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이공 탈출기가 공개됐다.
9일에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1975 베트남 탈출기' 편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됐다.
이날 안병찬 기자는 사이공 최후의 날 사진을 찍어오라는 신문사의 요청에 베트남 사이공으로 향했다. 안병찬 기자가 사이공에 도착한 지 일주일 째 됐을 때 기자는 지붕이 없는 지프차를 끌고 다녔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대통령궁이 폭격을 당했고 그때부터 거리에 인적이 끊겼다. 베트남의 교민들은 한국 대사관으로 몰려들었다.

교민들은 한국에서 어려운 상황 때문에 베트남에 와서 기반을 잡은 상태였다. 장성규는 "당시 베트남 파견 기술자의 월급이 우리나라 장관의 월급과 맞먹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안병찬 기자는 "가난을 면하기 위해 베트남에 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안 가겠다고 하더라. 가면 또 다시 가난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 대사관의 이달화 보좌관과 안희완 영사는 교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안희완 영사는 사이공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본인만 남고 가족들을 먼저 한국으로 보낸 상태였다. 안희완 영사는 "남자들만 남은 상태였다"라고 회상했다. 외교관의 임무는 교민 천 여명을 안전하게 출국 시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교민들을 구하기 위해 남베트남에 구호물품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극비로 피란선을 출항시켰다. 해군 함정이 정박한 곳은 메콩강 깊숙이 있었고 주변은 이미 북베트남에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교전에 휘말리거나 납치될 수 있는 상황.
이달화 보좌관은 "안 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다 사업가였다. 며칠 후면 돈을 받는데 그걸 못 받으니까"라고 말했다. 게다가 베트남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거나 불법체류자가 된 사람들까지 교민들의 출국 과정은 쉽지 않았다. 결국 보좌관들은 해군 함정을 하루 미뤄서 교민들을 모두 태울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함장과 해군은 10분에 한 번씩 수류탄을 던지며 함정을 지켰고 마침내 교민들을 태웠다. 안병찬 기자는 "교민들이 떠나는 배에서 사이공 사이공 부르던 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린다. 울음소리 같이 들렸다"라고 회상했다.
한편, 이날 교민들은 무사히 탈출했지만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미국 헬기에 타지 못해 베트남 감옥에 5년 동안 투옥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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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