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25, 소노)이 차세대 에이스로 존재감을 마음껏 드러냈다.
안준호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은 22일 호주 벤디고에서 열린 ‘FIBA 아시아컵 2025 A조 예선 1차전’에서 홈팀 호주에 71-85로 역전패를 당했다. 첫 경기서 패한 한국은 25일 오후 3시 원주에서 태국을 맞아 첫 승에 도전한다.
비록 패했지만 경기 내용은 인상적이었다. 한국은 초반부터 호주와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 2쿼터 초반까지 한국이 33-22로 11점을 앞섰다. 한국이 57-53으로 앞서며 3쿼터를 마쳤다. 한국은 종료 4분 57초를 남기고 65-64로 앞서 승기를 잡는가 싶었다. 이후 한국이 6점에 묶인 사이 호주에 무려 21점을 내주면서 무너졌다.
NBA스타들이 모두 빠졌지만 호주프로리그(NBL) 주전들로 구성된 호주는 만만치 않은 상대다. 신체조건과 힘에서 한국에 앞섰다. 주전가드 미첼 맥캐론(32, 189cm)과 데얀 바실제비치(27, 187cm)도 사이즈가 좋았다.
한국이 원정경기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색깔의 농구를 보여줬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 신호다. 그 중심에 이정현이 있었다. 그간 대표팀 리더를 맡아온 김선형과 이대성이 빠진 상황에서 허훈마저 다쳤다. 최고참 라건아와 김종규는 빅맨이다. 가드라인에서 이정현이 팀 전체를 잘 잡아줬다.
올 시즌 KBL에서 한국최고가드로 올라선 이정현이다. 경기당 21.5점(국내 1위), 6.7어시스트(전체 2위), 경기당 3점슛 2.8개(전체 1위)로 최고의 공격형 가드로 올라섰다. 무엇보다 아직도 ‘가드는 패스 먼저’라는 올드한 마인드의 프로농구판에서 이정현 혼자 트렌디한 농구를 하고 있다.
이정현의 농구는 국가대표팀에서도 그대로 발휘됐다. 출발부터 아주 좋았다.
호주 장신들을 상대로 처음 경기하지만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한국의 첫 득점을 이정현이 과감한 3점슛으로 장식했다. 다음에 기회가 주어지자 곧바로 먼 거리에서 3점슛을 쐈다. 들어가지 않았지만 ‘내 플레이가 맞다’는 확신의 슛이었다.
187cm의 이정현과 186cm의 변준형이 백코트를 구성하면서 사이즈와 운동능력에서 한국이 충분히 해볼만했다. 두 선수의 에너지와 활동량은 수비에서도 큰 도움이 됐다. 이정현이 상대 패싱레인을 잃고 앞선에서 스틸을 해내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호주 백코트를 상대로 이렇게 잘했던 한국 가드가 있었을까. 골밑에서는 하윤기가 힘을 냈다. 203cm의 신장에 운동능력까지 겸비한 하윤기가 호주와 경합했다. 국가대표팀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호주전에서 이정현은 24분 42초를 뛰면서 9점, 4어시스트, 3스틸로 대활약했다. 한국이 결과적으로 14점을 졌다. 막판 이정현이 허벅지 부상으로 뛰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었다.
호주전을 통해 이정현은 ‘국제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충분한 자신감을 얻었다. 아시안게임에서 제대로 뛰지 못했던 한을 풀었다. 이 선수를 왜 대표팀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는지 아쉬울 정도다.
NBA에서는 기량이 곧 서열이다. ‘난 어린 선수니까 겸손해야 한다’, ‘형들이 있으니까 난 조연이다’라는 한국식 마인드는 적어도 코트 안에서 버려야 한다. 이정현은 이제 대표팀에서도 기량으로 모두를 통솔할 수 있는 에이스가 됐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