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 송 감독 “‘패스트 라이브즈’, 로맨스 영화 NO…인생에 관한 이야기” (종합)[인터뷰]
OSEN 유수연 기자
발행 2024.02.29 13: 43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이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를 전했다.
29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셀린 송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과 ‘해성’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 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날 셀린 송 감독은 “오스카 노미네이트가 된 다음에, 해외 활동을 하고 한국에 짧게 오게 되어서 조금 섭섭하다. 며칠 동안 기자님과 대화하고, ‘패스트 라이브즈’ 개봉을 위한 서포트를 위해 왔는데 조금 더 있기를 바랐다”라며 내한 소감을 전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계 캐다나인 셀린 송이 감독 및 각본을 맡은 첫 번째 연출작으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부문 후보로 오르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 같은 성과를 예상했냐는 질문에 셀린 송은 “제가 연극을 10년 넘게 했었다. 연극을 하면서는 연극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도 그랬다. 뭐 어때, 해 봐야지 했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에 대해 “어느 날 밤, 뉴욕에서 바에서 한국에서 놀러 온 어린 시절 친구와 뉴욕에 사는 미국인 남편과의 대화를 제가 통역을 해주었다. 그 두 사이를 해석해 주며 느낀 점이, 우리 세 명은 정말 보통의 사람이지만,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제가 두 사람의 다리와 포털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두 언어와 문화뿐만이 아닌 제 역사와 정체성을 넘나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과거, 현재, 미래와 함께 있다는 생각이 남아 그때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후 시나리오를 쓰게 되면서 이야기를 푸는 것 자체를 로맨스로 풀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셀린 송은 “영화에 대한 어떤 성과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다만 생각한 것은, 관객과의 대화라고 생각했다. 그 대화의 주제는 그날 밤, 과거 내 어린 시절의 모습만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과 술을 마시며 이런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을 너도 느껴본 적이 있냐? 라는 질문을 남기고 싶었다. 당연히 뉴요커도 그렇지만, 전 세계적인 사람들이 제게 ‘인연을 나도 느껴봤다’ 등의 대답을 해주셔서 이런 성과가 이루어진 것 같다”라고 전했다.
시상식에서 만난 거장 감독들과의 일화도 들을 수 있었다. 셀린 송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란, 기예르모 델 토로 등 할리우드 거장들과 만남을 언급하며 "오스카 시상식이나 이런저런 이벤트에 다니면서 그분들과 함께 방에 많이 있었다. 서로 소개하며 대화하며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그때 감독님들이 ‘네 영화를 봤다’고 하면 ‘보셨다고요?’하고 대화를 했다"라며 "언제나 그분들은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중요한 건, 결국 영화 자체다’라고 하더라. 기예르모 감독도 '우리가 옷도 차려입고, 시상식도 참석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영화 자체다. 영화가 관객을 위해 어떻게 만들었냐가 중요하다'고 말하시더라"라고 떠올렸다.
그는 “사실 이 영화 자체를 로맨스로 푼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제 생각은, 이 영화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과 연애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과 말을 섞어도, 그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지는 않다. 삶에 대한 이야기지, 연애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로맨스이지만 우리 인생에 담겨 있는 로맨틱한 이야기일 뿐이지, 로맨스 장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부연했다.
극 중 나영(그래타 리 분)과 그의 남편 아서(존 마가로 분)가 그려낸 장면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극 중 남편과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진짜 제 남편과 제 이야기는 아니지만, 모국어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라며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서로의 다른 점을 더 느끼게 되고, 그 점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오랜 관계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 생각에, 서로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배우고 싶어 한단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서 연기를 한 존 배우의 부인이 코리안-아메리칸이다. 저는 잘 모르고 캐스팅했는데, 왜 저렇게 캐릭터를 깊게 이해했는지, 이 캐릭터를 원하고 사랑한 지를 캐스팅한 다음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어를 좀 할 줄 알더라. 알다시피 아서는 한국말을 잘못하지 않나. 근데 발음이 좋은 거다. 존이 저에게 물어봤다. ‘내가 더 한국어 잘할 수. 있다. 더 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이 영화는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 노력하는 사람의 영화라, 더 못하는 게 중요하다’고 해서 더 열심히 하지 않았다”라고 비하인드를 전하기도.
