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파괴 공포영화라고 불린 '곰돌이 푸:블러드 앤 허니(Winnie-The-Pooh: Blood and Honey, 2023)'가 멕시코 박스오피스에서 흥행에 성공을 거뒀다. 10만 달러(1억 2,605만 원) 미만의 예산이 투입된 이 영화의 흥행 수익은 지난 주까지 100만 달러(한화 12억 6,040만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 만료'로 인해 탄생한 이 같은 변종 혹은 이색 콘텐츠에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지난 해 5월 피비린내 나는 예고편으로 슬패셔 호러 영화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던 '곰돌이 푸:블러드 앤 허니'는 지난 달 26일 멕시코의 극장에서 조용히 개봉됐고, 두 번의 주말 동안 95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외신에 따르면 이 같은 기세에 개봉을 확장하며 제작진은 속편도 준비 중이다.
이 영화는 당초 지난 해 10월 타 저예산 영화들처럼 디지털 플랫폼에서 공개되고 2월 15일 미국의 영화 배급사 파덤 이벤트를 통해 단 하루 동안만 상영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파덤 이벤트를 통해 멕시코에서 먼저 선보여 9일 동안 1,500개 이상의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이 영화는 월마트의 저예산 영화의 단골 공급업체인 ITN 필름스의 지원을 받았으며, ITN의 첫 번째 극장 영화가 된다.
독립영화 감독인 라이 프레이크-워터필드(Rhys Frake-Waterfield)는 이 영화를 통해 전세계인들에게 오랜시간 사랑받아 온 캐릭터를 연쇄 살인마로 변신시켰다. 워터필드 감독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크리스토퍼 로빈(곰돌이 푸 단짝친구)은 그들(곰돌이 푸-피그렛)에게서 멀어졌고, 그는 그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다. 그것은 푸와 피글렛의 삶을 꽤 어렵게 만들었다. 스스로 살기 위해 푸와 피그렛은 본질적으로 야생이 됐다"라고 영화의 배경을 설명했다. 더불어 "그래서 그들은 동물의 뿌리로 돌아갔다. 그들은 더 이상 길들여지지 않는다.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고 싶어하는 악랄한 곰과 돼지가 됐다"라고 설정 소개를 덧붙였다.


라이 프레이크-워터필드는 또 다른 전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캐릭터인 피터팬 역시 '악마'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피터팬이 웬디를 납치한다는 설정이란 소문이다.
'밤비' 역시 마찬가지. 디즈니 어린이 고전과 1928년 책 원작은 어린 사슴 밤비에 대한 사랑, 삶, 그리고 상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밤비의 어머니가 사냥꾼들에게 총을 맞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하지만 워터필드의 어두운 세계관 속 밤비는 광견병에 걸려 살인 기계로 변신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재창조 배경에는 '저작권 만료'란 상황이 있다. 영국 작가 밀른과 삽화가 셰퍼드의 원작소설 '위니-더-푸(Winnie-The-Pooh)'의 저작권은 지난 2021년 1월에 만료돼 공공영역에 나왔다.
미국의 저작권 보호 기간은 95년. 1926년부터 이 같은 시간이 흐른 만큼 이제 디즈니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곰돌이 푸'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원작을 기반으로 한 2차적저작물인 1930년에 만들어진 빨간 티셔츠 같은 요소만 없다면 디즈니가 저작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것.
곰돌이 푸 뿐만 아니라 1920년대 후반 작품들의 저작권이 줄줄이 소멸되는 가운데 미키 마우스, 밤비, 그리고 셜록 홈즈 같은 캐릭터들도 이에 포함된다.

미키 마우스의 경우는 작품 초기 흑백 캐릭터의 것만 해당된다. 그렇기에 아직 제한적이고 디즈니는 저작권 만료에도 캐릭터와 관련한 권리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했지만 점차 누구나 가능한 자유창작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처럼 '공유재산'이 된 캐릭터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살인마가 된 곰돌이 푸만 보더라도 "동심파괴", "정신적으로 안 좋은 영화", "내 어린 시절 추억과 귀여운 캐릭터들을 망가뜨린다", "이건 아이들을 위한 사랑스러운 캐릭터들과 동화인데 누가 망치나" 등의 반응과 함께 '안 보겠다'는 관람 거부 움직임도 온라인에서 등장했던 바다. 아이러니하게 흥행에는 성공했을지언정 캐릭터 왜곡과 악용 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
특히 국내보다 미국은 왜곡도 창작의 자유로 인정해 저작권법 위배로 보지 않기에 추후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관련 마찰도 존재했다. 앞서 '셜록홈즈'의 작가 코난도일재단이 셜록 홈즈의 여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넷플릭스 영화 '애놀라 홈즈'를 상대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었다.
'에놀라 홈즈'는 낸시 스프링거 작가의 소설 '에놀라 홈즈 미스터리' 시리즈 7편을 각색한 작품인데 재단은 극 중 홈즈 일부분에 대한 묘사가 저작권이 풀리지 않는 내용을 반영했다고 문제삼았다.
'셜록 홈즈' 시리즈 대다수는 95년이란 기간을 넘긴 상태라 2차 창작물을 만드는 것을 두고 문제제기를 할 수 없지만 말이다. 결국 넷플릭스와 코난도일재단이 합의를 하면서 사건은 해결됐다. '셜록 홈즈' 저작권은 올해 마지막 남은 것까지 모두 풀려 누구나 소설 속 캐릭터 등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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