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시작한 프리 다이빙으로 뮤직비디오 속 수중 신 촬영을 위해 직접 물에 뛰어들며 11월 끝자락의 차디찬 물 속을 견디고 컴백한 데뷔 25주년 가수가 있다.
가수 박기영이 그 주인공. 그는 1998년 데뷔 후 다수의 히트곡들을 직접 만들어내고, 장르를 넘나드는 보컬을 선보이며 지금까지 왕성한 활약을 이어왔다.
'열 일' 하는 박기영은 지난 20일 오후 6시 새 싱글 '꽃잎'을 영상미 넘치는 뮤직비디오와 함께 공개하며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앞서 공개한 곡 '사랑이 닿으면'과 '꽃잎'은 같은 배경을 공유하는 곡으로, 두 편의 뮤직비디오 속 펼쳐지는 대조적인 이야기가 보는 이들에게 사랑에 대한 기적 같은 행복, 심연의 고통과 같은 강렬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특히 영상미 높은 수중촬영이 빛을 발한다.
이처럼 '사랑이 닿으면'과 이어지는 서사를 가진 '꽃잎'으로 돌아온 박기영의 창작 과정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아래는 박기영과 진행한 일문일답
1. 새 싱글 '꽃잎'으로 돌아온 컴백 소감은?
두 달 만에 나와서 컴백이라고 하니 조금은 어색합니다. 제작 단계부터 '사랑이 닿으면'과 '꽃잎'은 하나의 이야기였어요. 두 곡의 시기를 조율하는 것도 숙제였는데 제목이 '꽃잎'이라 봄이 좋을까 했지만, 곡이 딥(deep)한 관계로... 봄이 올듯 말듯 한 때에 나오는 게 이 곡과 잘 어울릴 것 같아 2월 20일로 결정을 했는데, 마침! 갑자기 확! 하고 추워져서 감사하네요.
2. 신곡 '꽃잎'은 어떤 곡인지?
'사랑이 닿으면'과 '꽃잎' 두 곡을 통틀어 제가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는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만날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가 있고 피어날 때가 있으면 지는 때가 있죠.
생을 통틀어 찬란히 빛나는 건 순간이에요. 잘 산다는 건 '내가 지금 지나가는 때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느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게 저도 얼마 안되는데... 그래서인지 찰나의 아름다움과 이후의 견뎌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생각들의 결과가 이 두곡에 담겨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영원한 건 없으니 지금을 살자,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 아쉬움이 남지 않게! 아주 뜨겁게!
3. '꽃잎'은 지난해 12월 발매한 '사랑이 닿으면'과 배경이 이어지는 것으로 알고있다. 두 곡은 각각 어떤 감성을 전달하고 있는지?
'사랑이 닿으면'이 생에 가장 찬란하게 꽃이 피고 아름다운 때를 담았다면, '꽃잎'은 그 이후로 견뎌내야 하는 길고긴 시간을 담았습니다.
4. 이번 뮤직비디오에서 물 속에 잠긴 박기영님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수중 촬영 관련 에피소드나 비하인드가 있나?
작년 11월 28일에 촬영했습니다. 몹시 추웠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전인 10월 14일에 수중 사진 촬영을 했는데요. 그 때의 경험으로 촬영 중간에 물 밖으로 나오면 다시 들어가는데만 한 시간 이상 걸리고 다시 물 속에 들어갈때는 심적으로 열배 이상 더 춥고 고통스럽다는 걸 깨달았어요. 정말 피부를 칼로 살짝 스치게 베는 것 같이 소름돕게 아프고 차가운...(눈물)
그래서 '이번엔 중간에 나가지 말자!'가 계획이었습니다. 무식하죠(웃음)
그리고 그날 카타르 월드컵 가나전이 있었어서, '괜히 나갔다가 시간 버리지 말고 그냥 쉬어도 물속에서 쉬자. 얼른 끝내고 집에 가서 축구보자'하는 마음으로 체온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나중에 배가 많이 고팠어요.(웃음)
메이크업 수정도 물위에 상체만 내놓고 오들 오들 떨면서 받았죠. 중간 휴식없이 거의 두시간 넘게 물속에 있었는데 결국엔 가나전이 시작하기 바로 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어요(웃음). 이 날 저희 스태프 전체의 목표가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축구보자'였거든요.
