 하나의 사랑이 어머니 화령의 정적인 대비의 사람이라니...
개인적으로도 ‘선왕의 장례중 회임한 불길한 아이’란 오명을 씌워 유년기를 궐밖에서 보내게 만든 대비다. 궁에 들이고서도 “본 것은 눈 감고, 들은 것은 잊고, 하고픈 말이 있거든 꾹 다물거라!”고 겁박했던 대비다. 급기야 아버지 이호(최원영 분)의 친자식이 아닐 것이란 오명을 뒤집어 씌웠던 대비다.
세자의 자리에 오른 후 그 대비 앞에서 “본 것은 눈에 담고 들은 것은 기억하고 할말이 있으면 거침없이 말하는 세자가 되겠다”고 선전포고도 날렸었다. 어머니에 이어 의지하고픈 단 하나의 여인이 어떻게 그런 대비의 사람일 수 있는가는 원망도 솟구쳤다.
그렇게 세자는 청하를 세 번이나 떠나갔고 청하는 그렇게 세자를 세 번이나 떠나보냈다. 평생의 바가지감이다. 천방지축, 여걸본색의 ‘윤청아’ 오예주를 감히 소박 놓은 세자 문상민의 앞날이 심히 어두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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