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0원' 김완선도 가스라이팅 피해자였다 "죽을 각오로 이모 도망쳐" [종합]
OSEN 김수형 기자
발행 2023.02.11 08: 24

 '금쪽상담소'에서 김완선이 13년간 정산 0원으로 다시금 충격을 안긴 가운데, 가스라이팅을 당했던 이모로부터 도망치듯 벗어났다며 당시 절박했던 심경을 전해 안타까움을 안겼다. 
10일 방송된  방송된 채널A 예능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오늘 게스트를 소개했다. 바로 가수 김완선. 그는 1986년 ‘오늘 밤’으로 데뷔한 김완선은 살아있는 전설로 한국의 마돈나이자 댄싱퀸으로 불리고 있다.
1980년대 원조 디바답게 춤으로 자신을 소개한 김완선은 동생과 함께 출연,  친구가 없는 언니 김완선을 걱정했다. 게다가 무기력 끝판왕이라고. 최고의 가수지만 자존감이 낮은 김완선에 대해 언급, 김완선 역시 깊어지는 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보이더니  알던 관계도 다시 만나면 리셋이 된다고 했다.

김완선은 “자주 만나면 친밀감 생기겠지만 매일 만날 수 없어 힘들다”면서 “먼저 연락하는 경우도 없어, 혹시 바쁜데 민폐일까, 실례일까 걱정된다”며 깊은 고민을 나눌 친구도 없다고 했다. 상대방 입장을 과도하게 걱정한 모습. 어떤 민폐를 생각하는지 묻자 김완선은 “반갑지 않고 귀찮아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문제는 가족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 가족간의 연락도 망설여진다고 했다.
김완선은 “어릴 때 이모집에서 생활해, 가족과 많은 정을 나누지 못해 10대 때 이모 집으로 갔다, 14세 쯤”이라며 가족의 정을 느끼기 어려웠다고 했다. 어린나이에 홀로서기로 깊은 관계가 어려운 듯 했다. 오은영은 “스스로 상대에게 부담, 짐이 될까 생각하는 모습. 스스로 행복아닌 부담과 민폐를 주는 사람으로 인식한다”며  스스로에게 부정적인지 물었다. 김완선은 “그런 것 같다”며 부정적인 편이라고 했다.
언제부터 자신에게 부정적인지 묻자 김완선은 “음악이 좋아 가수생활을 시작했는데 매니저였던 분”이라며친이모이자 매니저였던 고 한백희를 언급, “혼자서 트레이닝과 프로듀싱을 다 하셨던 분. 그때 전 너무 어렸다”면서 “이모가 시키는 대로한 로봇같은 존재제 마음 속에서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했다고 생각한 적 없어 보람이 없는 상태 쭉 일했다”고 고백했다.그런 매니저 겸 이모와 13년간 일했다는 것.
이에 오은영은 중학생 때 가수의 길을 결심한 김완선에 대해 주도적으로 달려왔다며 “매니저가 이모면 가까운 관계, 카리스마도 있던 분”이라며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받은 김완선에겐 고 한백희가 가족이자 매니저, 스승이었을 것이라 했다. 김완선도 그만큼 통제를 받았다고 했다.
1980~90년대 본인 의지가 아닌 이모의 의지대로 살아왔다는 김완선. 인기는 얻었으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김완선은 “무슨 일이든 보람이 있어야하는데 잘 못 느끼고 살았다”며 인기도 명예도 모든 것이 내것이 아닌 느낌이었다고 했다. 김완선은 “남의 집에 있는 것처럼, 내 인생이란 느낌이 안 들었다”며 “이모의 인생이라 느껴, 이모가 나를 통해 대리만족한다고 생각했다”며 마치 이용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당시 스케줄에 대해 김완선은 “24시간 이모와 함께 있었다”고 하자 오은영은 “정서적으로 탈진된 상태, 지금도 회복이 안 된 것 같다”며 방전된 배터리 같다고 했다. 사람을 만나는 에너지 조차 기력이 없게 됐다는 것. 김완선도 “싫지 않은데 힘들다, 그런 것 같다”며 공감했다. 오은영은 “내향적인 사람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야해, 혼자 또는 편안한 소수의 사람과 에너지가 충전된다”며 “김완선은 그걸 넘어서 정서적 탈진상태로 오랜시간 지낸 것, 에너지 낼 여력이 없어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완선을 위해 막냇동생이 스튜디오에 직접 출연했다. 오은영은 사전 적성검사에 언급,검사결과 김완선은 생활 속 재미를 잘 못 느끼며 자기자신을 부정적으로 느낀다고 했다. 생각과 감정을 억제하며 자기 자신을 잃을 정도로 멘털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라고 했다.
이에 김완선은 “잊어버리는 연습을 많이 했다”며 잊고싶었던 기억에 대해 “이모와 갈등이 많았다 난 그만두고 싶고 끌고 가고 싶던 이모 , 일기로 힘든 것을 해소해 하룻밤에 8장을 쓰기도 했다”며 일기가 분풀이용 수단이 됐다고 했다.김완선은 “생각하지 말자 하니까 좀비처럼 따라가게 됐다 성인이 된 직후 안 좋은 기억을 지우는 연습을 해 살면서 시행착오 겪어도 버틸 수 있는건 잊어버린 연습 때문”이라며 “내가 살려고 (그런 것)”이라며 갈등 속 피폐해져 간 삶에 대해 꺼냈다.
오은영은 “살면서 겪은 힘든 기억을 잊기 위해 사고억제를 해, 의도적으로 생각을 막는 행위”라며 “에너지 고갈로 정서적 탈진상태, 사고 억제로 본인을 보호하려는 아픈 기억이 있다, 마음이 짠하다’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까지 한 김완선을 안타까워했다.