5. '꽃잎' 제작에 있어 작곡과 작사에 모두 직접 나섰다. 창작 활동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외로움을 잘 견뎌서인 것 같습니다. 저는 혼자 있는 걸 아주 잘하고 좋아하는데요. 혼자 책을 보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하는 게 어릴때부터 자연스러웠어요. 대학생 때는 영화를 혼자 보러다던 사람이 없었는데, 저는 잘 다녔거든요. 저희 엄마가 항상 저에게 “넌 참 별종이야…”라고 하셨어요(웃음)
저의 작업 방식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음악을 먼저 만들고 가사를 입히는 경우인데 '나비' '그대 때문에' 'I gave you…' 등의 곡들은 이런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2010년까지 발표한 제 곡들은 다 완전히 이렇게 만들었고 지금도 주로 이렇게 하는데, 머리 터집니다. 가사를 끼워 넣느라.(웃음)
'그대 때문에' 가사 쓸 때 진짜 추운 겨울이었고 작업방이 북쪽이라 아무리 난방을 해도 22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 방이었는데, 그대 때문에 가사를 완성하는 마지막 날 그 방 온도가 28도가 되었을 정도였어요. 앉아서 가사만 썼는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뿜고 있었던거죠.
둘째는 가삿말이 먼저 떠올라 그 위에 음을 입히는 경우로 예를 들면 시집이나 글에서 영감이 떠올라 바로 작곡을 하는 경우입니다. '아네스의 노래'가 그렇습니다.
셋째는 아주 자연스럽게 어느 감성에 취해 나도 모르게 곡과 가사가 같이 한 번에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경우인데, '거짓말' '상처받지마' '안부' '다시 가기 원해' 도 그렇고 '꽃잎' 도 이런 경우입니다. 작업하기는 가장 수월한데 너무 몰입해서인지 감정적으로 힘들어요.
넷째는 전략과 전술로 만들어내는 경우인데(웃음) '아임 낫 오케이'가 대표적이죠. 이 작업이 가장 수월했다면 전문 작곡가가 됐을겁니다. 무대 공포가 심했거든요. 아무도 안믿지만...
요즘엔 작업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졸리와 함께 만나 수다 떨고 먹고 놀다가 갑자기 떠오르면 앉아서 후딱 작업을 하는데, 정해진 것 없이 졸리가 연주를 진짜 '아. 무. 거. 나.' 하면 제가 영감이 떠오르는대로 탑라인을 만들어 즉석에서 데모 녹음을 하는 방식입니다. 아주 효과가 좋아요(웃음).
연말에 둘이 만나서 30분 동안 9곡을 만들었습니다. 요즘 이 곡들을 정리하고 다듬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들으면서 깜짝 깜짝 놀라요. 곡이 너무 좋아서(웃음) 기대해 주세요!
저는 집안일을 할때도 가만히 있을 때도 감자를 깍을때도(웃음) 머릿속에 항상 글과 음악과 영상이 날아다닙니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에요. 그러다 뭔가 영감이 훅 하고 떠오르면 핸드폰에 녹음합니다. 꿈꾸다 곡 쓴 적도 많아요. '자꾸 이러지마'가 그렇게 나왔어요.
예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한이건 눈물이건 재주로 풀어내는 것이 예인이다”라는 대사를 보았는데 이 대사가 예술인을 정의하는 가장 명확한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욕구를 음악으로 풉니다. 무대에서의 저는 분명 행복하고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무대가 주는 긴장을 이겨내는 게 사실 보통일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곡작업은 긴장하지 않아도 돼서 좀 더 편해요. 그런데 또 무대가 주어지면 열심히 준비해서 서는 거죠.
모든 것들이 선순환 되는 것 같아요. 제 음악안에서 저는 작곡가고 작사가고 디렉터고 프로듀서고 가수고 코러스 세션이고 가끔 피아노 세션이기도 하죠.
