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영준이 ‘경성크리처’를 끝마친 소감과, 작품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19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경성크리처’에서 가토 중좌 역을 맡은 배우 최영준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편집본을 전혀 보지 않은 상태에서 ‘경성크리처’ 공개 직후 시청자의 입장에서 봤다는 그는 “재밌었다”고 만족감을 전했다.
‘경성크리처’는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1945년의 봄, 생존이 전부였던 두 청춘이 탐욕 위에 탄생한 괴물과 맞서는 크리처 스릴러. 작중 옹성병원에서 생체실험을 이끄는 가토 중좌 역으로 분했던 최영준은, 전작과는 또 다른 얼굴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캐릭터를 위해 15kg을 감량, ‘경성크리처’를 촬영하는 10개월 내내 57kg을 유지하는 열정을 보였다.
최영준은 “촬영하러 가서 점심을 식당에서 먹고 집에 와서 굶었다. 처음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오자마자 다음날인가, 다다음날 쯤 ‘경성크리처’ 첫 촬영을 갔다. 그때는 일부러 평소보다 증량했을 때니까 72kg 정도였다. 그런데 감독님이 첫 편집본을 보시고 ‘너무 많이 부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아닌 것 같다’고 전화를 하셨다. 설 명절이었는데, 명절에 전화할 정도면 급한 거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날로 제가 꼬박 8일을 안 먹었다. 원래 그렇게 살을 빼긴 한다. 보통 2, 3일 정도 디톡스한다 생각하고 안 먹는데, 그때는 급하니까 한 8일 굶었더니 그다음부터 그렇게 쭉쭉 빠지더라”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가토 역으로 출연을 제안 받았다는 그는 “작가님, 감독님한테 이유를 물었더니 착해 보이기도 하고 나빠 보이기도 하고,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 제일 컸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다만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당시의 일본군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고민이 따를 수도 있었을 터. 하지만 최영준은 “그런 고민은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가토는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최영준은 “이 사람은 자기 일에 미쳐있는 상황이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피해가 발생 될 뿐이지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며 “시대적인 부분도 상관없었던 게, 가토가 체제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연기하려고 했다. 그렇다 보니 그런 부담은 없었다. 욕을 먹는 거야 그다음 일이지 연기하면서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그런 부담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동윤 감독과 강은경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일본 내 한류 진출의 영향으로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줄어들었으며, 이 때문에 캐스팅에도 어려움이 있음을 전했던 바 있다. 이에 대해서도 최영준은 “제가 그걸 걱정하고 연기하기엔 나이가 많다. 저도 작품을 많이 했고, 그간 크든 작든 저한테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던 순간도 있었다. 저는 어쨌든 연기를 하는 사람이지, 뭘 노리고 그렇게 사는 때는 지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해봤다. 그렇게 살아보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연기를 하는 건 거기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한류 진출에 대한 생각이나 고민은 전혀 없었음을 밝혔다.
다만 일본인 캐릭터인 만큼 일본어로 연기를 해야한다는 점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랐다. 최영준은 “외국어로 연기하는 게 손발을 묶어놓고 연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제가 일본인이 아니니까 손짓 같은 것도 일본인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어려웠다”며 “6부까지 대본을 받아놓고 제주도에서 화상으로 처음부터 차근차근 수업을 할 때였다. 분명 나는 들리는 대로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지적을 하니까 지치더라. ‘너무 미안한데 한 바퀴 뛰고 오겠다’하고 30분동안 다른 생각을 하면서 앉아있다가 다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다시는 외국어 연기를 안 해야지’ 싶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최영준은 가토가 채옥(한소희 분)에게 어머니인 성심(강말금 분)이 크리처의 정체라는 것을 밝히는 장면에 대해 “가토로서는 아니었지만 배우로서는 엄청 통쾌했다”고 전했다. 그는 “제가 항상 하고 싶었던 게, 가책을 받지 않는 사람의 연기였다. 이를테면 죽이지 말아야 될 존재를 살해하거나 하면 보통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저는 그게 양심이라고 본다. ‘미친 사람이니까 이렇게 하지’라고 하는데, 미친 사람이 아닌 사람도 이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가토가 그랬던 것 같다. 미쳐서 그런 게 아니라, 이성적인 상태에서 그 얘기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통쾌했고, 재밌게 연기했다”며 “저는 누구를 죽이고 한 적 없다. 소동물 좋아하고, 강아지도 키우고 있다”고 강조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가토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감독님이 하라는 걸 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고 설명했다. 가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만큼 정동윤 감독과 대화를 많이 나눴지만,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가토는 어려운 캐릭터였다. 최영준은 “감독님도 이 역할에 대해 고민 많았다. 한번은 저한테 장문의 문자를 보내신 적이 있다. 다 읽고 ‘그래서 어떡하라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작품이나 연극을 하면서 디렉션을 많이 듣는데, 그런 디렉션은 처음 들어봤다. ‘인셉션의 팽이처럼 연기해달라’고 하시더라. 그게 무슨 의미일지 엄청나게 생각했다”고 고민의 시간들을 전했다.
