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한국영화 위기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볼 만한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파묘’는 전세대 가족영화라기보다, 감각적이고 강렬한 것을 좇는 2030세대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이번 천만 관객 돌파 성과는 더욱 의미가 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영화 ‘파묘’가 이번 주 천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상영을 시작하자마자 관객들의 호응이 터졌는데, 무려 24일 만에 900만 관객을 모았다.
21일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를 보면 어제(20일)까지 ‘파묘’의 누적 관객수는 952만 2759명. 관객들의 선택으로 개봉 첫날부터 이날까지 기쁨을 누려 온 연출자 장재현 감독을 만나 그간의 심경을 들어봤다.
장재현 감독은 오늘(2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파묘’를 만들 때 이렇게까지 큰 흥행을 하게 될지 생각하지 못 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하기까지 기간이 짧아서 아직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며 “제가 젊다. 앞으로 영화를 더 잘만들어야겠다는 부담이 있다”고 흥행 소감을 밝혔다.
‘파묘’(감독 장재현, 제공배급 ㈜쇼박스, 제작 ㈜쇼박스·㈜파인타운 프로덕션, 공동제작 ㈜엠씨엠씨)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
지난달 22일 개봉한 ‘파묘’는 28일 연속 일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유지했으며 18일 만에 800만, 24일 만에 900만 관객을 모았다. 이에 장 감독은 “투자사, 홍보, 마케팅, 그리고 배우들이 개봉할 때는 다같이 긴장했었는데 요즘엔 다들 분위기가 좋아서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요즘에는 하루하루 웃으면서 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만의 강점이 무엇이냐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저는 (촬영을 할 때나 후반작업을 할 때) 극장에서 본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극장에서 본다는 생각으로 영화작업에 집중을 해왔다”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보면 제 생각이 정확했던 거 같다. 저는 항상 직관적이고 오락적인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결과물이 나오면 저의 첫 다짐이 작용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국 이런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었지 않나 싶다”라고 답했다.
‘천만 감독’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 장재현은 “우리나라에는 천만 감독 프레임이 있는 거 같다.(웃음) 저는 앞으로도 (천만 감독이라는) 생각은 안 하고 싶다. 수치가 무섭다”며 “다음 영화에서 (누적 관객수가) 500만 명이 들면 기자님들이 ‘전작에 비해 500만이라 아쉽다’고 기사를 쓰시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그는 “그래도 요즘에는 제작비가 올라서 손익분기점은 넘어야 한다. 저는 항상 누적 관객수 300~400만 명은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면서 “근데 이제 내려갈 길만 남은 거 같다”고 덧붙여 웃음을 안겼다.
‘파묘’가 극장가를 사로잡으면서 자연스럽게 국내 영화계는 물론 가까운 아시아 국가 관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특히 ‘파묘’는 인도네시아에서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현지 개봉 한국영화 역대 흥행 1위를 차지했다.
한편 국내 영화계에서는 질투 섞인 시선도 나왔다. 2월 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는데, ‘파묘’의 흥행세로 다소 한풀 꺾이게 되자 연출을 맡은 김덕영 감독은 인터뷰 및 SNS를 통해 “또 다시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영화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이 영화를 덮어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장재현 감독은 “저는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희 영화가 사랑을 받다보니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감사하다”며 “‘파묘’는 이데올로기가 있다기보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가진 영화”라고 대응했다.
그러면서 장 감독은 “제가 영화를 만들 때 메시지나 사상을 우선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브 텍스트를 숨기려고 한다”면서 “제가 영화를 만들 때 첫 번째로 생각하는 건 장르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다. 두 번째로는 긴장감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자신이 연출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을 짚었다.
그런가 하면 중국 정부의 방침에 따라 중국에서 한국영화 ‘파묘’가 개봉할 수 없게 되자, 일부 중국 네티즌들은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도둑 관람'했다. 중국어로 된 정확한 자막이 없기 때문에 영화의 스토리 및 캐릭터들의 사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상덕(최민식 분), 영근(유해진 분), 화림(김고은 분), 봉길(이도현 분)이 귀신의 화를 피하기 위해 얼굴과 몸에 축경을 새긴 것을 놓고 “중국에서는 얼굴에 글을 쓰거나 새기는 행위를 매우 모욕적이고 굴욕적인 행위로 여기고 있다. 한국인들이 얼굴에 잘 알지도 못하는 한자를 쓴 게 우스꽝스럽다. 한국인들이 멋있다고 하는 행동을 중국인들이 보면 참 웃기다”고 조롱한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처사다.
장재현 감독은 그러나 “제가 무언가 의도했는데 논란이 된 것이라면 생각해 볼 게 있을 텐데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의도한 건 없었기 때문에 괜찮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처럼 중국 네티즌들이 한국영화 ‘파묘’를 조롱하고 흠집내면서도 몰래 관람하고 있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이다. 이에 장 감독은 “중국에서도 한국영화를 자유롭게 개봉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우리 장르영화를 중국에서도 자유롭게 개봉해서 (중국 관객들에게도) 많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중국영화를 사랑한다”고 대인배의 면모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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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쇼박스, 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