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지금과 같은 팬덤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30여년. 가요 시장에 아이돌 산업이 자리잡으면서 자연스레 정립된 팬덤 문화는 수 세대를 거쳐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비교적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웠던 초기에 비해 시대가 변하면서 점차 나름대로의 규칙과 규율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제는 K-POP 흥행과 더불어 한국의 팬덤 문화 역시 글로벌화 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30여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어긋난 팬심으로 팬덤 문화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이들도 더러 있다.
최근 엑소 세훈은 극성 팬의 엽기적인 행동으로 난데없는 혼전임신 설에 휩싸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산부인과에서 유명 아이돌 멤버를 목격했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산부인과에서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여자친구와 검사를 받으러 왔다고 주장했다. 게시글에는 직접적인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를 본 누리꾼들은 체형 등을 근거로 엑소 세훈을 지목했다.
이에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전혀 근거 없는 허위사실"이라고 즉각 반박했다. SM 측은 "현재 게시글이 삭제된 상황이지만 최초 게시자와 루머 유포자에 관해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강경하게 법적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훈 역시 팬 커뮤니티를 통해 "가만히 있다가 이런 상황이 만들어져서 화가 나지만 여러분들께서 오해조차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직접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인스타그램 상에 엑소 세훈의 여자친구 행세를 하는 익명의 누리꾼이 임신을 암시하는 글을 올린 사실이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여러 차례 세훈의 스케줄 동선을 따라다니며 마치 함께 있었던 양 인증샷을 게재하며 오해를 유도해왔던 인물. 최근에는 웨딩샵에서 얼굴이 가려진 한 남성과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리는가 하면, 임신을 암시하는듯 배가 불러있는 캐릭터의 사진을 게재해 세훈의 '혼전임신설'에 더욱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이 같은 행동이 지속되면서 결국 루머까지 이어지자 세훈은 2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글을 올리고 "며칠 전부터 말도 안 되는 글들이 인터넷에 돌아다녔다"며 "팬 분들도 아시겠지만 몇 년 전부터 제 여자친구라고 사칭하는 여자가 있었다. SNS를 통해서 연인 인 것처럼 게시물을 올리고 글을 썼다. 저도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모르는 여자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 게 여기까지 일이 커졌다. 지금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 사진, 글 다 제가 아니라고 확실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간혹 연예인과 '상상연애'를 하는 팬들이 더러 등장하고 있지만, 이번의 경우 도가 지나쳤다는 반응이다. 세훈의 동선을 따라다니며 '럽스타그램'인척 게시글을 올려 열애설을 유도하는 행동은 더 이상 애정이 아닌, 악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국 참다못한 세훈은 "법적 대응을 할 생각"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반면 황영웅 팬들은 과도한 '잘못감싸기'로 대중의 반발을 사고 있다. 황영웅은 MBN '불타는 트롯맨'에 출연해 강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졌지만, 최종회를 앞두고 학교폭력과 폭행 전과 등의 의혹으로 하차했다. 당초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기회를 달라"며 경연을 이어나갈 의지를 보였지만 시청자들의 질타에 끝내 하차를 택했다.
하지만 이후 황영웅의 팬들은 그의 하차에 크게 반발했다. MBN 측을 향한 강력한 항의는 물론, MBN 사옥 앞에서 "가짜뉴스", "마녀사냥 중단하라"라는 현수막을 들고 '황영웅 복귀'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팬카페 회장은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전국투어 팬미팅을 기획 중"이라고 밝혀 논란을 야기하는가 하면, MBC '실화탐사대'에서 황영웅 학폭 논란을 다룰 것을 예고하자 일부 팬들은 '실화탐사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달려가 악성글로 도배하는 테러를 저지르기도 했다. 개중에는 제보자의 신상정보를 요구하며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까지 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입장문에서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폭행으로 인한 전과가 있다는 것은 제작진 역시도 인정한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것을 "가짜뉴스"라 몰아가며 황영웅의 억울함만을 내세우거나, 시위와 게시판 도배같은 집단 행위를 하는 것은 오히려 황영웅을 더욱 욕먹이는 일이 아닐까.
실제로 팬들의 이런 행동때문에 하차 후 자숙기간을 갖던 황영웅은 '불타는 트롯맨'이 종영한지 3주가 넘도록 여전히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팬들이 침묵했더라면 조금이나마 수그러들었을 여론도 잊을만 하면 던져지는 땔감에 불씨가 꺼질 일 없이 활활 불타오르는 중이다. 진심으로 황영웅의 재기를 바라는 팬이라면 하지 않았어야 할, 제 얼굴에 침뱉기나 다름없는 행동인 셈이다.

이밖에도 아이돌 시장에서 고질병처럼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사생 문제는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연예인의 집앞에 우르르 몰려가 진을 치던 1세대 시절에 비한다면 그 수가 줄어들었으며, 엄연히 이 행동이 '범죄'라는 인식 또한 확실히 자리잡혔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이같은 범죄행위가 더 지능화되고, 범위 또한 넓어졌다는 것이 문제다. 최근에는 3년간 방탄소년단(BTS) RM의 승차권 정보를 무단으로 열람한 한국철도공사 직원이 해임되는 사례가 있었다. 이제는 연예인들의 개인정보에까지 손을 뻗는 행위는 더이상 '팬심'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는 수준이다. 이밖에도 행사장에서의 '무개념 행동'이나 과도한 타 연예인 깎아내리기 등과 같은 어긋난 팬심은 온라인 상에서 숨쉬듯 볼 수 있는 광경일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을 감싸고 도는 행위로 논란을 배로 키운 사례는 손에 꼽을수도 없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좋아한다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쳐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아무리 좋아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지라도, 그 대상이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연예인 본인이든 제 3자이든 엄연히 피해자가 존재하는 이상 결코 정당화 돼서는 안 된다.
팬은 연예인의 얼굴이라고도 한다. 팬 한명 한명의 행동을 바탕으로 팬덤에 대한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그 이미지가 굳어져서 결국은 대중이 해당 연예인을 평가하는 척도 중 하나로 작용한다. 수많은 팬들이 연예인의 이름이나 공식 팬덤명으로 기부, 봉사 등의 선행활동을 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 때문에 팬이라는 이름을 걸고 어떠한 행동을 할 때에는 결과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위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거치는 과정 또한 필요하다. 애정에서 기반한 행동이 누군가에겐 민폐로 느껴진다면 그건 더 이상 애정이라 할 수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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