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재동 객원기자] 이것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처럼 생뚱맞다.
믿을 수 없을만큼 추상적이지만 뼛속까지 현실적이어서
진실이 매수당한 증인처럼 침묵하는 동안
가차없이 서로의 심장을 꿰뚫어 버린다.
이것의 이름은 오해다.
tvN 토일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은 오해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엔 ‘매혹’을 차용했지만 극중 대사에선 ‘미혹’으로 표현됐다. 사전적으로는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함’ 혹은 ‘정신이 헷갈리어 갈팡질팡 헤맴’을 의미하지만 드라마의 서사가 풀어낸 정확한 의미는 오해다.
먼저 선대왕 이선(최대훈 분)은 이복동생 이인(조정석 분)을 오해했다. 이선 눈에 이인은 청나라의 힘을 빌어 자신을 도모하고 용상을 차지하려는 역도로 보였다.
이인이 “저는 형님을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자결은 불가하옵니다. 형님께서 직접 죽여주시옵소서!”라며 목숨 걸고 진실을 말했을 때 “소원이 정 그렇다면 내 손으로 직접 네 숨통을 끊어주마!”며 칼을 치켜 들었었다.
강희수(신세경 분)도 이인을 오해했다. 백성에 대한 연민과 올곧은 의기에 반해 순정을 바쳤지만 결국 믿었던 이들을 배신하고 간악한 술수로 세상을 속여 보위에 오른 모리배로 보였다.
그 마수로부터 선대왕의 원자 문성대군(홍준우 분)을 보호하고 끝내 이인을 용상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기대령이 되어 궁에 들었다.
왕대비 박씨(장영남 분)와 이인의 외숙 박종환(이규회 분)도 각각의 아들과 조카인 이인을 오해했다. 진한대군일 때야 엄두를 못냈을 지라도 일단 보위에 오르고 나면 만인지상의 권력에 능히 취할 것이라고 믿었다.
선왕의 독살을 묻고 문성대군의 외숙 김종배(조성하 분)를 직접 참하며 용상에 올랐을 때도 그랬고, 문성대군을 양자로 입적, 세자에 올린 이유를 민심수습 후 폐세자 시킬 목적이라 밝혔을 때도 권도(權道)에 능한 권력욕의 화신으로 믿었다.
이인을 겨눴다가 불쑥 뛰어든 강희수를 찌르고 만 추달하(나현우 분)에게도 이인은 자신을 청나라에 팔아먹은 세작이며, 스승같은 강항순(손현주 분)을 사지로 몰아넣은 장본인일뿐 아니라 연인 홍장(한동희 분)의 원수일 뿐이었다.
동상궁(박예영 분)도 오해했다. 선대왕의 고명을 같이 들은 순간부터 이인과는 운명적 동지라 믿었다. 대전 지밀상궁의 자리에서 기다리다 보면 나인 시절부터 품은 이인에 대한 연정을 마침내 이룰 기회가 오리라 믿었다.
그 중 이선이 오해를 풀고 죽었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인의 품에서 “나를 해한 자를 직접 벌하고 원자를 보위에 올려라”는 고명을 남기면서 “내 아우 인아!”라 덧붙인 것으로 보아 마침내 미망에서 벗어나 형제애를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강희수도 오해를 풀었다. “네가 행한 모든 일이 내가 뜻한 바였다”는 이인의 해명을 받아들였다. 자신을 향한 이인의 사무치는 연정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추달하의 칼을 대신 맞았고 이인이 “나는 죽는 날까지 임금이고 막중한 임무를 내려놓을 수 없다. 하여 너에게 또다시 고통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곁에 있겠느냐?” 물었을 때 “소신 어떠한 고통이든 감수하겠습니다. 전하의 곁에 있겠습니다.”고 답할 수 있었다.
왕대비와 박종환도 이인의 진의를 알아차렸다. 내명부를 외면하고 문성대군을 세자로 올린 것이 어떤 의미인 지를. 특히 박종환은 선대왕 이선을 독살하면서까지 이인을 보위에 올린 공을 원수로 갚겠다는 이인의 행태에 분노하며 생질 이인조차 제거할 결심을 굳힌다.
추달하 역시 오해는 오해대로 푼 모양으로 홍장의 원수임은 분명한 이인의 계획에 동조하기로 한다. 어차피 홍장 없는 세상 더 살 의욕을 잃은 차다.
동상궁도 알았다. 이인이 자신의 남자가 될 수 없음을. 자신의 오랜 연정은 남장 여인 기대령으로 인해 외면당했다. 그 야속한 님을 위해 연지를 바른다. 박종환이 건네준 독이 든 연지를.
이렇듯 모든 이들의 오해를 산 이인도 오해했다. 떠돌이 내기 바둑꾼 강몽우가, 자신의 망형지우 강몽우가 여자이고 강몽우를 향한 자신의 정체모를 감정이 사실은 여인을 향한 연정이었음을 진즉 알아차렸어도 거짓고변 파동으로 추국장에 끌려온 강몽우를 외면했을까?
아무리 이선의 고명을 왜곡하고 김종배의 피를 보며 보위에 오른 중차대한 시점이라도, 강몽우가 여인임을 알았다면, 자신이 연모함을 알았다면, 차라리 무리해서라도 유현보(양경원 분)를 살인멸구하지 않았을까?
강희수는 추달하에게 이인의 시해를 명한 후 자근년(송상은 분)에 기대 눈물을 흘렸다. “난 이미 3년 전에 죽었고 더 이상 잃을 것도 무서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어. 근데 아직 남아 있었나 봐. 강희수로 살고 싶은 마음이, 주상을 믿고 싶은 마음이..”
사람의 머릿속은 뜻밖에 가지런하지 않다. 그에 비해 심장은 제법 믿을만 하다. 더러 머리보다 가슴의 이끎이 옳을 수 있다.
대단원을 앞두고 속속 오해, 혹은 미혹에서 깨어나는 등장인물들이 남은 2회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어 갈 지 여전히 궁금하다. 마침내 오해의 굴레를 벗은 이인과 강희수의 연정은 해피 엔딩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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