또한 셀린 송 감독은 “그렇기 때문에 아서와 해성이가 처음 만났을 때, 아서는 해성에게 한국말로 ‘안녕’이라고 하고, 해성이는 잘하지 못하는 영어로 ‘안녕’이라고 한다.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하다. 서로에게 약한 부분, 부족한 부분으로 먼저 발자국을 내딛는 관계성이 정말 감동적이다. 아서와 노라의 관계가 그 안에도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배우고 노력하는 것 아닌가. 관계에 있어 노력하는 부분은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셀린 송은 12년 만에 두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설정에 대해서는 “7년은 조금 짧고, 20년은 너무 길어서. 그리고 숫자가 예쁘다”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작품 내 '인연'이라는 키워드를 녹여낸 이유에 대해 "모티브 자체는, 제가 한국에서 12년을 살았기 때문에, 항상 인연이라는 단어를 알고, 쓰고 있었다. 저는 그리고 한국 예능도 본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니어스 게임’, ‘신서유기’, 최근에는 ‘크라임씬 리턴즈’도 봤다. 요즘 바빠서 아직 다 보지 못했으니, 스포일러는 하시면 안 된다. 누가 살인자인지 아직 모른다"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인연이라는 컨셉은 매 일상에 있고, 또 그 단어를 알고 있어서 제 삶은 더 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그 단어를 영화에서 쓰기로 한 이유는, 사실 이 영화는 미스터리다. 세 사람은 누구인가가 첫 장면의 질문인데, 그 대답 자체가 질문보다 미스터리하다. 그 대답은 ‘인연’이라는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해성과 나영이는 전 남자 친구, 전 여자 친구도 아니고, 첫사랑이라기엔 손잡은 일밖에 없고, 친구라기엔 친하지 않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서로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 이 관계를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해서는 ‘인연’밖에 없는 것 같더라. 아서와 해성도 그렇다. 적도, 친구도 아니다. 그 두 사람도 인연이고, 서로도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당연히 이 영화는 미국에서 만든 영화이고, 한국인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기에, 인연이라는 단어를 설명했어야 했다. 제 생각에 어디든지, 보편적인 부분은 삶에서 지나친 것이 있다면 ‘인연’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단지 그 단어를 모를 뿐”이라고 말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과의 비하인드도 전했다. 셀린 송은 유태오 캐스팅 비하인드에 대해 “오디션 테이프를 보내주실 때는, 곧장 ‘이 사람이다’를 알지 못했다. 테이프는 배우 나름의 해석 연기라, 저는 그것만 보고 캐스팅하지는 않았다. 콜백을 해서 직접 만나 대화하고 알아보는 과정을 했는데, 30명 중 유태오 배우는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렇게 만났는데, 유 배우가 가지고 있는 부분은 들어오자마자, ‘이 사람 맞는 것 같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유는, 유태오 안에 어른과 어린아이가 함께 있었다. 이 영화에서 해성에게는 그 이미지가 중요했다. 어떻게 보면 어른 같고, 어린아이 같은 모순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에, 중요했다. 오자마자 저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웃는데, 정말 어린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며 ‘맞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이가 거의 40살이었는데”라고 웃으며 “다른 점에서 느낀 것은, 유태오 배우는 얼굴이 굉장히 솔직하다. 전광판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조금의 마음도 드러나는 것이 좋았다. 오디션을 3시간 반 정도를 봤는데,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은, 이 사람이 나랑 벼랑 끝까지 갈 수 있는 배우인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계속 부탁을 하다 보니 3시간 반 정도 지난 것 같다”라고 떠올렸다.
또한 “그레타 리 배우도 3시간 정도 오디션을 보았다. 유태오 배우와 비슷하게, 그레타 리도 굉장히 전문적이고, 어른스럽다. 아이가 둘이 있는데, 농담하면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있더라. 그 부분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정말 좋은 배우다. 연기도 너무 잘한다”라고 칭찬했다.
'패스트 라이브즈'가 연극이 아닌, 영화여야만 했던 이유도 전했다. 셀린 송 감독은 "이 영화의 이야기 자체가 영화 같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빌런은 24년과 태평양이다. 등장인물에는 빌런이 없다. 그만큼 장소와 시간이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다. 하지만 연극은 장소와 시간이 언제나 바뀔 수 있다. 예를 들어 연극은 불을 빨갛게 조명을 켜고 ‘화성이다’라고 하면 되지만, 영화는 그럴 수 없지 않나. 그래서 영화로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이 작품은 시간과 장소가 이 이야기에 중요했기 때문이다. 장소의 소리, 분위기도 달라야 했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공존할 수 있어야 했다. 어른과 아이의 얼굴이 교차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야기 자체가 영화로 구현되어야 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저는 항상 터닝 포인트가 ‘기생충’이라 생각한다. 제가 이 작품을 집필하고 있을 때, 꼭 이야기를 두 가지 언어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생충’ 전에 나오기 전에 스크립트를 쓰고 있었는데, ‘기생충’이 나오기 전 후로 스크립트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정말 달랐다. 이전에는 ‘자막 때문에 잘 될까?’라고 했는데, ‘기생충’ 이후에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라고 언급하며 "제 생각에, 전 세계에 이민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그 자체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이사도 많이 다니고, 언어와 문화가 바뀌지 않더라도 인생을 바꾸는 일이 많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민자의 이야기가 이민자만의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송 감독은 영화 ‘넘버3’의 감독 송능한의 딸로, 12세에 캐나다에 이민한 후 뉴욕에서 극작가로 활동했던 코리안-아메리칸 2세이다. 그는 "제가 이 영화를 만들러 한국에 왔을 때가 특별히 감명 깊었다. 영화인들과 만나는 것이니까. 특히 같이 일하는 분 중에 저희 아버지를 만나보고, 아버지께 강의를 들었던 분들이 계셨다. 그분들 중에는 당연히 좋아하시고, 존경하는 분들도 있었다.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그분들을 만날 일이 없지 않나. 그분들을 만나게 되어 좋았다"라고 떠올렸다.
더불어 "아빠와 저의 영화 스타일이 너무 다르다. ‘우리 아빠 영화 넘버3를 기대하고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러 오시면 큰일이다’고 생각한다. 너무 다른 영화다"라고 웃으며 "저는 연극을 굉장히 오래 했다.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아빠 작품과 저의 작업물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연극에서 느낀 것을 아빠의 영화를 보며 느꼈다. 모든 게 다 ‘기본’이다. 결국 인간과 인간을 만나는 것이 모든 드라마의 기본"이라고 분석했다.
차기작에 대해서는 “이 순간에는 영화에 푹 빠져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어 할 것 같다. 이번 작품은 정말 재미있었다. 매일 느낀 것이, 저 자신을 알게 되고 있는 과정이라 너무 좋았다. 이걸 계속하고 싶다”라며 “다음 프로젝트는, 아직 만들지 않아서 이야기하기가 좀 그렇다. 다음에 또 이야기하겠다”라고 웃었다.
한편 ‘패스트 라이브즈’는 오는 3월 6일(수) 국내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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