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녕 권불십년(權不十年)이런가. 축구의 본향 잉글랜드에서 가장 형형히 빛나며 영명을 떨치던 ‘절대 강자’의 면모는 도저히 찾으려야 찾을 길 없다.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라고 하더니, 극성의 시절은 가고 쇠락의 시기가 왔나 보다. 인생이나 사물의 번성과 영락은 스포츠에서도 불변하는 철칙임이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껴진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Utd.)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의 ‘지존’으로 위명을 드날렸다. 1992-1993시즌에 새 옷인 EPL로 갈아입고 발걸음을 내디딘 이래, 숱하게 등정의 발자취를 아로새겨 온 으뜸 명가 아니었던가. 2022-2023시즌까지 31시즌이 치러지는 동안, 두 차례의 3연패(1998-1999~2000-2001시즌, 2006-2007~2008-2009시즌)를 비롯해 최다(13회) 우승의 금자탑을 세운 맨체스터 Utd.였다. 그 뒤를 잇는, ‘맨체스터 더비’ 맞수인 맨체스터 시티(7회)마저도 역부족임을 실감케 하는 큰 격차다.
그러나 전성시대는 갔다. 오히려 몰락의 초라한 몰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요즘이다.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지휘하던 시절(1986~2013년), EPL 천하를 쥐락펴락하던 ‘The Red Devils’의 무서운 기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산하는 그대로인데, ‘퍼기의 아이들’은 온데간데없는 오늘날이다.
2023-2024시즌, 그 빈자리를 여러 오욕의 격랑이 거세게 파고들었다. 맨체스터 Utd. 사상 EPL 역대 최저 승점이라는 치욕의 늪에 빠질 위기를 눈앞에 뒀다. 당연히 순위도 최저에 머물지 않을까 싶다. 그뿐 아니다. 역대 최다 실점 가능성도 커져만 간다. 역대 최다 패배는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극강의 전성시대 찾을 길 없고 몰락의 암운만 짙게 드리워
13일(이하 현지 시각) 현재, 맨체스터 Utd.의 성적은 민망스럽기 그지없다. 16승 6무 14패(승점 54)로, 8위에 머물고 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성적표다. 누가 EPL을 주름잡던 맨체스터 Utd.의 현 상태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지고 또 졌다. 5월 들어 2연패다. 지난 6일, 중위권의 크리스털 팰리스에 충격의 대패(0-4)를 당했다. 그리고 엿새 뒤인 12일, 최상위권의 아스널에도 완패(0-1)당했다. 아스널은 맨체스터 Utd.를 보약 삼아 다시 선두를 되찾았다.
단순한 연패가 아니다. 그 결과는 맨체스터 Utd.를 더욱 헤어나기 힘든 깊은 늪으로 몰아넣었다. 이제껏 맞닥뜨리지 못했던 처참하면서도 볼품없는 처지로 내몰린 맨체스터 Utd.다.
먼저 최악의 꼴은 맨체스터 Utd. 자체 EPL 역대 최저 승점이다. 시즌 종착점에 2경기를 남기고 고작 54점밖에 쌓지 못해, 불명예스러운 기록 경신의 위태로운 형세에 부딪혔다. 그야말로 대막대기 끝에 선 비참한 모양새다(표 참조).
2022-2023시즌까지 맨체스터 Utd.가 기록한 최저 승점은 58(16승 10무 12패)이다. 랄프 랑닉 감독 체제에서 나온 변변찮은 성적이다. 22개 팀이 자웅을 겨뤘던 1993-1994시즌에 거둬들인 승점 92(27승 11무 4패)에 비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결과다.
그런데 이번 시즌은 더욱 궁상맞은 몰골로 끝나지 않나 싶다. 이를 피하려면 남은 2경기(16일 뉴캐슬 유나이티드, 20일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를 모두 이겨야 한다. 마지막 상대인 브라이턴 & 호브 앨비언(10위)전은 해볼 만할지 몰라도, 최근 경기력으로 봤을 때 뉴캐슬 유나이티드(6위)전은 힘에 부칠 듯하다. 결국, 1승 1패로 끝나면 최저 승점의 치욕을 씻을 도리가 없다. 1승 1무로 승점 4점을 더할 경우엔, 에릭 텐 하흐 감독은 랑니크 감독과 최저 승점 기록의 불명예를 같이 짊어질 수는 있다.
최종 순위도 그렇다. 맨체스터 Utd.는 7위 첼시(승점 57)에 세 걸음 뒤진 8위다. 비록 1경기를 더 치르긴 했어도 2점 차로 뒤에 바짝 달라붙은(9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승점 52)에 오히려 순위가 뒤바뀔 가능성도 상존한다. 지금까지 맨체스터 Utd.의 역대 최저 순위는 데이비드 모예스 체제 시절이던 2013-2014시즌 7위다.
역대 최다 실점도 가능성이 무척 크다. 이번 시즌 56실점은 가장 많은 골을 내줬던, 역시 랑니크 감독이 이끌던 2021-2022시즌의 57실점과 고작 한 골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역대 최다 패배는 이미 기정사실로 드러났다. 팀의 35라운드였던 크리스털 팰리스전에서 열세 번째 쓴잔을 맛보며 최다 패배의 바다에 가라앉았다. 그전까지 최다 패배 기록은 12경기로, 두 번(2013-2014시즌, 2021-2022시즌) 고배를 들이켰다.
그럼에도 텐 하흐 감독은 여전히 2024-2025시즌에도 맨체스터 Utd. 사령탑을 지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대부분 여론이 부정적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자기최면’에 빠져 있다. 그렇다면 먼저 남은 2경기에서라도 멋진 승부수를 띄워 각종 불명예 기록을 최소화하는 전적을 올려야 하지 않을까? 맨체스터 Utd.의 몰락을 안타까워하는 수많은 팬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