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식으로 움직여선 안 된다. 이미 소는 잃은 지 오래지만, 무너진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 한다.
대한축구협회는 1순위 후보로 거론되던 제시 마시(51) 감독 선임에 실패했다. 마시 감독은 한국 대표팀이 아니라 캐나다 대표팀을 선택했다. 캐나다 축구협회는 14일(한국시간) "캐나다 대표팀을 이끌 감독은 마시 감독이다. 협회와 마시 감독은 2026년 7월까지 계약을 맺었으며 2025년 골드컵, 2026년 FIFA 북중미 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지휘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 출신 지도자인 마시 감독은 2010년 미국 대표팀 수석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뒤 미국 메이저 사커 리그(MLS)와 라이프치히 수석코치를 거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최전성기를 보냈다. 당시 마시 감독은 팀을 두 시즌 연속 리그 정상으로 이끄는 등 트로피를 4개나 들어 올리며 유럽 축구계에 이름을 알렸다.
황희찬의 스승이기도 하다. 마시 감독을 잘츠부르크 시절 황희찬을 비롯해 '괴물 공격수' 엘링 홀란(맨체스터 시티), 일본 국가대표 미나미노 다쿠미(모나코) 등을 지도하기도 했다. 그는 리즈에서도 황희찬 영입을 추진했지만, 현실로 이뤄지진 못했다.
마시 감독은 2023년 2월 리즈에서 경질된 뒤 공백기를 보냈고, 최근 캐나다 대표팀 감독직 물망에 올랐다. 지난해 9월 이후 감독 대행 체제로 운영되던 캐나다 대표팀이 그에게 관심을 보인 것. 2026 북중미 월드컵 개최국인 캐나다는 마시 감독을 2년 뒤 월드컵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했다. 그는 언어 문제가 없는 데다가, MLS에서 뛰는 캐나다 선수들과도 친숙하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후임을 찾고 있던 한국 대표팀도 마시 감독을 노렸다. 한국은 지난 2월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4강 탈락한 뒤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했다.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최종 후보 중 마시 감독에게 1순위로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마시 감독은 한국이 아니라 캐나다로 향했다. 그는 "캐나다 대표팀을 이끌게 돼 정말 영광이다. 홈에서 열릴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캐나다 축구의 다이내믹한 선수들, 그들의 잠재력이 나에게 영감을 줬다. 이 거대한 책임감을 떠맡을 준비가 됐으며 시작하기를 열망한다"라며 "2026년까지 모두 함께 달려보자"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케빈 블루 캐나다 축구협회 회장도 "전문가들과 관계자들의 철저한 정보 조사를 거친 가운데 난 이번 공식 발표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마시는 우리 대표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에 부임해 카나다 축구 발전을 이끌어낼 변혁적인 리더"라고 환영했다.
결국 대한축구협회(KFA)의 새로운 감독 찾기는 원점으로 돌아간 상황. 정해성 위원장은 5월 중순 내로 정식 감독을 구하겠다고 말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당시 정해성 위원장은 빠르게 감독을 선임해 6월 열리는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을 정상적으로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마시 감독 선임이 무산되면서 계획이 모두 꼬였다.
그럼에도 5월 내 정식 감독 선임이라는 기조가 바뀌진 않았다. KFA 관계자는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선임 과정을 진행 중이다. 쉽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전력강화위원회 개최에 관해선 확정된 바가 없다. 지켜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5월 내에 감독을 데려오고 보는 게 아니라 준비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감독을 데려오는 일이다. 당장의 비판이 두려워서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생각으로 성급한 판단을 내리면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냉정히 말해 6월에 있을 싱가포르, 중국과 2연전은 무게감이 그리 크지 않다. 대표팀은 사실상 3차 예선 진출을 확정 지은 데다가 상대도 두 수 아래의 약체다. 객관적 전력을 봤을 때 한국이 싱가포르 원정에서 패하거나 안방에서 중국에 패하는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지금은 당장 KFA가 2순위로 생각했던 후보와 접촉하더라도 시간이 촉박하다. 다시 한번 임시 감독 체제로 치른 뒤 9월에 있을 3차 예선을 준비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다. 물론 임시 감독을 찾는 일 역시 부담이 크겠지만, 월드컵까지 함께할 다음 감독을 부랴부랴 데려오는 것보단 낫다.
데드라인을 5월로 정하지만 않는다면 후보군도 늘어날 수 있다. 유럽 축구는 벌써 2023-2024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다. 유럽축구연맹 유로 2024와 코파 아메리카 2024도 7월 중순이면 막을 내린다. 감독들의 연쇄 이동도 잦은 최근 흐름을 고려하면 KFA에도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사실 이번 마시 감독과 협상에서도 5월이라는 데드라인 선언이 불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 KFA 측에서 한시가 급하다고 공개 선언을 한 만큼 시작하기도 전에 불리한 위치에 빠진 셈이기 때문. 게다가 마시 감독은 캐나다 대표팀의 관심까지 받고 있기에 더더욱 여유로울 법했다. 만약 KFA가 너무나 서두르지 않았다면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에르베 르나르 프랑스 여자대표팀 감독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finekosh@osen.co.kr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캐나다 축구협회 소셜 미디어.