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게 저의 소신이기 때문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항상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한국영화 ‘국제시장’(2014), ‘해운대’(2009)로 ‘쌍천만’을 기록한 윤제균 감독이 대한제국 시대, 조국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의 일대기를 다룬 뮤지컬영화 ‘영웅’을 연출했다. 이는 전작 ‘국제시장’ 이후 8년 만의 연출 복귀작이다.
이달 21일 극장 개봉을 앞둔 윤제균 감독은 일주일 전인 14일 오후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 자리를 갖고 “관객들이 제게 100%를 기대할 때 200%를 보여주자는 게 저의 좌우명”이라며 당대 영화감독으로서 이같은 소신을 밝혔다.
영화 ‘영웅’(배급 CJ ENM, 제작 JK필름·에이콤·CJ ENM)은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정성화 분)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마지막 1년을 그린다.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삼았지만, 캐릭터 구축과 서사에서 견고하게 틀을 쌓아올렸다.
윤 감독은 “제 필모 사상 이 영화를 연출하는 데 있어서 가장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서 제작되는 오리지널 뮤지컬영화로서 처음으로 현장 라이브 녹음분을 70%나 살렸기 때문이다. 올 가을 개봉한 주크박스 뮤지컬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최국희)는 후시녹음으로 90% 이상 진행됐던 바.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에너지 소모를 많이 했다는 그는 “예전에 비해 몸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저는 늘 최선을 다해서 살자는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다음 작품의 시나리오를 작업 중인데 연출의 시간이 다가오면 그 역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시대극이자 국내 첫 오리지널 뮤지컬영화 ‘영웅’의 윤 감독과 제작진이 공들인 지점은 바로 현장 라이브 녹음. 전체 분량의 70% 정도를 배우들이 롱테이크 속에서 동시녹음을 마쳤다. 완벽에 가까운 장면을 만들기 위해 재촬영에, 재촬영을 거듭했다고.
“대부분 롱테이크로 갔는데 테이크를 10번 이상 가면 나중에 배우들이 화를 낸다.(웃음) 그들도 사람인지라. 그 자리에서 ‘오케이’가 나면 그나마 좋은데 안 날 때도 있지 않나. 배우가 연기를 잘했는데 음이탈 나면 오케이를 할 수 없고, 반면 노래를 잘했는데 연기에서 진정성이 안 느껴지면 오케이를 못 했다. 두 가지를 만족시켜야만 했다. 사실 한 번 부르는 것도 어려운데 테이크가 3~4번 넘어가면 배우들은 거의 탈진 상태가 된다. 공연을 본 관객들이 실망하지 않는 뮤지컬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래서 뮤지컬영화 연출은 다시 못할 거 같다.(웃음)”

이어 윤 감독은 “겨울이지만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어갈까 봐 패딩을 못 입었고, 바닥에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수백 평 세트장 바닥에 담요를 깔았다. 그게 보통 일이 아니다. 스태프가 신는 신발도 모두 천으로 감쌌다. 배우는 물론 스태프도 너무 예민해졌다. 후시녹음을 했을 때보다 촬영 시간만 3배나 더 들어갔다. 제작비도 당연히 더 들었고. 그럼에도 배우들과 스태프 모두 최선을 다했다”고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개봉을 앞둔 윤 감독이 요즘 가장 많이 한 생각은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 “극장에서 영화를 보신 분들이 만족하고 좋은 영화라고 칭찬을 해주신다면 지금 느끼는 이 불안과 떨림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작품으로서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14년 간 뮤지컬무대에서 신뢰를 쌓아 온 안중근 역의 정성화부터 독립군단 우덕순 역의 조재윤, 조도선 역의 배정남, 유동하 역의 이현우, 마진주 역의 박진주, 그리고 일본에서 게이샤로 살게 된 독립군 정보원 설희 역의 김고은까지 노래와 연기를 동반 소화하며 조화를 이뤘다.

