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최민식의 보란듯한 뱃살도 메소드 연기 위한 설정?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3.02.25 12: 34

[OSEN=김재동 객원기자] 일단 그는 가난했다. 형편 어려운 어머니가 찾으러 올 때까지 보육원에서 굶주리며 불개미를 팔아 간식을 조달할 정도였다. 사고 친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나와 노름방을 열었을 땐 잠깐 반짝했다. 그 아버지에게 글을 배웠던 것은 아버지와의 유일한 좋은 추억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시 교도소에 들어갔고 나왔을 땐 마약쟁이까지 돼 있었다.
다음으로 그는 의리가 있었다. 친구를 위해 일진 선배들과의 주먹다짐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을 호구 삼아 등쳐온 친구도 ‘다시 눈에 띄면 죽는다’ 정도로 넘어가 주었다. 후배가 돌봐달라 보내온 양아치 깡패도 몇 번 씩 선을 넘어오지만 참고 지켜봐 줬다. ‘제가 날 버리면 몰라도 내 쪽에서 먼저 버리는 일은 없다’는 신조가 있다.
또 그는 영리하다. 월급 절반을 덜어준 담임선생님의 격려에 힘입어 학력고사 성적도 훌륭하게 받았다. 서울 명문대 대신 지방대 수석으로 들어가 장학금 받고 대학을 마쳤다. 이후 영어학원을 성공적으로 이끌만큼 수완도 좋았고 ‘카지노 방’이라는 새 아이템에서 대박의 냄새를 맡을만큼 금전감각도 훌륭했다.

추진력도 대단하다. 백골단에게 폭행당하던 운동권 여학생을 구해준 인연으로 전대협 의장 경호단에 합류했고 그 일로 호적에 붉은 줄도 갔다. 운동권 색깔을 벗자고 HID에 자원해 군복무도 마쳤다. 필피핀 카지노의 빚수금에 나서선 상대가 조폭이건 말건 젓가락으로 사람 볼을 맞창낼만큼 강단도 있다.
디즈니+ 오리지널 ‘카지노’ 의 주인공 차무식(최민식 분)의 캐릭터다. 드라마 캐릭터를 주저리주저리 읊은 이유는 배우 최민식이 한국을 대표하는 메소드 연기의 장인이기 때문이다.
메소드 연기라는 것이 자신의 실제 성격에 의존하지 않고 캐릭터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을 실제와 같이 모방하여 완벽한 변신을 꾀하는 방식이므로 배우는 ‘인물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된다.
개인적으로 눈길을 끈 것은 당장이라도 셔츠 단추를 튕겨낼듯한 최민식의 뱃살이다. 최민식은 의도적으로 그 뱃살을 시위하듯 내보이는 인상마저 준다. 그렇다는 것은 ‘차무식이라면 배가 이 정도쯤은 나와줘야 한다’는 최민식 나름의 설정이 있었으리라는 예단을 가능케한다. 설마 그 배우 최민식이 뱃살 관리 하나 제대로 못했을 이유는 없으니까.
실제로 느와르물을 표방한 이 작품의 액션씬은 화려하지 않다. 그림 같은 발차기도 없고 살 떨리는 총격전도 없다. 서태석(허성태 분)의 엘리베이터 격투씬도 개싸움이고 민회장(김홍파 분)을 살해한 킬러들의 총격도 드라이하다. 그렇게 윤색없는 리얼리티가 이 드라마의 강점이다.
주인공 차무식 역시 학창 시절 일진, HID 출신 등의 이력에서 싸움 솜씨는 있겠거니 싶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배짱과 판단력, 추진력에 좀 더 집중한 캐릭터다. 그리고 그런 차무식이라면 배짱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만큼은 배가 당당히 나와 있을 만도 하다.
명작 ‘대부’에 등장하는 마피아 킬러들도 배뚱뚱이가 많다. 손수건이 흥건하도록 땀 흘려 계단을 오른 뚱뚱한 킬러가 마치 풀포기 뽑듯 사람을 향해 산탄총을 갈기는 모습은 오히려 비정미가 물씬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메소드 연기를 말하면서 영화 ‘대부2’에서 유태계 마피아 두목 하이먼 로스 역을 맡았던 리 스타라스버그를 빼놓을 수 없다. 리 스트라스버그는 엘리아 카잔 감독이 1947년 설립한 배우 양성소인 ‘액터스 스튜디오’에서 1951년부터 수많은 배우들을 가르친 연기 선생님이다.
혁명 이전 쿠바에 거대한 카지노 공화국을 건설할 꿈을 꾸었던 하이먼 로스역을 맡은 스트라스버그는 아내가 만들어준 파이를 감사하게 먹을 줄 아는 깡마른 유태계 노인네면서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 분)를 향해 음험한 음모의 손길을 뻗치는 이중성을 숨쉬듯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차무식 역시 자신의 말을 안듣고 도박에 빠져 실망시킨 양정팔(이동휘 분)은 다시 거두면서 자신의 카지노에서 고영희(이혜영 분)의 돈을 훔친 필립(이해우 분)과 김소정(손은서 분)에겐 살인명령을 내리는 비정함을 과시했다. ‘형님’으로 부르는 정석우(최홍일 분)를 상대로는 짐짓 말리는 척하며 끝모를 도박의 수렁에 밀어넣기도 한다.
최민식이 고민하고 있을 ‘차무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드러나기로는 일단 돈이다. 그 돈으로 가족과 행복을 일구겠다는 것도 아니다. 가족과 행복한 여생을 즐길 돈은 이미 충분하다. 단지 원하는 것이 더 많은 돈일 뿐이다. 또 그 돈을 지키기 위한 권력도 필요하다.
새삼스레 그 의미를 따질 필요는 없어보인다. 차무식은 그냥 살려고 살았고 그렇게 어쩌다보니 지금의 차무식이 돼 있는 것이다. 결단하고 나서 후회를 곱씹는 캐릭터도 아니다. 진정 원하는 것이 돈과 그 돈을 지키기 위한 권력이라 해서 의미가 퇴색할 이유도 없다. 옳든 그르든 그게 차무식이니까.
차무식은 ‘카지노 시즌2’ 4화에서 조윤기(임형준 분)와 최칠구(송영규 분)의 음모에 걸려 민회장 살인범으로 필리핀 경찰에 체포돼 한국송환을 앞두고 있다. 한국송환은 차무식이 원한 바, 의리 때문이라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이 악당은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최민식의 뱃살이 과연 셔츠 단추를 튕겨낼 수 있을 지 만큼 궁금하다.
/zaitung@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