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장동윤 굴레 벗기와 추영우 열등감의 하모니 일품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3.03.10 12: 35

[OSEN=김재동 객원기자] 출신은, 그리고 가난은 하나의 혐의가 되기도 한다. 잘못하지 않은 일에도 죄송하다고 말해야 할 때가 있다. 제 짓이 아님에도 자수를 해야할 때도 있다.
KBS 2TV 수목드라마 ‘오아시스’(극본 정형수, 연출 한희)는 오랜만에 보는 묵직한 시대극이다. 특히 드라마가 다루는 세월이 그렇다. 70년대 경제성장기와 민주화 운동, IMF까지를 관통한다. 60년대생인 주인공들은 전쟁과 분단의 후유증을 DNA 속에 품고 있다. 그리고 끈질기게 남아있는 신분의 잔재를 짊어진 무거운 몸으로 가장 다이내믹했던 1900년대 후반의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
주인공 이두학(장동윤 분)은 머슴 출신 소작농의 아들이다. 한 살 어린 지주의 아들 최철웅(추영우 분)과는 형제처럼 자랐지만 대물림된 신분의 굴레 탓에 최철웅을 앞설 수 없다. 어쩌다 최철웅을 앞서기라도 하면 아버지 이중호(김명수 분)의 제지를 받는다.

그런 이두학을 ‘형제’라 칭하는 최철웅은 이두학을 깔아보는데 익숙하다. 할아버지는 지주이자 여수 지역의 존경받는 독립운동가이고, 아버지 최영식(박원상 분) 역시 사리분별 분명해 존경받는 목재소 사장이다.
철웅이 ‘아재’라 부르는 두학의 아버지 이중호는 할아버지 밑에서 머슴을 지냈고, 그를 ‘형님’이라 부르는 아버지 최영식의 수발 들기를 마다 않는다. 그러다보니 최철웅은 이두학을 ‘형’이라 불러주는 스스로의 관대함에 은근한 자부심도 갖고 있다.
그런 이들 앞에 불현듯 오정신(설인아 분)이 모습을 드러낸다. 두 청춘의 눈길을 한순간 사로잡은 그녀는 둘에겐 아이러니다. 청춘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첫사랑이자, 우정을 비집고 들이차는 음습한 질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오정신의 등장과 함께 이두학이 최철웅을 밀어내고 전교 1등을 차지한다. 진작 이두학의 뛰어남을 알고는 있었지만 감히 자신을 넘어서지는 않으리라 믿고 있던 최철웅에겐 충격이다. 전적으로 오정신에게 잘보이려는 수작으로 느껴진다.
그랬다. 이두학이 최철웅의 배경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면 최철웅은 싸움 잘하고 공부 잘하는 이두학의 능력에 열등감을 지녔던 것이다. 그리고 오정신은 그 도화선이 된 셈이고.
한편 최철웅에겐 천적이 있다. 다른 학교 일진인 기영탁(장영준 분)이다. 그는 항상 한 학년 후배인 최철웅의 나댐이 눈에 거슬렸다. 그 모습이 일년 꿇었지만 주먹 좋은 이두학을 두고 부리는 호가호위 같아 고까운 판이다.
이두학이 없는 사이 철웅과, 함께 있던 오정신을 손봐 준 것까진 좋았는데 살 떨리게도 권총 찬 오만옥(진이한 분)이 접근한다. 최철웅에게 몇 대 맞아주라는 명령도 받는다.
여수지역 보안부대장 황충성(전노민 분)은 기세 등등한 야당 국회의원 후보 최영식을 낙마시키기 위해 아들 최철웅을 이용하라고 오만옥에게 지시한 것이다.
최철웅과 기영탁은 두학이 보는 앞에서 맞짱을 뜬다. 적당히 맞아준 기영탁이 끝내 철웅을 쓰러뜨리고 돌아선 순간 철웅은 두학이 말릴 틈도 없이 짱돌로 그의 후두부를 강타하고 만다. 축 늘어져 버리는 기영탁.
기영탁을 병원으로 옮긴 철웅은 이두학 앞에 무릎 꿇는다. “형이 나 한번만 살려주소!” 제 죄를 대신 덮어써달라 애원한다. 철웅모 강여진(강경헌 분)도 이중호 앞에 무릎 꿇는다. “아재가 우리 철웅이 한번만 살려주세요!” 철웅의 청은 어이없어 거절한 두학이지만 못난 아비 중호의 부탁마저 거절하지는 못한 채 철웅의 죄를 덮어쓰고 자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 같은 양심을 지닌 최영식은 국회의원 후보를 사퇴한다. 철웅 아닌 이두학의 자수로 공작이 실패로 돌아가나 싶었던 황충성은 준장으로 승진해 여수를 뜬다.
두학이 교도소에 있는 동안 최영식도 사망하고 정신의 아버지(박지일 분)도 사망한다. 정신은 대학을 중퇴한 채 아버지의 남해극장을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대학에 진학한 철웅은 운동권 활동을 하며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된다.
그리고 백골단에 쫓겨 검거 위기에 놓인 철웅 앞에 모습을 드러낸 두학. 두학은 철웅을 빼낸 후 “너 분명 내 인생 책임진다 했제. 그 약속 지켜라. 데모 관두고 졸업 전에 사법고시 붙어서 검사 돼라”며 언제건 철웅을 감시하겠노라 경고한다.
그렇게 두학이 사라진 자리 철웅 앞에 보이는 검은 구두. 철웅은 손을 떨 정도로 질린다. 아마도 철웅 앞에 나타난 이는 오만옥으로 보이고 철웅은 아마도 운동권에서 변절, 프락치 활동 중인 것으로 보여진다.
두학은 교도소에서 인연을 맺은 부동산 사기 전과범 고풍호(이한위 분) 일당에 합류해 세상을 배우고, 고모로부터 아버지의 남해극장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신에겐 후견인이 되어줄 것으로 보이는 차금옥(강지은 분)이 나타난다.
그리고 면회 온 정신에게 “확실한 건 니가 여기보다 더 지독한 감옥이라는 거여. 이젠 나 좀 놔주라. 진심이다.”며 정을 뗐던 두학의 시선은 먼 발치에서나마 정신 주변을 헤맨다.
‘나한테 마음 주지마. 니가 아플거야’라는 스탠스를 취하는 주인공은 안쓰럽다. 신분이든 궁핍이든 굴레를 벗어던지려는 노력은 응원하고 싶게 만든다. 제 희생은 아랑곳 없이 지킬 것은 지키겠다는 의지는 박수칠 만하다.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여주인공은 언제든 사랑스럽다. 여성성의 전형 캔디가 입증했듯 역경에 굴하지 않고 항상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히로인은 매력적이다.
드라마를 끌어가는 주요 동력 중 하나로 작용하는 것은 아마도 안타고니스트 철웅의 열등감일 것이다. 두학에게 진 마음의 빚조차 두학을 증오하는 이유로 작용, 갈등을 부추길 것이다.
고풍호나 차금옥 같은 조력자도 회를 거듭할수록 매력을 찾아갈 것이고 황충성이나 오만옥 같은 거악들도 힘을 키워갈 것으로 보인다.
시대극에 걸맞는 짜임새가 꽉 채워진 모양새다. 진용만으로는 24부작도 가능할 것 같은 드라마 ‘오아시스’가 어떤 속도감으로 16부를 채워갈지 궁금해진다. ‘상도’·‘다모’·‘주몽’ 등 2000년대 초반을 휩쓸었던 정형수 작가의 오랜만의 신작이라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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