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을 끝으로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팝업스토어가 마무리됐다. 그리고 25일, 내 옆에는 강백호와 서태웅의 유니폼이 놓여있다. 두 번의 오픈런, 시간으로 따지면 ‘7시간’, ‘12시간’ 총 19시간 대기로 얻어낸 전리품이다. 비록 ‘최애’의 유니폼을 손에 넣지 못했지만 ‘슬램덩크’를 보고 자란 세대로서 이만한 ‘추억템’도 없을 터.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두 번의 오픈런 ‘썰’을 푼다.
누적 관객수 34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대한민국은 지금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영광의 시대’다. 1990년대를 향한 추억과 원작 작가가 직접 연출 및 감독에 참여하고, 실제 농구 경기를 보는 듯한 섬세한 연출과 몰입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의 서사, 숨 죽여서 볼 수밖에 없는 게 바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다. 그 여운을 잊지 못해 n차 관람으로 이어지는 등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40대를 향해 달려가는 기자 역시 ‘더 퍼스트 슬램덩크’ n차 관람객. 특히나 ‘수집’에 취미를 두고 있는 만큼 ‘더 퍼스트 슬램덩크’ 팝업 스토어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특히나 캐릭터들의 ‘유니폼’을 구매할 수 있다는 건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고, 평일 휴무라는 시간적 요건과 어린 시절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경제적 요건이 만나면서 나름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다.
이미 팝업 스토어 첫날부터 ‘최애’의 유니폼은 패키지 정가(13만 5천원)를 넘어 약 3배에 달하는 ‘프리미엄’이 붙어 중고 장터에서 거래가 되고 있었다. 첫 날부터 영하 17도 한파에 1000명이 줄을 설 정도라는 말에 마음은 초조해졌지만, ‘나는 구할 수 있을거야’라는 마음으로 이를 억누르며 오픈런 날짜로 정했던 ‘1월 27일’을 기다렸다.

팝업 스토어가 열린 백화점과 지하철 5·9호선 여의도역은 지하로 이어져 있지만, 지하철 역사가 문을 닫는 시간 만큼은 바깥에서 대기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새벽 3시쯤 도착하면 그래도 30번 안에는 들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패딩, 장갑 등으로 무장을 했고, 새벽 3시 반께 팝업 스토어가 열리는 백화점 앞에 도착했다. 아뿔싸. 이미 5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걸음을 재촉해 맨 뒤에 서니 앞에 있던 남성이 “슬램덩크?”라고 묻는다. “네”라고 답하자 모바일 메신저 오픈 채팅방 이름과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53번과 성별을 프로필로 설정하시고 들어와라”고 했고, 이 사항들을 내 뒤로 오는 사람에게 인수인계하라고 했다. 모인 이들만의 ‘법칙’인가 싶어 오픈 채팅방에 들어갔더니 내 번호는 ‘53번’이었다.
새벽 3시 반부터, 팝업 스토어 오픈 시간인 오전 10시 30분까지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됐다. 날씨를 간과하고 핫팩을 챙겨가지 못한 게 한이었다. 준비해 간 작은 의자에 앉아 추위와 싸웠고, 내 뒤로 오는(나보다 한발 늦은) 이들을 오픈채팅방으로 인도했다.(대화도 오가지 않는 이 채팅방의 존재 이유 자체를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 들어갔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오전 4시 40분 정도가 됐을까. 지하철 역사 문이 열렸다. 그래도 추위를 막아줄 ‘벽’이 생겼다는 점에서는 한줄기 희망이었다. 맨 앞 사람부터 지하철 역사로 들어가 팝업 스토어 앞에 차려진 ‘입장 대기줄’에 그 순서 그대로 다시 대기가 시작됐다. 추위를 막아줄 ‘벽’과 급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는 점에선 천국이나 다름 없었다. 지하철도 다니기 시작하면서 줄을 서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출근 인파와 섞여 하염없이 대기를 이어갔다. (오전 7시에 여는 지하철 역사 안 편의점에서 사먹는 음료수와 삼각김밥은 그 어떤 음식보다 꿀맛이었다.)
오전 8시쯤, 팝업스토어 관계자들이 나와 QR코드를 보여주며 온라인 줄서기를 안내했다. 차례대로 QR코드를 찍고, 온라인 줄서기로 자신의 자리를 대체했다. 내 번호는 54번.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유니폼은 살 수 있겠다”는 그나마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오픈 시간까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웠다.(출근 인파를 보며 여유를 가진 건 나름의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오전 10시 30분. ‘더 퍼스트 슬램덩크’ 팝업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차례대로 알림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고, 번호가 그래도 앞에 속했던 기자 역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만화, 영화 속에서 봐왔던 캐릭터들로 채워진 팝업 스토어는 졸린 눈도 번쩍 뜨게 했고, 어서 내 차례가 오기만을 손 꼽아 기다리며 1분이 하루 같은 대기가 살짝 이어진 끝에 내 차례가 되어 입장할 수 있었다.
앞서 팝업 스토어는 1인당 수량 제한이 없었기에 혼란이 있었다. 그 이후로 캐릭터당 1개도 아닌, 전 캐릭터 중 1개로 수량이 제한됐다. 즉, 정대만 유니폼을 사면, 서태웅 유니폼을 살 수 없는 구조로 바뀌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팝업 스토어 측은 캐릭터당 수량을 알려주지 않았다. 유니폼 뿐만 아니라 피규어, 키링 등의 품목도 수량을 알려주지 않았다.
54번째에 입장했음에도 ‘최애’ 정대만 유니폼은 이미 ‘품절’된 상태였다. 구경조차 못해보고 텅 빈 ‘최애’의 라커룸을 보며 이거라도 기념하고자 사진만 찍을 수밖엔 없었다. 그리고는 강백호 유니폼을 선택했고, 다른 굿즈도 하나씩 구매했다. 이미 인기 캐릭터의 굿즈는 텅 빈 상태였고, 의류나 컬래버레이션 제품들만 눈에 띄는 정도였다. ‘54번’이 이 정도인데 나보다 뒤에 줄 선 사람들은 뭘 사보지도 못하고 그냥 구경만 하고 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정가에 살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첫 오픈런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강백호 유니폼과 유니폼 마그넷(정대만), 키 체인(채치수), 손목밴드, 스포츠 타올, 유니폼 지우개 세트, 아크릴 키홀더(서태웅) 등을 전리품으로 얻으며, “최애 유니폼을 구하러 다시 한번 와야하나”하는 마음과 “두 번은 못하겠다”라는 마음이 충돌했다. (Oh!쎈 현장②로 계속)
/elnino8919@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