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지난 2001년 성악가 조수미가 부른 ‘나 가거든’(강은경 작사, 이경섭 작곡)을 처음 들었을 때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다.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이 삶이 다하고 나야 알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유~.’
시 같은 노랫말, 엇박과 변박이 연출하는 극적인 리듬감과 3옥타브 미까지 올라가는 고음을 물흐르듯 타고 넘는 조수미의 감미로운 음색이 그대로 드라마 같은 감동을 안겨줬었다. 덤으로 성악을 비롯, 재즈와 발라드, 록, 팝 등이 매칭된 장르를 ‘크로스오버’라 부른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리고 20년이 훌쩍 넘어 ‘크로스오버’란 장르가 다시 한번 귀를 사로잡는다. 남성 4인조 에스페로(남형근, 허천수, 켄지, 임현진)의 데뷔곡 ‘Endless’가 그 포획자다.
에스페로와 ‘Endless’는 ‘나 가거든’을 제작했던 바로 그 김광수 대표가 이번엔 작곡가 조영수와 손잡고 선보인 그룹이고 노래다. 지난해 12월 20일 데뷔 콘서트 ‘Romance on Classic Debut Concert(로맨스 온 클래식 데뷔 콘서트)’를 통해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네이버 나우를 통해 공연 실황이 공개됐다.
100명의 오케스트라와 60명의 합창단이 함께 꾸린 이날 무대 마지막을 장식한 ‘Endless’는 김호중의 풍성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으로 시작됐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 남형근과 그 후배 임현진, 한예종 성악과의 허천수, 그리고 켄지까지 네 성악도의 성량은 드넓은 야외 공연장을 빈틈없이 메웠다. 거침없이 솟구치거나 감미롭게 잦아드는 음을 희롱하는 정확한 딕션은 가사가 품은 정서까지 고막을 통해 심장에 전달해 주었다.
더불어 ‘잘 가 내 사랑/ 끝나지 않을 이야기/ 내 눈물이 모여/ 비가 되어도 못 잊을 사랑’이란 후렴구는 삽시간에 귀에 꽂혔다. 그리고 그 탁월한 전달력은 어떤 아련한 심상을 그려주었다. 오랜만에 조수미의 ‘나 가거든’ 때를 떠올리게 하는 경험이었다.

크로스오버 그룹 에스페로는 요즘 흔한 오디션을 통해 결성된 팀이 아니다. 오랜 연습생 생활을 거친 이들도 아니다. 그저 성악을 전공한 네 젊은이들이었다. 김광수 대표와 조영수 사단이 뽑고 다듬어서 뚝딱 내놓은 그룹이다. 세상에 나온 지 고작 2달. 하지만 그 보폭은 아장아장이 아니라 성큼성큼이다.
앨범 발매 5일 만에 크로스오버 그룹 최초로 멜론 TOP100 차트 인에 성공했고 발매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지난 1월 15일 기준 64위를 차지하는 기세를 보였다.
‘나 가거든’과 마찬가지로 커버 열풍도 불러일으켰다. 권인하, 정동하, 박상민, 김정민, 리누, 김용진, 유미, 이우, 배우 김영호 등 장르 불문 많은 아티스트들이 ‘Endless’ 커버에 동참했다.
이 새내기들의 걸음마 보폭을 키운 이는 ‘트바로티’ 김호중이다. 김호중은 ‘Endless’의 피처링에 동참했다. 대중음악에 아직은 낯선 멤버들의 클래시컬한 성악 발성을 노련하게 리드해 대중 감성을 터치하게 이끌었다.
또한 지난 11일 방송된 KBS 2TV ‘불후의 명곡-오 마이 스타’ 특집에도 에스페로와 함께 출연, 이승철의 '서쪽 하늘'을 재해석한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결과는 ‘불후의 명곡’ 첫 출연 1위. 크로스오버 그룹으로는 포레스텔라에 이은 두 번째 기록이란다.
이들이 이날 ‘서쪽 하늘’을 선택한 것도 어쩐지 의미심장해 보인다. ‘서쪽 하늘’을 OST로 쓴 영화 ‘청연’의 카피가 ‘세상, 그 위로 날아오르다’이다. 김호중의 응원, 혹은 에스페로 본인들의 다짐일 수 있겠다는 섣부른 추측도 해본다.
곡 도입을 칸타타인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중 메인 테마 ‘오! 포르투나!(O Fortuna)’의 격정적인 멜로디로 시작함으로써 선곡의 품격을 높인 것도 크로스오버 그룹다운, 장점을 제대로 살린 영리한 선택이었다.
크로스오버 장르는 주로 ‘마니아층 팬덤’의 한계에 머물기 십상이다. 하지만 에스페로의 등장은 그 대중화의 가능성을 기대케한다. 이들의 성공을 통해 음악 수용층의 스펙트럼도 다양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에스페로는 TV조선 ‘국가가 부른다’에도 ‘천둥호랑이’ 권인하와 함께 출연한다고 14일 소속사 포켓돌 스튜디오측은 밝히기도 했다.이런 바쁜 스케줄을 통해 잠재력 탁월한 크로스오버 그룹 에스페로가 세상, 그 위로 날아오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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