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故조영래 변호사, 1986년 성고문 사건 변호→전태일 평전 써내…배우 조현철과 인연? [종합]
OSEN 김예솔 기자
발행 2023.03.17 08: 27

故 조영래 변호사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을 감동케 했다. 
16일에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故 조영래 변호사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날 MC들은 게스트들에게 글을 읽고 위로를 받았던 경험이 있냐고 물었다. 현재 아침 프로그램 라디오DJ를 맡고 있는 서경석은 "매일 아침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위로를 받는다"라고 말했다. 김이나는 "인간의 뇌가 50대에 가장 효용성이 좋다는 얘길 봤다. 위로가 되더라"라고 말했고 이에 장현성 역시 "위로가 된다"라고 공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이야기는 1976년 봄, 22살의 순애씨가 누군가를 만나러 가면서 시작됐다. 장도연은 "이 만남이 좀 이상하다. 특이한 조건이 있었다"라고 말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절대 이름을 묻지 않을 것. 만남은 일주일에 2번, 약속시간이 30분 지나면 기다리지 말고 갈 것' 조건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도 독특했다. 순애씨는 "묘지 앞에서 만나는 게 싫었다. 묘지 앞에서 만나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다"라고 말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 묘지 앞에서 만나자는 것. 장현성은 "남자가 원하는 건 딱 하나였다.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는 순애씨에게 업무환경과 일터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순애씨의 직장은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이었다. 장현성은 "당시에 닭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라고 말했다. 순애씨는 하루종일 미싱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순애씨는 어느 순간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자는 양복을 입고 나와 자수를 하러 간다고 말했다고 회상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 남자는 조영래라는 이름을 가진 변호사였다. 그는 당시 변호사가 되기 전이었고 유신 반대 운동을 하면서 주동자로 몰려 도피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무덤 앞에서 그를 만났던 순애씨를 빵집에서 만났다고 말했고 의사에게 순애씨를 진찰하게 했다. 
당시 순애씨는 결핵을 앓고 있었지만 병원을 가지 못했던 상황. 순애씨는 "당시 월급이 3,4천원이었는데 엑스레이가 7천원이었다. 하지만 나는 돈 한 푼 내지 않았다. 조변호사님 덕분에 매일 주사를 맞고 지금도 이렇게 살아 있다. 너무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조영래 변호사는 수배중이었지만 검거 위험 속에서도 순애씨를 만났다. 전태일 열사 때문이었던 것. 전태일 열사가 분신을 했던 당시 조영래 변호사는 산 속에서 홀로 공부중이었다. 소식을 들은 조영래 변호사는 책을 덮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 열사가 살아 있을 당시 노동법을 제대로 읽지 못해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던 것을 들었다. 이후 조영래 변호사는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친구가 되기로 결심하고 전태일 열사의 삶을 평전으로 써냈다. 하지만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원고가 완성돼도 출간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조영래 변호사는 가명을 써서 바다건너 일본에서 출간했다. 하지만 조영래 변호사는 책이 출간될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순애씨는 라디오를 통해 조영래 변호사의 사망을 알게 됐다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조영래 변호사는 43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순애씨는 "나를 돌봐주셨는데 본인은 돌보지 않으신 것 같아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다"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이날 故 조영래 변호사가 변호했던 1986년 부천 성고문 사건의 진실이 전해졌으며 故 조영래 변호사는 가수 매드클라운과 'D.P'의 배우 조현철의 큰아버지로 알려졌다. 
 /hoisoly@osen.co.kr
[사진 :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캡쳐]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