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스캔들’ 전도연 겨냥한 신재하의 백기사 증후군 ‘섬뜩’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3.02.20 10: 57

[OSEN=김재동 객원기자] 누나에게 들었다. 고마운 선생님이라고. 누나는 확실히 그 분 덕에 숨을 트고 살았었다. 그 분에게 받은 만년필을 자랑도 했었다. 누나의 장례식때 그 분은 창백한 표정으로 나타났었다. 누나가 남긴 그분의 선물, 만년필을 돌려드리려 했다. 그 분은 거절했다. “이미 수현이에게 준 거야. 수현이 거야.” 그렇게 선생님의 온정은 내게도 이어졌다.
그런 선생님을 도와드리고 싶었다. 선생님 연구소에 들어갔다. 지근거리에서 살펴본 선생님은 여전히 학생들을 아꼈다. 확실히 존경할만한 어른이었다. 주변에는 까칠하지만 그 이유가 10년을 넘긴 지금도 누나의 일로 괴로워하시기 때문임을 알았다.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섭식장애까지 앓고 계셨다. 따뜻한 분. 안쓰러운 분. 최선을 다해 케어해드릴 것이다. 선생님을 도와드리는 건 세상에 태어난 소명이고 행복이다. 그랬는데...
19일 방송된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 12화는 지동희(신재하 분)의 서슬퍼런 쇠구슬이 남행선(전도연 분)을 겨냥하는 장면에서 엔딩을 맞았다.

드라마 초반부터 일타강사 최치열(정경호 분)을 짜증나게 하던 인물들을 쓰러뜨렸던 쇠구슬 테러범의 정체가 최치열 연구소 실장 지동희임이 밝혀진 것이다.
그리고 그 지동희가 화보촬영장에서 만난 사진팀의 누군가로 인해 중학교 시절엔 이름이 정성현이었던 것도 드러났다. 12년 전 투신자살한 정수현 학생의 동생이자 친모살해사건 피의자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바로 그 중학생.
하지만 지동희에겐 자신을 알아본 중학동창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남행선이란 여자. 그냥 반찬가게 아줌마다. 섭식장애에 시달리던 최치열 선생님이 그 집 밥만은 잘 드셔서 처음엔 고마워했던 사장님이다.
그런데 알고보니 선생님이 입에 달고 말씀하셨던 고시생 시절 은인의 딸이란다. 뭐 모녀가 대를 이어 선생님의 끼니를 해결해준다니 고마운 일 맞다. 선생님이 건물을 통째로 구입해 월세도 반으로 깎아줄만한 사이고 에어컨도 놓아줄 만하며 그 딸래미 남해이(노윤서 분) 과외도 당연하다. 가슴 따뜻한 선생님에게 걸맞는 마땅한 보은이다. 국가대표 반찬가게 식구들 모두가 최치열 선생님 편이었으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것도 기꺼웠다.
선생님은 거기서 그치셔야 했다. 그런데 유부녀인 그녀를 마음에 품으셨단다. 공개적으로 자신이 그녀를 사랑했다고 고백도 하셨다. 세간의 온갖 비난의 화살을 몸으로 견디셨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왜 저런 수모를 자처하셔야 한단 말인가.
그나마 참을만했다. 그때까지 남행선 사장님 역시 같은 피해자였으니까. 둘의 마음이야 어떻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으니까.
그런데 웬 청천벽력. 남해이가 고백했다. 남행선 사장님은 엄마가 아니라 이모라고. 결혼 한번 해본 적 없는 처녀라고. 이제 선생님과 남행선이란 여자 사이를 가로막을 장애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외로웠고 쓸쓸했던, 나 밖에 돌볼 이 없던 선생님의 인생에 그 여자가 쓰나미처럼 들이닥쳤다. 선생님을 위해 최선을 기울였던 나의 선택이 연거푸 그 여자의 속닥거림에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가련한 나의 누이마저도 잊혀지고 말았다.
남.행.선. 그녀는 우리 남매의 적이다. 아울러 최치열 선생님의 전도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팬입네 극성 떨며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이름 모를 여고생처럼, 감히 올케어반에서 선생님에게 항명했던 건방진 머슴애처럼, ‘최치열라짱나’란 익명에 숨어 선생님을 음해했던 가증스런 진이상(지일주 분)처럼, 걸림돌은 내 손으로 치워버리면 된다.
지동희가 이렇게 본색을 드러내면서 ‘불도저’ 송이태 형사를 ‘덮밥 형사’로 만들었던 과거 친모살해사건의 진범 역시 지동희, 곧 과거의 정성현이 아니었을까란 합리적 의심이 든다.
녹은로의 극성 엄마 중 하나인 친모의 정서적 학대속에 수현·성현 남매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았을 것이다. 누나 수현은 최치열이란 숨구멍을 통해 숨 쉴 수 있었고 그 호흡을 성현에게도 나누었을 것이다. 그 누나마저 엄마의 시험지 유출로 극단적 선택을 한 후, 성현은 누나를 죽음으로 몬, 그리고 누나 사후 자신에게 두 배로 가중된 엄마의 극성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폭발했을 수 있다.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받고 세상에 외돌토리로 남겨진 성현은 자신의 족쇄 정성현이란 이름을 버리고 지동희로 개명한 후 누나를 통해 자신에게도 숨구멍이 됐던 최치열을 찾았을 것이고 그 최치열이 누나를 잊지못해 괴로워함을 알고 더욱 애틋해졌을 것이다.
백기사 증후군(White Knight Syndrom)이란 말이 있다. 이 증후근은 타인의 불행에 기대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장기적으로는 타인은 차치하고 자신에게도 해를 미치기 십상이다.
지동희는 최치열이 누나 정수현의 기억으로 불행해하는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끼고 그를 보필하는데 최선을 다해왔다. 그리고 그런 최치열을 향한 자신의 헌신에 만족하고 행복해했다. “참, 우리 선생님은 나 없으면 어쩌시려고...”는 지동희의 자부심이었다.
즉 지동희의 존재 이유는 ‘불행한 최치열’을 전제로 한다. ‘1조원의 사나이’란 외적 성공은 충분히 응원하고 지지하고 한손 거들지만 ‘편안하고 행복한 최치열’이 되어서는 자신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표피적으로는 ‘행복한 최치열’을 위해 거치적거리는 존재들을 제거해 가지만,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 희생하면서도 행복해하는 최치열은 꼴보기가 싫다. 그런 최치열이라면, 그 옆에 지동희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되리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중학시절부터 최치열이란 숨구멍에 의지해 살아온 만큼 최치열을 떠나선 살 수 없는 존재가 돼버린 지동희다. 남행선을 향한 적의가 사무칠 수밖에 없다.
제자를 잃은 아픈 기억에 십 년을 훌쩍 넘기도록 불면과 섭식장애에 시달려온 가련한 노총각 최치열과, 무책임한 언니 덕에 조카를 딸로 키우며 좋은 시절 다 보낸 노처녀 남행선의 철 지난 로맨스가 지동희란 무저갱같은 함정을 어찌 넘겨 꽃을 피울지 ‘일타스캔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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