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강산이 세 번도 더 변했을 시간에도 굳건하게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는 배우가 있다. '서울의 봄'으로 생애 첫 천만 영화를 만나더니, '사랑한다고 말해줘'를 통해 여전히 멜로가 가능한 연기자임을 입증했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배우 정우성이다.
# '서울의 봄'이 열어준 정우성의 봄
정우성은 2023년의 마무리와 2024년의 시작을 한국 배우 중 누구보다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가 주연으로 열연한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이 '천만 영화'에 등극했기 때문. 영진위 전산망에 따르면 2024년 1월 18일까지 '서울의 봄'은 1283만 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열기가 식지 않아 '감독판'에 대한 염원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이 발생하며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뀐 그 날을 배경으로 삼아 누구보다 치열하게 수도 서울을 지켜내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배우 황정민이 군사 반란을 일으키는 전두광 역으로, 정우성이 이를 막는 수도방위사령군 이태신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12.12 군사반란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아픈 순간을 소재로 한 만큼 이 영화의 흥행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치적 유불리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떠나 누구도 이견이 없는 부분은 배우들의 호연이다. 극의 주연이면서도 빌런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황정민은 물론, 그 옆에서 누구보다 충직한 군인의 표본을 보여주는 정우성 또한 마찬가지다.
# 연기도 생활도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던 스타
정우성이 이처럼 정의롭고 충직한 연기를 보여주는 게 '서울의 봄'이 처음도 아닐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품에서 그의 연기는 한결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헌트'에서 대의를 위해 대통령을 암살하려 했던 정보요원,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 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대통령, 속물이 되기로 마음 먹었지만 결국 진실을 마주해나가는 통렬한 변호사였던 '증인'까지. 전작들에서 쌓아온 배우 정우성이 만든 인물들의 정의감이 '서울의 봄'에서는 한층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그가 데뷔 이래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정우성은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약하며 난민들의 국내 입국을 호소하기도 했고, 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의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최근에는 가수 성시경이 진행하는 유튜브 콘텐츠 '만날텐데'에 게스트로 출연해 영화의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OTT 중심의 시청습관이 자리잡은 가운데 정작 일부 영화인들조차 극장을 찾지 않는 풍토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의 관심 대상이 되는 연예인, 그 것도 정상의 스타에게 말 한 마디는 천금과도 같다. 자칫 소신과 반대되는 대중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해 30년 동안 국내 연예계 최전방에 있던 정우성이 이 같은 다소 엄격한 대중의 시각을 모르지 않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뿐 만이 아니라 작품과, 행동으로 그의 소신을 행동으로 증명해왔다.
적어도 언행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는 누구보다 대중 앞에 솔직했다. 스타의 화려한 유명세 뒤로 숨지 않는 그의 모습은 다수의 작품 속 정의로운 주인공과 맞아 떨어졌다. 정의감은 과감한 행동에서 더욱 극대화되는 바. 이러한 일상 속 정우성의 행동력이 알려져 있었기에 '서울의 봄'에서 홀로 공수부대를 막아서고, 철조망 바리케이드를 넘어 전두광에게 돌진하던 이태신의 명장면들도 한층 더 설득력 있게 전달될 수 있었다.
# 여전히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면 하는 멜로 원탑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이어지는 배우 손예진의 소주잔 원샷까지.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여전히 정우성의 멜로를 대표하는 명작이다. 이제는 한국 영화계 멜로 장르의 고전격에 들만한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뒤로 하고, 정우성은 최근 종영한 ENA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를 통해 여전히 멜로가 가능한 배우임을 증명했다.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정우성은 청각장애를 가진 화가 차진우를 맡아 남자주인공으로 활약했다. 말이 아닌 눈빛과 손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캐릭터의 특성상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한층 조심스럽고 섬세한 연기와 감정선을 요구했다. 마음으로 듣는 소리 없는 사랑이라는 작품의 메시지는 일면 불가능해보이기까지 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차진우는 이를 해냈다. 제목처럼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면 하는,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은 남녀간 애절한 로맨스를 보여주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남자들도 인정하는 '미남 배우' 정우성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층 더 주효했던 것은 말로 표현 못할 감정이라는 무형의 매개체를 정우성은 상대 배우인 신현빈과의 호흡, 리액션을 통해 전달했다. 적어도 '사랑한다고 말해줘' 속 사랑은 말이라는 표현 수단 대신 애틋한 상황과 설정들에 맞춰 이입하게 했고, 나아가 남녀라는 성별과 인물들의 나이 차이 등을 뛰어넘어 인간 대 인간이라는 보편적 인류애에 기반한 로맨스로 감동을 선사했다.
1994년부터 2024년, 30년의 시간을 지나 정우성은 어떠한 수식어가 필요 없는 톱스타이자 배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타이틀을 추가하는 행보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번엔 '서울의 봄'으로 '천만 배우', '사랑한다고 말해줘'로 다시 한번 멜로 장인으로 불린 그가 다음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30년을 들여다본, 이제는 뻔할 수 있는 잘생긴 얼굴마저 "늘 새로워, 짜릿해"라는 '밈'으로 일찌감치 승화한 정우성이기에 예측은 불허한다. / monami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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