잘못하면 제 안에 빠져 있을 수 있어 주변 동료들의 조언에 항상 귀를 귀울이지만, 연차가 연차인지라... 제게 직언할 수 있는 동료들이 점점 줄어든 다는 건 다른 한 편으로는 제가 정말 조심해야할 부분입니다. 주변에 모니터링을 정말 많이하는데 다들 좋게 이야기 해준다는 걸 알죠. 그래서 반만 믿어요. 제 딸이 요즘 제게 가장 정확한 모니터 요원입니다.(웃음)
제가 음악말고는 다른 취미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제 좀 다른 취미를 만들어 볼까?'하다가 그 취미도 결국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도구가 되었고(프리다이빙) 연기를 하고 싶은데 기회가 닿질 않아 뮤직비디오에서 연기를 했죠. 두 편의 뮤직 비디오에 립싱크 장면이 정말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또 제가 정말 생각이 많거든요. 제 창작의 원천은 이 많은 생각들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자아성찰과 삶에 대한 직관적인 시선, 관계에 대한 고찰 같은 것들이 글이 되고 시가 되고 노랫말이 되어 그 위에 음을 입혀 음악으로 만들어 질때가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가사를 나중에 써야 하는 경우에도 수많은 생각들과 혼자 적어본 글들에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6. '꽃잎' 발매 준비과정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궁금하다
제가 '초특급 소머즈'라 저희 담당 엔지니어가 정말 고생을 많이했다, 정도만 이야기 하겠습니다. 함께 MT도 가고 산도 오르고 하는 이유도 제가 너무 괴롭혔기 때문에, 잘 해줘야해서 그래요.
가끔 모니터 과정에서 제 귀로 듣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적응이 되지 않는 녹음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모니터가 정확하게 진행되지 않다 보니 현장에서 바짝 더 긴장을 하고 신경을 쓰게 되면서 헛것이 들리기도 해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헛 게 들린 게 아니라 저랑 졸리가 들은 게 맞았는데 당시에는 진짜 뭐에 홀린 것처럼… 서로 바라보고 눈이 동그래져서 얼음이 됐었죠. '우리가 뭘 들은거야…귀신이야...'라고 생각 했어요.(웃음).
7. '꽃잎'을 통해 팬들에게 비쳐지고 싶은 가수 박기영의 모습은 무엇인지?
이제는 '내가 어떻다! 이렇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들으시고 '좋다...'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밝아서 좋은 게 있고 슬퍼서 좋은 게 있잖아요, 뭐가 되든 좋으면 되죠!
8. 올해 데뷔 25년을 맞이하는데 소감은?
감개무량합니다.(웃음) 얼마전에 '비긴 어게인', '킬링 보이스' 녹화를 마쳤는데 '큰 공백기 없이 계속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라는 것에 제 스스로를 많이 칭찬해 주고 싶었습니다. 많이 찾아주시고 좋아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9. 2023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현재 일렉트로닉 앨범 마스터가 프랑스에 가 있습니다. 무사히 9월 초에 LP와 함께 앨범이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고, 지금 베스트 앨범 녹음이 한창인데, 11월에는 제발!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중단 되었던 크로스 오버 앨범 제작도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졸리와 작업하고 있는 곡들이 많은데 제 앨범에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예쁜 곡들이 많이 나왔거든요. 예쁜 분들이 저와 졸리의 곡을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얼마전에는 아직은 밝힐 수 없는 '레전드 뮤지션' 선배님의 새로운 앨범에 작곡가로 참여하였습니다. 좋은 소식 나오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10.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인생의 때를 누리며 살 수 있는 나날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도 제 스스로의 생을 긍정하는 시간들로 보내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건강을 위해 애쓸게요! 왜냐하면 여러분이 원할때 언제든 노래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꼭 몸도 마음도 건강히 지내다 만나요 우리!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어도 누구에게나 내면에는 상처입은 어린아이가 있잖아요, 저의 음악이 들으시는 여러분 내면의 상처입은 어린아이에게 닿아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되길 기도합니다.
다정하고 아름답고 강인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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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에스피케이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