지금도 그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털어놓은 그는 “그다음 촬영을 갔을 때 감독님도 미안하다고 하시더라. 어쨌든 서로 알 수 없는 그런 걸 해보려고 애를 많이 썼다”고 노고를 밝혔다. 다만 나름의 해석으로는 ‘모순점’에 주목했다고. 최영준은 “저한테는 건강하지 않은데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분명 큰 의지가 없어 보이는데 엄청나게 의지가 있는 사람. 그 팽이가 분명 멈춰야 하는데 멈추지 않고 계속 돌지 않나.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많이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보고 얘기 듣고 의견을 내기 전까지 생각할 때 고개 각도에만 변화를 줬다”고 연기할 때 중점을 둔 포인트를 짚었다.
크리처와의 연기 비하인드도 밝혔다. 최영준은 “CG와 연기하는 게 진짜 힘들더라. (스태프가) 큰 다리를 끼우고 크로마키 색깔의 옷을 입고 연기한다. ‘왼쪽’ 하면 왼쪽으로 가고, 우리도 왼쪽으로 따라가는 식이었다. 다 찍고 나면 현타 오더라. 그래도 재밌는 경험이었다”며 “제 시선을 먼저 찍고 나중에 크리처를 그려 넣은 장면도 있다. 그럴 때는 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고 어떤 모양새인지 모르니 어디를 중점적으로 봐야할 지 모르겠더라. 그렇게 계속 상상을 하는 게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성크리처’는 최영준에게 있어 많은 도전이 따랐던 작품이었다. 그는 이미지 변신을 염두에 두고 ‘경성크리처’ 출연을 결심했냐는 질문에 “저한테 연기력은 스펙트럼 그 자체다.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는 게 연기력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기회가 되면 (이미지 변신을) 하게 되는 거라 생각하고 선택했지만, 노림수를 가지고 한 건 아니다. 언젠가 하게 될게 조금 빨리 왔다는 생각도 했다. 또 다른 걸 하게 되는 게 재밌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빈센조’, ‘우리들의 블루스’ 등 그간 여러 작품이 흥행을 거두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는 작품을 고르는 기준을 묻자 “솔직히 저는 일단 ‘필요하면 가자’ 주의다. 감독님, 작가님이 필요하다고 하면 무조건 간다는 마음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가 정말 간절히 하고 싶었고, ‘빈센조’까지는 오디션을 봤다”며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간다. ‘내가 할 일이 있으니까 부르겠지’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가서 보니 잘된 작품이 있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자신의 대표작이 ‘우리들의 블루스’라고 꼽았던 그는 현재 대표작을 묻자 “한 해에 하나씩은 해야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경성크리처’”라며 웃었다. ‘경성크리처’를 마친 최영준은 이미 차기작을 촬영 중이며 공개를 기다리고 있는 작품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경성크리처’를 촬영하고 있을 때쯤 영화가 하나 들어왔다. 첫 영화였다. ‘첫 영화인데 해야지’ 하고 오케이 했다. 그러고 촬영하는데 영어 대사가 있더라. 심지어 대중 앞에서 스피치 하는 장면이었다. ‘내가 미친놈이구나. 기억상실증 환자도 아니고 알면서 힘든걸 하는구나’ 싶었다”고 차기작에 얽힌 에피소드를 밝혀 웃음을 안겼다.
마지막으로 2024년 목표를 묻자 최영준은 “큰 목표까진 아니고 작년만큼 올해도 일했으면 좋겠다. ‘경성크리처’가 나오고 나서도 생각했는데, 드라마의 성패도 중요 하지만 저의 연기에 대한 것도 중요하더라. 한걸음 잘 간 건지 아닌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하니까 ‘평생 그런 불편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냐. 일이니까. 2024년이 ‘경성크리처’면 내년엔 또 다른 대표작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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