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조진웅(47)은 23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열정이 컸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거 같다. 아마 지금의 상태에서 돌아간다면 죽을지도 모르겠다.(웃음) 그때의 저는 괴로운지도 모르고 살 수 있었던 열정이 컸다”라고 이같이 말했다.
조진웅은 40대가 된 현재 작품을 즐기면서 만들게 됐지만, 지금보다 어렸던 20대에는 열정과 패기 하나로 버텼다고 돌아봤다.
“지금은 ‘내가 이걸 해야 돼?’ ‘이걸 봐야 되나?’ 등 많은 것들을 저울질을 한다. 근데 20대 때는 무조건 들이받았다. 잘못된 게 있으면 1인 시위를 했고 욕을 먹어도 들이대서 싸웠다. 지금은 그런 열정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사명감으로 살았다. 왠지 짠함이 생긴다.”
그가 다시 한번 20대의 열정과 간절한 마음으로 발돋움하게 해준 영화 ‘대외비’(감독 이원태, 제공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작 트윈필름·비에이엔터테인먼트)는 1992년 부산을 배경으로 국회의원 당선을 희망하는 해웅(조진웅 분)과 권력 실세 순태(이성민 분), 조폭의 보스 필도(김무열 분)가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치열한 갈등을 담은 정치 드라마 장르물이다.

지지율 1위로 올라선 해웅은 만년 후보에서 벗어나 당선되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해 좌절을 맛본다. 훼방을 놓은 사람이 순태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해웅은 그와 갈라서고, 재기를 꿈꾸며 지역 재개발 계획이 담긴 대외비 문건을 손에 꼭 쥔다. 조폭 필도와 손잡고 선거판에 뛰어든 해웅은 권력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대외비’는 지난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데뷔한 조진웅이 연기 커리어를 쌓으며 스스로 개발해 온 캐릭터 빌드업의 노하우, 여느 작품보다 그의 압도적인 비중을 육중하게 담은 작품이다. 흥행 여부를 떠나 필모그래피를 아름답게 차지할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조진웅은 “코로나로 인해 개봉이 늦어졌다. 요즘 영화 홍보를 하면서 복기하고 있는데 사실 저는 영화 촬영을 마치면 일단 비워내기 바쁘다.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올 3월 1일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곱씹어봤는데,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작품과 캐릭터가 내 안에서 지워지지 않을 때마다 괴롭다. 이 작업을 마치고나서 지우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었다”고 되돌아봤다.
조진웅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 해웅에 대해서는 “아무리 영화지만 해웅 같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권력을 갖고 싶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장면을 찍고 나서도 그 궁금증 해결이 안 돼서 고민스러웠다. 이원태 감독님은 제가 고민하고 있는 모습도 영화에 담았다고 말씀하시더라. 표현하면서 늘 고심했다”고 말했다.
‘대외비’의 영어 제목을 ‘The Devil's Deal’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그는 “저는 그 표현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왜 악마의 거래라고 표현했는지 영화에 자세히 나와 있다. 영화가 되게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웃프’다. 연기하면서 짜증나고 답답한 느낌도 들었다”고 복기했다.

해웅 역의 조진웅은 “감독님이 ‘너무 어려운 캐릭터를 줘서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알면서 나한테 왜 주셨나 싶더라.(웃음) 그렇지만 처음부터 저는 어려울지 알면서 뛰어들었다”며 “항간에 ‘(조진웅이)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다더라. 저는 이원태 감독님, 이 배우들과 함께 뛰어들어서 신명나게 놀아보고 싶었다”고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대외비’라는 적나라한 제목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나서는 ‘내가 얼마나 신명나게 놀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이원태 감독님과 여러 배우들이 있으니, 이미 준비는 된 거니까, 또 한번 진하게 작업을 할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과정을 보탰다. “여러 캐릭터들이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키는데 영화를 보시면 ‘저 사람이 저렇게까지 한다고?’라는 생각도 하실 거다. 다른 정치 영화들을 보면 ‘정의가 승리한다’는 해결점이 생기는데 ‘대외비’는 그렇지 않다. ‘옳지 않은 순간에도 저 사람이 그대로 가네? 하지만 이해하기엔 쉽지 않네?’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어떤 게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없지만 그러면서도 이들에게 옳고 그름이라는 게 있을까 싶었다”고 작품에 임하며 든 마음을 회상했다.

신명나게 놀아보자는 결심대로 현장이 좋았다는 조진웅.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특히 '대외비'는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봤다는 점에서 여타 정치 영화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해웅이 권력의 실세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아마 정의롭게 살았을 인물이다. 하지만 권력의 맛을 보면서 겉멋이 들고 바보가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저는 캐릭터를 맡은 배우로서 그 부분을 좀 더 잘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캐릭터를 분석한 과정을 들려줬다.
이어 조진웅은 “영화를 보실 관객들이 ‘상황이 안 좋아도 나는 저렇게까지 살지 말아야지. 큰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셨으면 좋겠다. 저도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권력을 쥐는 게 물론 나쁘다고만 볼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권력과 야망, 욕망을 쥐고 사는 게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라는 사견을 드러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한 작품으로만 그를 만나게 돼 아쉬움이 컸다. 그러나 올해는 ‘대외비’와 함께 tvN 예능 ‘텐트 밖은 유럽-스페인’ 편으로도 시청자들 앞에 선다.
최원영, 박명훈, 권율과의 스페인 여행이 즐거웠다는 그는 예능이 기대된다는 말에 갸웃거리다 금세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텐트 밖은 유럽’이 제목이지만 기상 이변에 대한 말씀을 안 드릴 수 없다.(웃음) 날씨가 좋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폭우, 폭설이 쏟아져서 너무 놀라웠다. 제작진이 촬영에 앞서 2주 전 유럽에 다녀왔었는데 그런 경험은 없었다고 하더라. 바람과 폭설로 인해서 힘들었지만 저희들끼리 버티면서 잘 지내다가 왔다. 외국이니까 물론 이국적이지만 스페인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이어 권율과의 케미스트리가 기대된다고 하자, “권율이 고생을 많이 했다. 영어회화가 되니까 저희 안에서 총무 역할을 맡았고 무슨 일이 발생하면 곧바로 그 친구를 불렀다. 권율이 다른 현장에 가면 그래도 '선배' 소리를 들을텐데 저희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리니까 어쩔 수 없었다. 함께 하면서 한 가지 불편한 건 겸상을 했다는 것(웃음)”이라고 애정 섞인 답변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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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스틸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