계속해서 문항 중 ‘내가 다시 젋어진다면’문항에 대해 김완선은 ‘나와 내 인생을 포기한 채 살지 않을 것’이라 답했다. 인생을 포기할 수 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 김완선은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가장 큰 건 이모의 통제”라며 헤어스타일, 의상, 신발 등 모두 통제받았다고 했다. “그런 것들이 사람 숨을 조였다 조금이라도 좋다면 더 무시 당해 힘들었다”며 회상했다.
김완선은 “어느 날 신인작곡가가 악보를 보내와 너무 좋아서 하고 싶다고 하니 이모가 그걸 아예 내 의견을 무시했다, 당시 스무살이었을 때”라며 “한 번 의견을 따라주면 앞으로 내 말을 따르지 않겠다는 일말의 가능성도 용납하지 않아 묵사발 시킨 것,  그러면서 이 일에 마음을 놔버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김완선은 “난 계속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아야겠구나 싶어 음악에 대한 열정과 보람이 사라져버려, 그 상태로 쭉 일했다”며 “질질 끌려갔다 그 삶이 싫어 좀비가 되어버린 것”이라 말했다.
동생도 “언니 문제로 가족들이 힘들어해, 이모가 완선을 1년에 한 두번도 데려오지 않았다”며 이모가 가족과의 만남도 자제해 완전히 단절시켰다면서 김완선이 고립됐다고 했다. 동생은 “엄마가 집에 가려면 언니의 없는 스케줄을 만들어 (김완선을 밖으로)내보낼 정도 부모님도 힘들어하셨다”고 말을 보탰다.
이 가운데 감완선은 “13년간 일을 아침부터 새벽까지 했는데 정산이 없어, 0원”이라며 초기 투자비용을 갚은 후에도 계속 정산문제가 이어졌다고 했다. 단 한번도 이모에게 정산 얘기도 해본적 없다는 것. 실제로 김완선은 당시 한 달 평균 10억원, 매년 100억원 이상을 번 것으로 알려졌는데, 수익금의 행방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던 바. 이를 13년간 환산하면 1300억원이나 되는 금액이다. 이 돈을 이모부가 사업으로 탕진하며 빚 갚는데 모두 썼다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다.
이후 김완선 모친이 이모를 찾아가 김완선의 몫을 물었으나 안심용으로 통장을 보여줬을 뿐, 김완선의 몫을 모두 빼앗았다고 했다.이미 이모가 돈을 다 가져가 통장에 한 푼도 없었다는 것. 그 많은 돈의 행방을 묻자 김완선은 “이모의 남편이 다 갖다 썼다”며 “배우자를 잘 만나야한다”며 애써 웃음으로 넘겼다. 그러면서 가슴 속 응어리를 풀지 못한 채 2006년 이모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이에 정형돈은 “이정도면 가스라이팅”이라고 말하자 오은영도 “그렇다고 본다”며 이모 통제아래 고립되었고 주변상황을 통해 이모의 지배력이 강화됐다면서 “심리적 지배를 당한 것”이라며 이모의 강압 속 무력한 삶을 살아온 김완선을 안타까워했다. 오은영은 “심리적 지배 전제조건은 사랑 늘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렇기에 정신적 학대는 벗어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급기야 오은영은 “죄송하지만 김완선은 독재자같은 매니저 밑에 있던 것, 긴 시간 심리적 지배를 받아 존재감이 없어졌다”며“지인들과 단절시켜 고립상태 , 결국 가해자에게 의존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된 이모에 대해“이모의 잘못을 밝히려는 자리는 아니고 김완선의 경험은 분명히 인지해야하는 자리”라 강조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을 김완선에 대해“자기 생각과 의견을 말하는 거 자체가 고통일 것 자연스럽게 사고억제와 방어기제가 발휘된 것”이라 말했다.
가족이라 상처도 더 컸다는 김완선은 “자꾸 내 자아를 죽이니까, 나란 인간을 못 자라게 하니까 가장 큰 불만,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어떻게 이모와 헤어지게 됐는지 묻자 김완선은 “정말 죽을 각오로 나왔다, 일을 안 하겠단 용기가 없었다”며“부모님 집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챙기지 못해 도망쳐나왔다, 그렇게 이모와 헤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모에게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여, 호떡장사를 하자고 나왔다”며가수의 꿈을 포기할 만큼 간절하고 절박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극복이 아닌 마음 속 깊이 덮어둔 아픈 기억에 대해 오은영은 “당장은 마음이 편해도 상처를 직면해야 극복할 수 있어 내 삶 일부의 기억은 더 나은 삶을 살게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괴롭더라도  기억을 꺼내 직면하는 건 필요한 과정이라 전했다.
그러면서 이모의 꼭두각시로 살아오며 외톨이가 된 과거의 기억을 꺼내보기로 했다.김완선은 “빨리 끝내고 싶던 기억”이라며 어렵게 과거를 마주했다. 오은영은 김완선에 대해 “인간관계보다 먼저할 것 감정이 가라앉은 상태인 김완선, 낮은 텐션이 만성화됐다”며 그 상태가 익숙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편함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기분 부전증”이라 말했다. 늘 울적한 기분이든다는 것.
오은영은 “도움이 필요한 걸 잘 알아차지 못하는데 김완선은 알아차린 편 의욕을 찾는 것 자체가 극복의 첫걸음이 될 거다”면서“다시 멘털 에너지도 찾을 수 있을 것 제가 친구가 되어드리겠다”고 했고 김완선도 “내 마음이 항상 궁금했는데 해결됐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은영 박사를)자주 찾아뵙고 싶다”며 한 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솔루션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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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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