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장동윤 “왐마, 거서 자뿌냐...신성일되기 힘들고만”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3.03.22 13: 33

[OSEN=김재동 객원기자] “이 시상에 자기 일 좋아서 하는 사람 몇이나 되겄냐? 다 견디면서 하는 거지... 영화?.. 대학?.. 이 사회가 나 같은 전과자를, 그것도 살인자를 받아줄 것 같냐?.. 이미 이 영화판서 이두학 이름 모르는 사람 벨로 없을 것이고, 너까지 엮이면 손가락질 받을 것이여. 그게 내 현실여. 알겄냐? 그러니까 그만 가 야.”
그는 달동네 낮은 담장 너머로 서울의 밤을 내려다보며 속울음 울 듯 자신의 현실을 토로했다. 그런데 대꾸가 없다. 뭐지? 다시 한번 “가라니께”하고 돌아보니 그녀는 평상 위에 곱게 잠들어 있었다.
KBS 2TV 월화드라마 ‘오아시스’는 80~90년대를 관통하는 묵직한 시대극이다. 다행스런 것은 마냥 묵직해 짓누르기만 하는 것이 아닌 곳곳에 장치된 유머코드로 해방감도 선사한다.

오정신(설인아 분)은 요양원의 엄마를 통해 작고한 아버지가 교도소의 이두학(장동윤)을 면회 간 사실을 전해 듣고 자신을 밀어낸 두학의 심경을 헤아린다. 또한 변사장에게 납치된 자신을 구출한 최철웅(추영우 분)의 입을 통해, 두학이 자신의 구출을 호소했으며 언제나 자신 주변을 맴돌고 있었음도 확인했다.
두학의 뒤를 밟아 집까지 쳐들어온 정신은 그런 두학을 다그친다. “깡패 때려치고 나한테 와. 와서 영화 일도 돕고, 대학도 다니고.. 나 그정돈 돼.” 두학이 어렵사리 항변한다. “너는 나가 고로코롬 불쌍허냐?” “어, 불쌍해. 미안하기도 하고.” 왈칵 화도 내본다. “나가 너를 찬 것이여!”
그런데 정신은 멜로를 개그로 받는다. “너만 행복하면 난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그런 순정멜로야? 야 멋지네.” 박수까지 치더니 “개풀 뜯어먹는 소리 하네.”라 폄훼까지 한다.
하지만 예서 말 순 없는 일, 컨셉을 이어간다. “난 이미 깡패고 고렇게 살다 갈 운명여.” 이번엔 제대로 받는다. “너 아직도 내 옆에 있고 싶어 하잖아. 그니까 이 바닥에서 나와. 내가 니 옆에 있어주겠다고. 제발 여기서 나와. 두학아!”
그런 정신을 마주볼 수 없어 서울의 밤을 내려다보며 그럴 수 없는 현실을 간곡히 설득했다. 그런데 정신은 듣지 못했다. 잠이 들었다. ‘나 혼자 영화 찍은 거?’ 머쓱해지는 두학이다.
아버지 최영식(박원상 분)의 기일에 최철웅은 “이 애비 부끄러운 짓 하지 않았다. 행여나 복수할 생각 말고 어머니 잘 모셔라”는 유서를 떠올리며 엄마 강여진(강경헌 분)에게 비장하게 다짐한다. “강해질랍니다. 더 강해져서요. 우리 아버지 그렇게 만든 놈들 그 고통 그대로 갚아줄 겁니다. 내 사람들 더 이상 그런 수모 안 당하게 내가 지킬게요.”
그랬던 철웅은 그 회가 가기 전에 오만옥(진이한 분) 앞에 무릎 꿇는다. 납치된 정신의 소재파악을 거절 당한 후다. “고 회사는 식구의 어려운 처지를 외면합니까?”라며 돌아서는 오만옥의 발길을 잡고는 그 앞에 무릎 꿇으며 “같은 식구 되겄습니다. 한번만 도와주십쇼.” 사정한다.
최철웅은 그에 앞서 부친 장례식에 조문 온 경찰서장을 향해 독설도 퍼부었었다. “애도가 아니라 사죄를 하셔야죠. 후보 사퇴까지 한 분을 부정선거사범으로 잡아다 추궁하니 평생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시던 분이 몇 달동안 폭음만 하다 쓰러지셨지 않습니까!”
독설을 뒤집어쓴 서장이 “용공분자가 된 대학생을 발견 즉시 검거하라는 공문을 받았다”고 비웃으며 경고했을 때 강여진이 버선발로 댓돌을 내려와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철웅은 끝내 만류하지 못했었다.
이두학의 현실이 살인전과자라면 최철웅의 현실은 권력 앞에 무력한 개인이다.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 없는 정의는 무능이다.’는 말처럼 최철웅의 에피소드에는 현대인의 비참하고 부조리한 일면을 드러내는 블랙유머가 담겨있다.
이외 80년대 홍콩 느와르의 정점 ‘영웅본색’에서 의리남 주윤발의 트레이드 마크 성냥개비(이쑤시개)를 영화판 조무래기 양아치 변사장의 입에 물려 패러디한 것도 쓴 웃음을 짓게 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강여진은 황충성(전노민 분)에게 최철웅이 그의 아들이라 강변했다. “오빠와 헤어지고 그렇게 빨리 결혼한 것도..”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하지만 강여진은 석녀였고 철웅은 두학의 친동생였다. 철웅의 할아버지(전국환 분) 당부를 뿌리치지 못해 이중호(김명수 분)가 넘겨준 아이다. 그렇다면 강여진이 석녀란 사실은 결혼 직후 밝혀졌다는 것인데 그 시절에 그럴 수도 있나 싶다.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갈지도 궁금해진다.
어쨌거나 멜로의 여주인공이길 한사코 거부하는 현실주의자 오정신을 비롯, 차금옥(강지은 분)-고문근(안정훈 분), 김길수(송태윤 분))-조선우(안동엽 분), 고풍호(이한위 분)-장장득(정지순 분) 등 유머코드가 살아있는 정통 시대극 ‘오아시스’의 앞으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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