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불단행(禍不單行).’ 작금의 전북 현대를 보노라면 불쑥 떠오르는 사자성어다. 곤혹스러운 지경에서 좀처럼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지난 17일(이하 현지 시각 기준) 펼쳐진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2023-2024시즌 4강 1차전에서 빚어진 결말은 전북을 더욱 궁지에 빠뜨린 양상으로 드러났다.
K리그와 아시아 마당을 호령하던 전북이었다. 아무도 이루지 못했던 5연패(2017~2021년)를 비롯해 9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으며 K리그에 군림하던 제왕이었다. ACL에서도 우승 2회(2006, 2016년)와 준우승 1회(2011년)의 위업을 일궜던, 아시아 클럽 축구의 명가였다.
그러나 지금 그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실종돼 찾을 길이 없다. K리그에서도 ACL에서도 초라한 걸음걸음으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K리그 1 2024시즌에선, 7라운드 현재 10위에 그치고 있다. 한때(5~6라운드) 꼴찌로 전락했을 정도로, 볼품없는 몰골의 나날을 보내는 시즌 초반이다. 지난 6일, 단 페트레스쿠 감독이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사령탑에서 물러나는 사태까지 빚어질 만큼 나락으로 내몰렸다.
ACL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지난 2월에 열린 16강전만 해도 괜찮았다. 포항 스틸러스를 꺾고(1승 1무·3-1) 8강 고지를 밟았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3월에 벌어진 8강전에서, ‘현대가 맞대결’을 펼쳐 패퇴했다(1무 1패·1-2).
울산 HD에 빼앗긴 4강 티켓은 전북에 뼈아픈 일격이 됐다. 자신의 힘으로 개척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가 됐다. ACL보다 더 큰 과실인 2025 FIFA(국제축구연맹) 문디알 데 클루베스(MDC) 출전권을 꿈꿨던 열망이 자칫 물거품처럼 스러질 고비에 맞닥뜨렸다. 거의 손안에 움켜쥐었던 MDC 티켓을 이제 날려 버릴지도 모른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다른 팀 격돌이 어떻게 끝날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곤경에 처했다.
재앙은 번번이 겹쳐 온다. “화는 홀로 다니지 않는다”라는 우리네 속담을 절감하는 상황에 직면한 전북이다. 내로라하는 세계 명문 클럽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MDC 본선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자격권 획득은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찮은 상황으로 흘러가니, 전북으로선 오죽 답답한 심정이랴.
전북, MDC 본선 티켓 쟁취한 울산의 우승 포효를 열망하는 까닭은?
FIFA가 야심 차게 기획해 내년에 선보일 MDC는 세계 클럽 축구의 신지평을 열 대회로 기대된다. 기존의 FIFA 클럽 월드컵이 확대·개편된 무대로서, 진정한 세계 클럽 지존을 가릴 첫 마당이다. 능히, 평천하를 꿈꾸는 전 세계 뭇 강호들의 사자후가 토해질 전장으로 전망된다.
FIFA는 이 같은 창설 취지에 맞춰 문호를 대폭 넓혔다. 각 대륙 연맹 우승 팀만이 출전해 세계 최강을 다투던 클럽 월드컵을 일신해 출전 팀을 7개에서 물경 32개로 크게 늘렸다. 최근 4년간 각 대륙 연맹 클럽 선수권대회 우승 팀을 비롯해 4년 통산 성적에 바탕을 둔 최상위 팀이 출전권을 획득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AFC에 배정된 티켓은 모두 4장이다. 이번 시즌 ACL 4강 1차전이 끝나면서, 3장의 주인공은 확정됐다. 2021시즌 패권을 안은 알힐랄 SFC(사우디아라비아)와 2022시즌 정상에 오른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일본)가 각각 한 장씩을 선점했다. 또, 울산이 이번 시즌 우승과 관계없이 4년간 통산 성적을 바탕으로 한 장을 차지했다. 이로써 남은 마지막 한 장은 이번 시즌 등정을 이룬 클럽에 돌아간다. 만약, 위 세 팀 가운데 한 팀이 우승하면, 통산 성적 차순위 팀이 티켓을 승계한다(표 참조).
이 맥락에서, 전북은 궁지에 빠졌다. 스스로는 티켓의 향방에 전혀 힘을 미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8강전이 끝났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전북엔 어느 정도 희망의 빛이 남아 있었다. 통산 성적에서, 울산에 앞서(80-78점) 2위에 자리해 그나마 가능성이 약간은 더 컸다. 울산이 4강전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떨어지면, 어부지리로 티켓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희망으로 끝났다. 울산은 이번 시즌 J리그의 보루인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물리치고(1-0) MDC 본선 마당을 밟을 수 있는 권리를 쟁취했다.
전북은 이제 알아인(UAE)과 요코하마의 행보를 초조히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행여 두 팀 가운데 한 팀이 등정을 이루고 마지막 한 장 티켓의 주인공으로 자리하면, 비운의 눈물을 흘릴 도리만 남는다.
전북이 우려하는 최악의 변수는 알아인(UAE)의 우승이다. 4강 1차전 결과에 따라 돌출한 변수다. 4강 1차전에서, 전북이 꺼려 하던 승부가 벌어졌다. 울산이 요코하마를 잡고 티켓을 따낸 점까지는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었던 전북이었다. 기선을 제압한 울산이 요코하마를 MDC 티켓 각축전에서 끌어내릴 확률을 높였기 때문이다. 한데, 알아인이 예상을 깨고 강력한 우승 후보이던 알힐랄을 제압하는, 결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세계 주요 무대 최고 기록인 34연승을 달리며 ‘무적의 기세’를 뽐내던 알힐랄의 좌초는 전북에 더 큰 충격을 줬다.
전북이 울산의 우승을 간절히 바라며 열렬히 응원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울산이 티켓 획득의 상승세를 몰아 우승의 포효를 터뜨리면, 마지막 출전권의 행운은 전북이 누린다. ‘현대가 형제’의 엇갈린 명암 속에서, 울산의 질주가 정상까지 계속되기를 염원하는 전북이 아닐까 싶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