배우 라인업에 공을 들였다는 윤제균 감독은 “안중근 역은 정성화 아니면 할 수 있는 배우가 없다고 생각했다. 촬영 전이나 촬영을 진행하면서나, 그리고 개봉을 앞둔 현재까지도 정성화가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이어 설희 역의 김고은과 마진주 역의 박진주 캐스팅에 대해서도 “우리나라 여자배우들 중에서 '연기를 잘하면서 노래까지 잘하는 배우가 누구?'인지 수소문했을 때 김고은과 박진주를 추천하더라”며 “(캐스팅한 후) 노래방에서 김고은이 노래하는 걸 듣고, 우리나라 가수와 배우들을 포함해, 저는 제일 잘한다고 본다. 저렇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깜짝 놀랐다”고 칭찬했다.

윤 감독은 설희 역의 김고은이 재촬영한 에피소드도 전했다.
“스케줄이 바쁜 사람인데 동작이 다이내믹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재촬영을 진행했다. 설희는 비주얼적으로도 임팩트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원 신 원 테이크’로 가고 싶어서 (기차신만) 한 달 넘게 프리 비주얼 작업을 했다. 보통 액션, SF장르만 그렇게 하는건데…한 달 동안 만들어서 이렇게 찍겠다고 보여줬다. 기차신을 찍기 위해 운동장 규모의 대형 스튜디오를 빌렸고 드라마 장면인데도 4축 와이어를 처음 썼다. 중간에 조금이라도 잘 못 되면 오케이 할 수 없었다. 재촬영 때 그 신을 찍고 김고은이 거의 탈진했다”고 떠올렸다. 그만큼 배우나 감독이나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다.
뮤지컬 ‘영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설희의 개연성 구축에 중점을 뒀다는 윤 감독은 “영화에서는 설희에게 미션을 줬다. 이토가 러시아 하얼빈에 가서 재무장관을 만날 때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그녀가 그걸 알아내야 한다는 미션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시면 공연보다 설희 캐릭터에 대한 개연성이 확보됐다는 걸 느끼실 것”이라고 설명했다.

넘버 가운데 ‘장부가’를 소화할 때 13번이나 테이크를 갔다는 윤제균 감독은 “저와 정성화 모두 약간 아쉬운 게 있었다. 그래서 2번이나 재촬영을 갔다. 총 3번이나 촬영한 거다. 정성화는 이미 전체 촬영을 끝내서 다시 살이 붙었는데 ‘일주일 후 재촬영을 한다’는 말에 또 체중을 감량하고 나타났다. 두 번째 촬영에서 테이크를 10번 넘게 갔다. 후반작업을 하고 믹싱을 하다 보니 1%가 아쉽더라. 그가 공연을 하면서 또 다시 살이 붙었는데 세 번째 촬영을 진행했고 정성화는 또 한번 10번 넘게 불렀다. 그 자리에서 오케이 테이크를 고른 게 영화의 완성본에 나온 거다. 총 30번 넘게 넘버(‘장부가’)를 불렀던 것”이라고 힘들었던 부분을 전했다.

나문희 역시 완성도를 위해 재촬영에 재촬영을 거듭했다. “선생님은 60년 넘게 연기하셨는데 저희 영화에서 테이크를 10번 넘게 갔다. 매니저도 '20년 넘게 나문희 선생님을 매니지먼트 하면서 테이크를 그렇게 많이 갔던 적이 없었다'고 했을 정도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윤 감독은 “감사했던 건 나문희 선생님도 본인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서 계속 하시더라. 형무소 신 촬영을 마치고 편집과 믹싱을 하면서 제가 보기에는 약간 아쉽더라. 그래서 나문희 선생님에게 무릎을 꿇고(웃음) 재촬영을 해야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마 선생님이 연기로 재촬영을 하셨던 적이 없을 텐데… 저도 태어나서 이렇게 재촬영을 많이 해본 영화는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필모 사상 이 영화가 제일 힘들었다”는 윤제균 감독은 “어느 감독이나 배우나 다 자신의 영화가 흥행되길 바란다. 저는 배우들에게 ‘간절히 기도하자’고 한마디만 했다. 흥행은 관객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거니까. 경험상 흥행이 되려면, 겸허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자만하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영웅’을 극장에서 즐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윤 감독은 “국민 모두가 힘든 시기를 버티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힘겹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고 계신 국민들이 모두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희 영화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안중근 의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셨던 것 같다.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애국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영화가 지친 국민들에게 작은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21일 극장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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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CJ ENM, 영화 스틸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